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6-05 17:13:52 ]
주께서 기억할 시간은 주 뜻대로 사는 것
장차 받을 영광과 면류관 바라보며 살자
고린도전서 6장 19~20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은 영원히 계신 분입니다. 과거에도 계셨고 현재에도 계시며 영원히 살아 계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천지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누리며 살아갈 인간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세상 속에 세월을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월은 곧 우주의 질서요, 만물의 질서이며, 인간의 질서이기도 합니다.
사랑으로 주신 하나님의 법
하나님은 세월을 통해서 삶의 기한을 정하시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 법을 성경에 기록하셨습니다. 이것이 곧 인간이 영육 간에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삶의 법칙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법은 인간을 결박하려는 것이 아니요, 인간을 보호하고 사랑하고 책임지시려는 영원하고 섬세한 은혜의 법입니다.
그러나 최초의 사람 아담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 말씀의 법질서를 파괴하고 말았으니, 그 죗값으로 영원한 사망이라는 형벌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법질서를 파괴한 죄로 인해 영원히 멸망하게 된 인간을 살리시려고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대신 죽게 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질서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법질서를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떠나는 것이며, 스스로 심판이라는 죽음을 자초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곧 하나님의 지혜이며, 인간을 향한 사랑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은 영원한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될 뿐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5~8).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롬8:12).
그러므로 누구든지 육신의 생각으로 살면 자기 자신을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여 가장 잔인하고 처절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니, 우리 인간은 자기 스스로 살아갈 수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요, 인간을 사랑하시려는 하나님의 관심사에서 벗어난 자입니다.
성령으로만 행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런데 사람의 생각은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대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자식만 잘 키우면, 많이 배우기만 하면, 육체만 건강하면 잘 사는 줄 알고 스스로 속으면서 자기 인생의 시간을 다 낭비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간은 육체뿐만 아니라 영원히 사는 영혼이 있기에 자기 영혼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영혼을 사랑하는 유일한 비결은 예수를 믿는 믿음뿐입니다.
2000년 전 이스라엘 나사렛 동네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것은, 결코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바리새인, 장로, 서기관, 랍비, 제사장 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오해하고 저주하여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십자가는 죄인 중에서도 최고의 행악자만을 매달아 죽이는 형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행악자로 취급되어 처형당한 예수를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께서 내 안에 믿어지도록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체험시키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수태되고, 성령으로 이적과 능력을 행하고, 성령으로 가르치고, 성령에 이끌려 죽으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령을 충만히 받아 오직 성령으로만 예수를 증거하고 가르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세월이란 곧 육신의 삶의 기한인 칠십 년, 팔십 년입니다. 세상에서 주어진 세월을 다 산 후에는 그 삶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잣대로 어김없이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든 모르든 하나님 말씀의 법 앞에서 어떤 사람도 결코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아담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육신의 소욕으로 산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자가 없으니, 결국 그 죗값으로 멸망하고 맙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육신의 소욕대로 살며 하나님을 떠난 인간을 살리고자 피 흘리기까지 대신 형벌을 받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6~17).
성령으로 사는 것이 최고의 지혜
우리는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최고의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 공로를 믿고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내가 예수 믿고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받은 것처럼 예수를 알지 못해 멸망하는 수많은 영혼을 전도하는 것이며, 주를 위해서 자신의 영혼의 때를 위해 충성되게 사는 것입니다(계2:10).
바울은 성령 받기 전에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성령 충만하여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는 일에 가표를 던진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변화를 받았을까요? 생각이 바뀌면 행동도, 믿음도, 소망도 바뀝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예수로 말미암아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때 육신의 생각은 ‘내가 왜 예수 때문에 육체적으로 환경적으로 손해를 봐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그것이 내 영혼의 기업이며, 장차 받을 영광이며, 면류관입니다. 만약 이 지식이 확실하다고 믿는다면 어떤 사람이라도 육신의 생각으로 살지 않고, 영의 생각으로 살려고 몸부림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세월은 믿음 안에서 사는 자에게는 큰 장점이나, 믿음을 떠나 육신의 정욕대로 살아가는 자에게는 단점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세월을 장점으로 만들어 내일의 영광과 행복으로 바꿔놓아야 합니다. 그 방법은 오직 성령으로 인도받는 것뿐입니다.
세상을 보십시오. 세상의 정욕과 야망 속에서 무엇인가를 얻고자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은 저들을 사망으로 끌고 갈 뿐입니다.
예수께서는 친히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성령을 보내셨으니, 성령으로 살아가는 삶이 가장 지혜로운 삶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시기에 그 하나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 그분이 인도하시는 대로 사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영광이며, 최고의 행복이며, 그 삶 자체가 영혼의 때에 누릴 기업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은 성령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곧 쉬지 않고 기도 생활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믿는 것이며,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지옥에서 살려내는, 성령으로 이끌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구원받은 수많은 사람의 영혼을 그들이 가진 육신의 생각에 맡기지 아니하시고 성령께 맡기셨으니, 이것이 바로 우리를 절대적으로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지혜요, 은혜와 사랑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과 함께 사는 생활만이 영원히 후회가 없는 삶이며, 세월을 아끼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삶을 살되, 주님을 뵙는 그 날까지 영혼의 때를 위하여 충성된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34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