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5-08 11:50:18 ]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함이 하나님이 주신 계명
영원한 천국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사랑
누가복음 10장 25~37절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중략)...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 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창조자십니다. 창조자라는 말은, 없는 것을 있게 하고 있는 것도 없게 하는,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절대 자유자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 천하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하신 것들에게 질서를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이 무질서하여 파괴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자비를 베푼 자가 이웃
본문은 유대인 중에 바리새인인 율법사가 예수께 와서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예수를 시험해 보기 위해 묻는 내용입니다. “예수 선생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느냐고 묻는 자체가 그 사람 신앙의 현주소를 보여줍니다.
예수께서는 율법에 기록된 내용을 물으시고 그대로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사는 예수께 흠을 찾지 못하자 자신이라도 옳게 보이려고 “내 이웃이 누구이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대답으로 예수께서 강도 만난 사람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강도를 만나 얼마나 맞았는지 거반 죽게 된 자가 있었는데, 마침 그 길을 지나가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를 외면하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유대인 중에서도 하나님 뜻대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냥 지나갔는데, 한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었습니다. 그 시대에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에게 멸시받고 천대받고 경멸받는 존재였습니다. 응급처치를 해 주고 주막에 데려가 주인에게 맡긴 후 돌아오면서 나머지 비용을 다 줄 테니 잘 돌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예수께서 율법사에게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율법사는 “그를 도와준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대답했고,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너도 가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질서는 행복의 극치요 절정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 중에 오직 사람에게만 인격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인격에서 나오는 생각을 따라 능동적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가 곧 생명이요, 자유요, 축복입니다(창1:26~28). 그런데 인간은 인격을 이루는 자유의지로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를 스스로 파괴하여 영원히 파산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죄와 저주와 사망과 지옥의 고통을 영원히 피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질서입니다. 세상에서 국가가 정한 법은 나라와 국민의 목숨과 재산과 권리를 보존하려고, 곧 인간 삶의 질서와 안녕을 유지하려고 만들었습니다. 이 같은 질서를 파괴할 때 나라가 정한 일정한 법적 처벌을 받습니다. 우리나라는 도로에서 우측통행을 하도록 법으로 정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만일 자동차가 좌측으로 들어가서 달려오는 차와 충돌하면 큰 사고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교통법규라는 질서를 파괴한 결과로 사고가 일어납니다.
일러스트 / 박철호
인간이 세상에서 살 때 질서를 잘 지키면 아주 자유롭고 행복합니다. 그러나 질서가 깨지면 불안하고 고통이 옵니다. 가정에서도 질서가 깨지면 불안이 오고, 못 살겠다며 이혼합니다. 하나님은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기 몸을 주심같이 하라”는 질서를 주셨습니다. 이 사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해결하려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와서 대신 죽으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렇게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아내를 사랑하지 않을 사람은 장가갈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하라”는 질서도 주셨습니다. 이렇게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할 수 있는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진다면 절대 그 가정은 질서가 파괴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질서는 행복의 극치요, 행복의 절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주신 은혜
하나님께서 우주에 질서를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한 것을 보존하시기 위해서며,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질서를 유지하여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행복을 누리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의 법을 간교한 마귀의 말에 속아 파괴하였으니, 이는 곧 하나님과 사이에 질서를 파괴한 것으로 그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죽음이 왔습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파괴자인 마귀에게 속아 멸망에 빠진 인간을 영원한 멸망에서 건지시려고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질서를 회복하여 신령한 조화를 이루고 인간에게 생명을 회복시켜 영생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죄로 말미암은 인류의 죽음을 자기가 대신 죽어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대적이고 변함없는 진리라는 원칙을 세우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빌2:5~8, 막10:4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이것은 천 번 만 번 죽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당해 마땅한 인간을 향한 극진한 사랑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스스로 파괴하고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의 말을 듣고 마귀에게 속하여 마귀와 함께 영원히 멸망할 인간에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과분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도전한 죄로 하나님의 원수가 된 인간을 살리시려고 창조자인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자기의 목숨을 주신 은혜이기에 무엇으로도 갚을 길 없는 은혜요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주신 이 같은 은혜 입은 자들이여, 하나님께서는 성경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의지와 뜻을 다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어 죄에서, 저주에서, 고통에서, 사망에서 너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라고 말입니다(신6:5, 10:12). 이것은 은혜 받은 자로서 마땅히 할 일인데도 하나님께서 은혜 받은 우리에게 이처럼 부탁하셨습니다. 이 또한 은혜를 헛되이 알아 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목숨을 주신 이 같은 사랑으로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너희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으나 율법을 지켰다는 것으로 자기 의를 드러낼 뿐,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아래로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신만 의로워지려고 몸부림쳤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습니다. 십계명의 첫째 계명부터 넷째 계명까지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도 계명을 지킨다고 생각하는 자는 곧 바리새인이요, 외식하는 자요, 자기 의만 드러낼 뿐, 하나님이 주신 계명과 아무 상관없는 자입니다. 다섯째 계명에서 열째 계명까지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니 곧 이웃의 영혼을 자기 영혼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율법의 계명으로 나만 죄 안 짓고 의롭게 살려는 자는 그 또한 바리새인과 같이 자기 의만 드러내는, 외식하는 자일 뿐입니다. 예수께서 자기 목숨을 다하여 내 영혼을 죄와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이웃의 영혼을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하려는 사랑의 실천이 은혜 받은 내게서 넘쳐나야 합니다. 이것이 율법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이요, 성령의 사역이요, 예수 그리스도와 이루는 사랑의 동역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33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