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주님의 사랑을 받으면

등록날짜 [ 2013-10-29 10:38:13 ]

지금도 사랑받기 원하는 자 찾고 계셔
불가능한 일도 예수께 맡기면 해결돼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 (요한복음 11장 1~13절)


본문은 베다니에 사는 삼 남매에 관한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는 주님을 사랑으로 극진히 섬기고, 주님도 그들을 사랑하는 관계였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하나님과 인간의 모든 역사는 사랑의 관계만 이루어지면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언제나 축복하십니다.

그 집에 가장 소중한 나사로가 병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나사로를 고쳐 주시기를 바랐지만, 주님은 서두르지 아니하시고 이틀을 더 머무르시더니 나사로가 사는 베다니가 아닌 유대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도중에 예수께서 “나사로가 잠들었다”고 하셨는데, 바로 그 시간에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나사로를 죽을 지경까지 놔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 시체 썩는 냄새가 나는데도 주님은 무덤 문을 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덤 안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고 말씀하시자 나사로가 시신을 쌌던 베를 동인 채로 걸어 나왔습니다. 이 얼마나 충격적인 사건입니까?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세계를 지으시고 그 세계에 있는 모든 만물을 움직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이 과거에도 자신이 하신 말씀대로 되었고, 현재도 장차도 자신의 말씀대로 되어 간다는 것을 세상의 인간으로 하여금 보고, 알고, 믿게 하셨습니다. 또한 자신이 약속한 것은 독생자(獨生子)라도 아낌없이 세상에 보내어 처참하게 십자가에 살 찢고 피 흘려 죽게 하시기까지 말씀을 이루셨으니, 하나님은 이 세상의 무엇에나 누구에게나 신실하시고 미쁘신 분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자기 생각과 환경이라는 한계 안에서 자기 확신이라는 신념의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믿음이 없는 자는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인간이 참으로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를 보여 주고 체험케하시려는 것입니다. 즉 우리 인간이 꼭 믿어야 할 믿음을 확실하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이시며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인간을 사랑하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려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신 약속은 모든 인간을 누구나 똑같이 사랑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똑같은 사랑을 부여하길 원하셨고,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고난받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베풀어 주신 그 크신 속죄 은총을 누구나 인정하고 믿으면 자기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일러스트/박철호

사랑받을 자를 향한 예수의 희생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그의 사랑을 받기 원하고 그를 사랑하는 자는 누구라도 신분과 형편에 상관없이 자기 마음에 깊이 품으시고 어떠한 불가능이라도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나사로와 같이 죽은 자도 산 자와 같이 현장에서 살려 내시고, 병든 자도 현장에서 건강한 자 같이 세우시고 힘 주셔서 걷게 하셨고, 귀신 들려 절망적인 자도 당장에 귀신을 내쫓아 악한 영에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가 사랑하는 인류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받기 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자기 자신의 어떠한 형편과 사정도, 자기 목숨까지라도 개의치 아니하시고 누구에게나 어디서든지 초월된 사역을 무제한 역사하셨습니다.

병든 자를 위해서는 그 고통스러운 잔인한 채찍을 맞는 곳이라도, 저주받은 자를 위해서는 그 잔인한 저주의 나무 십자가라도, 죄에 빠져 죗값으로 사망의 지옥에 처한 절망적인 자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대신 죽을지라도 기꺼이 감당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목숨을 걸고 자기가 사랑하는 자를 찾으시고, 자기의 사랑을 받기 원하는 자를 찾으셨습니다.

내게서 죄악이 떠나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죄 때문에 가난하다면 죄를 해결하고 부유해야 합니다. 죄 때문에 병들어 있다면 죄 사함을 받아 속히 질병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예수의 피 공로 앞에 내 죄를 쏟아놓고 죄 사함을 받는 순간 영적으로 부유하게 되고 건강해질 것입니다. 또한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소원이요, 우리의 소원도 되어야 합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2:24~25).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의 사랑을 받는 자는 언제나 동일하게 현장에서 주님이 역사하시는 그 영광을 볼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에서 생산된 최고의 기업이요,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주님을 사랑합시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15:10).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자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하나님 아버지가 인간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그래서 그가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문제를 해결하고, 베다니에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 내신 것은 우리 인간이 믿음의 분량을 갖고 찾을 때마다 만나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언제나 우리는 목적 없이 설교를 듣는 자가 되지 말고, 말씀이신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마태복음을 읽어 보면 예수께서 어린이를 만나고, 병든 자를 만나고, 죽은 자를 만나고, 노인을 만나고, 젊은이를 만나고, 지식인을 만나고, 무식한 자를 만나고, 남자를 만나고, 여자를 만나고, 죄인을 만나고, 모든 사람을 만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앞에 나와서 예수를 만날 자격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만날 자격을 확실히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갑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 즉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당하신 고난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셨다는 아무도 지울 수 없는 지상 최대의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약속과 고난과 죽으심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신뢰하십시오. 당신에게 이루어지도록 말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에 주님의 관심은 외식하는 바리새인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병들어 고통당하는 자, 귀신에 매여 괴로워하는 자, 죄에 매여 멸망하는 자에게 관심을 두셨고, 그들에게 자기 목숨을 대신 주려 하셨습니다.

오늘 당신에게 어떠한 불가능이 있더라도 주님께서 사랑하시어 돕기로 작정하시면 즉시 해결될 것입니다. 우리도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 삼 남매와 같이 주님을 극진히 사랑하는 자가 되고, 또 그만큼 주님을 믿어 드립시다.

주님은 지금 현재성 넘치는 능력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도우려 하십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육신으로 계실 때는 예수를 만나는 자들에게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성도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말미암아 그들과 동일한 사건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예배 시간과 기도 시간과 찬양 시간이 모두 성령이 절정으로 일하시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평생에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사랑을 받는 주님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위 글은 교회신문 <35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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