[생명의 말씀] 너희 몸을 산 제사로 주께 드려라

등록날짜 [ 2012-06-26 13:40:00 ]

예수께서 자기 몸을 아낌없이 인류를 위해 주심같이
이 은혜 받은 자라면 오직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야

로마서 12장 1~2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은 죄로 멸망하는 세상에서 죗값으로 저주와 사망과 지옥이라는 결국을 맞이하는 인간을 구원하려는 뜻을 정하셨습니다.

예수만이 의, 생명, 구원주
하나님은 자기의 뜻이요 자기 자신인 말씀을 모든 인간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전하시고, 자기가 전한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시행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려고 친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말씀이요 명령이십니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요12:47~50).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적인 생명이요 계명이며, 하나님 명령대로 이행하는 실천이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생명이요 구원주이십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것은 자신이 죽으심으로 인간의 죄로 말미암은 죽음과 지옥을 대신하신 것입니다.

또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영원히 멸망할 우리 인간에게 주셔서 우리도 그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히 살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 사단 귀신이 지배하는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는 죄와 저주와 죽음과, 종국에는 수많은 영혼이 지옥 가는 완전한 멸망이라는 단 하나의 길만 존재할 뿐입니다.

이 세상에는 그 어디에도 의(義)가 없습니다. 의(義)가 없다는 말은 죄악(罪惡)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 공로가 없는 곳은 어디를 막론하고 죄악뿐이요, 예수께서 인간에게 베푸신 은혜가 미치지 못하는 곳 역시 오직 죄로 오는 죽음만 있을 뿐, 인간을 죄에서 구원할 대책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지은 죄로 말미암은 저주와 고통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아시기에 우리 인류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의(義)요, 생명이요, 구원주이십니다. 예수가 없는 사람은 죄 때문에 누구라도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상속자가 된 인간
죄는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 역사에서 시작하였고, 인간에게 처음 죄를 짓게 한 자도 역시 마귀입니다. 인간은 창조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원수가 한 말을 들었습니다.

곧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먹어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원수 편에서 그 원수와 함께하여 인간 자신도 하나님의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원수와 함께 멸망당해 마땅한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롬5:12, 마25:41, 계20:10).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3:8)

이같이 하나님의 원수 마귀와 함께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을 우리 인간의 죗값을 갚아 주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못 박아 살 찢고 피 흘리게 하여 인간의 죽음을 대신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곧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된 관계를 해결해 주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되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은 물론 자녀로서 후사(後嗣)가 되게 하셨습니다(히9:14).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8:16~17).

다시 말해서, 인간은 죄 아래서 그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지옥에 가서 마귀와 함께 형언할 수 없는 형벌을 받아야 하나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형벌 받으심으로써 구원하셨습니다. 이 은혜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갚을 길이 없습니다.

일러스트 / 박철호

이 같은 큰 은혜를 거저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의 기업을 이을 상속자가 되었다면 이 엄청난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 크신 은혜에 감사하여 백 번 생애를 내어드린들, 백 번 순교한들 갚을 수 있는 은혜입니까? 절대 갚을 수 없는 함량임을 안다면 누가 감히 그 은혜를 부인할 수 있으며, 누가 감히 그 은혜에 무관심할 수 있겠습니까?

죄인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해야 합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양의 피를 들고 가서 죄 사함 받은 다음에 섬겼습니다. 우리는 짐승의 피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흘리신 영원한 생명의 피로 구원 받았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바울 사도의 입술을 통하여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죄에서, 지옥에서 구원하시려고 자기 몸을 하나님 앞에 단번에 산 제사로 드리심같이 우리도 그리 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아 정욕의 욕구 충족을 누리다가 결국은 멸망하려고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롬8:6~8).

로마서 8장 13절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고, 곧 육신의 소욕과 정욕을 이기고 하나님 아들의 생명으로 풍성하게 살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를 드리자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 공로에 힘입어 오늘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구원받은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말로, 이론으로, 몇 년 믿었다는 신앙 연조로 말고 구원이 실제로 내 안에 이루어졌는지 확신할 수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고 아들은 자기 몸을 주셔서 당신을 구원한 그 크신 은혜 앞에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드려 감사했는지 한번 냉정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교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신념을 따른 것도 아니고, 종교 차원의 해석을 따른 것도 아닙니다. 오직 성령으로 체험한 증거와 경험에 기인한 것입니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1:21~22).

초대 교인들의 믿음의 행위와 삶을 보면, 그들은 구원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전 재산은 물론 목숨까지도 주가 쓰시게 내어드렸습니다. 우리 인류가 절대 필요한 때에 자기 목숨을 십자가 위에 대속물로 주신 주님께 감사함으로 이제는 내 인생을 모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내어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의 살을 찢고 피를 흘려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그 은혜가 없다면, 감사도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은혜가 없어 감사하지 않는다면, 절망입니다. 또 은혜 받았는데도 감사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은혜를 헛되이 받은 자요, 정욕적이고 세상적인 무인격자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려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구원의 은혜, 십자가의 피 공로 앞에 우리의 모든 것을 드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산 제사가 되게 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평생 주님 주신 은혜 감사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온 몸을 드리는 산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죄에서, 저주에서, 사망에서 자기 몸 버려 구원하신 주님의 요구를 이룬 자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에 도달해야 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9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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