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은혜 받은 자의 감사

등록날짜 [ 2013-09-17 09:15:40 ]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시고 인류를 살리셨으니
그 은혜 받은 자라면 오직 주만 경배하며 의리 지켜야


마태복음 26장 69~75절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비자가 저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기에 하나님의 의와 반대되는 죄를 미워하시고, 멸하시고, 영원히 죄가 하나님을 대적하지 못하게 하시고, 인간을 저주하고 온갖 고통을 다 당하게 하다가 마침내는 지옥으로 내던지는 원수를 해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셨으니 그가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이신 분이나 이 땅에 나타나실 때에 아주 보잘것없이 나타나셨습니다.

영원한 슬픔에 갇힌 인간
누가 봐도 하나님의 아들, 성자 하나님이라는 신분과 절대 어울리지 않게 오셨습니다(사53:1-4). 그가 만일 성자 하나님으로서 위엄을 갖추고 나타났다면 세상에서 그를 해할 자가 있었겠습니까? 그가 성자 하나님이신데도 육신을 입고 초라하게 오신 것은 인간의 영육 간의 고통을 대신 담당하시고 마귀의 손에서, 죄에서, 저주에서, 지옥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요, 우리 인생들에게는 비밀이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그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그대로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실로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죄 값으로 당해야 하는 질고를 대신 짊어지고 인간이 당해야 하는 영원한 슬픔을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로 해결한 인류의 고통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신 일을 보고 그대로 하게 하시려고 제자들을 불러서 3년 4개월 동안 함께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에도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께서 자기들을 왜 부르셨는지에 대해서 시종일관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서기관과 장로들과 제사장들에게 심문을 받고 죽게 될 것이며,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말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전혀 엉뚱한 소리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영광 중에 계실 때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예수께서 죽은 자를 살리고,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소경을 보게 하고, 벙어리가 말하게 하고, 귀머거리가 듣게 하고, 중풍병자가 걸어가게 하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 물 위로 걸어가시는 모습을 보고 세상을 지배하는 왕으로 오신 줄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장차 이스라엘을 로마의 식민지에서 구하고 세계를 지배하는 왕이 될 것이니, 그 옆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싶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3년간 주님을 따라다니면서도 자신들이 왜 주님을 좇는지 본질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라는 중대사를 앞두고 떡을 떼어 나눠 주시면서 “받아먹어라. 이것은 너희를 위해서 찢는 내 살이요, 영원한 양식이다”, 잔을 나눠 주시면서 “받아 마셔라. 이는 언약의 피요, 생명의 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받아먹으면서도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만찬 후에 항상 기도하시던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버리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모두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평탄할 때는 믿음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사정 가운데서도 지키는 사람이 진정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수제자 베드로도 자신은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쳤습니다. 베드로는 그 밤이 새기 전에 자기가 주님을 부인할 존재라는 사실을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허물을 담당하시려고 머리는 가시관에 찔리시고, 옆구리는 창에 찔리셨으며, 양손과 양발은 십자가라고 하는 나무에 잔인하게 못 박혀서 우리 인간이 영원히 감당할 수 없는 죄 허물을 담당하여 갚아 주셨습니다.

그는 성자 하나님으로서 온몸, 육체의 전신이 상하심으로써 우리를 저주하고 온갖 고통을 가하는 죄악을 담당하여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또 자기 육체에 그토록 잔인한 징계를 대신 받으시고 하나님과 인간의 사이가 가로막혀 영원히 원수된 것을 파괴하셔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부자(父子) 관계로 만드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인간을 책임지시고, 인간은 자녀로서 아버지로부터 사랑받게 만드셨습니다.

또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저주 속에서 육체로 고통당하다가 마침내 죽고야 마는 질병, 인간을 생으로 죽여서 썩혀 버리는 무서운 질병을 완전히 해결하여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게 하시려고 자기 살이 쭉쭉 찢어지는 모진 매질의 고통을 감수하시고 인간의 질병을 담당해 주셨습니다. 또 인간의 육체의 때가 끝나면 인간의 영혼이 지옥에서 영원히 당하는 비참하고 참혹한 고통을 해결하기 위하여 온 인류의 죄악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하여, 나와 여러분을 위하여 그토록 고통 속에서 비참하고 잔인하게 죽어야 했던 그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마저 자기 선생의 고난과 죽음이 자기들에게 그대로 미칠까 두려워 사정없이 그를 부인하고, 부인하고, 또 부인하였습니다(마26:69~75).

                                                                                           /일러스트 박철호

받은 은혜를 감사로 표현하자
예수 그리스도, 성자 하나님은 인간들이 부인하든 말든 상관없이, 인간들이 자기 사랑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온 세상 인류의 허물과 죄악과 징계와 질병과 지옥 고통을 말없이 짊어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 인류를 일방적으로 사랑하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잔인하게 내어 놓으셨습니다(마26:36-42).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그토록 사랑하시는 사랑의 고통의 현장을 버리고 잔인하게 부인하며 도망하는 제자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잔인한 고통 속에 십자가에서 죽이기까지 극렬하게 인간을 사랑하시는 현장,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잔인하게 짓밟고 배반하는 현장, 이 둘은 너무도 대조적인 현장인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무지요 배신이요,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사랑에서 도망하는 바보짓입니다.

지금도 주님의 사랑의 말씀에서, 은혜에서 도망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주님의 요구에 도망하며, 주님의 요구를 망각하며 무시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지금, 환경을 탓하면서, 시간을 탓하면서, 사업을 탓하면서, 육체의 피곤을 탓하면서, 물질을 탓하면서 여전히 도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태하고, 게으르고, 인색하고, 무관심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그 큰 은혜 앞에 원망하고, 시험 들고, 훼방하고, 무시하고, 배은망덕하지는 않았습니까? 제자들이 주님의 고난으로 주시는 영육 간의 축복 앞에 그를 부인하고 배척하고 도망간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배신이요, 자기 스스로의 자멸이요, 영원한 멸망을 자초한 행위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큰 사랑이 없었다면 이 땅에 태어난 수많은 인생의 그 참혹한 고통을 어찌할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에게 천만다행이요, 절대적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하여 담당해 주신 은혜 앞에 무엇이 아깝고, 무엇을 주저할 것입니까? 시간이 아깝습니까, 물질이 아깝습니까, 목숨이 아깝습니까? 당신이 은혜 받은 자라면 아무것도 아까운 것이 없어야 합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으로 주신 은혜로 현재도, 미래도, 영원히 생명을 얻었다, 건강을 얻었다, 천국을 얻었다, 그러므로 죄에서, 저주에서, 지옥에서 벗어났다, 그 은혜 감사하여 마음껏 표현하리라’는, 은혜 받은 자다운 감사와 기쁨으로 은혜의 분량을 채웁시다.

위 글은 교회신문 <35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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