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2-25 09:10:16 ]
죄를 발견하더라도 회개치 않으면 예수와는 무관한 것
지옥 갈 자기 신세를 발견하여 주님과 형통을 이뤄야
마태복음 3장 5~10절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니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침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선하시고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선하심과 거룩하심에 반대하는 이념이 곧 불의요, 악이요, 더러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의 의(義)를 보내셨으니 곧 율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보내신 목적은 인간이 율법대로 의롭게 살아서 죄에서 벗어나 구원받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인 인간이 율법으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발견하여 죄에서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라는 것입니다.
인류의 죄를 단번에 해결하신 예수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할 때마다 그 죗값으로 받아야 할 저주와 죽음을 대신하여 짐승을 잡아 그 피를 드림으로써 용서받아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피로는 죄를 없이할 수 없습니다. 이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으심으로 인간을 구원하실 일을 예표(豫表)할 뿐입니다(히10:4~7).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히9:11~12).
하나님 말씀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저지른 죄를 발견케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지옥 멸망으로 이끌어 가는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단번에 죄를 해결하셨습니다. 곧 우리 인간의 죄와 저주와 사망과 영원한 지옥 형벌을 해결하신 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러므로 죄로 말미암아 가야 할 영원히 참혹한 지옥에서 벗어나 영원히 행복한 천국에서 살기 원하면 죄를 들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만나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처절한 지옥 형벌을 영원히 행복한 천국과 바꾸어야 합니다.
회개하여 속죄받은 증거로 죄에서 벗어나 거룩해지고 그 증거로 성령을 받습니다(행2:37~41, 고후1:21~22).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라고 하는 엄청난 기업을 주시고 영원히 멸망할 죄를 영원히 살 생명으로 바꿔 주는 제도를 주신 것은 죄로 멸망할 인간에게 다시없는 기회요, 축복이요, 생명입니다.
회개로 만나는 예수의 피 공로
침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마3:2). 회개하라는 외침은 죄인인 인간에게 유일한 살길이요,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죄로 멸망할 인간에게 회개하라 외치는 이 엄청난 선포는 죄 아래서 죄로 멸망하는 인간에게 가장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이 회개하라 외치는 요한의 음성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유대에서, 요단 강 사방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자기 죄를 자복하고 침례 받을 때에 “나는 이같이 영원히 죽을 죄인이요” 하고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옴으로써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이들은 자기 자신들의 죄를 들고 나와서 그 죄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가하고 살길을 찾았습니다.
일러스트 / 박철호
그러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자기들이 분명히 죄인인데도 자기 죄를 찾지 못하여 회개할 것이 없다며 회개하는 침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사람 요한은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사랑과 절규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마3:7~12).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자기들에게서 회개할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율법에 비춰볼 때 자신들에게는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이 교회에 오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도 회개치 아니합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들의 죄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한다면, 그는 절망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공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에는 왜 오는 것일까요? 예배는 왜 드리는 것일까요?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이 사람들이 외식하는 자요, 기독교라는 종교인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죄를 물 마시듯 지으면서도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또 죄라고 여겨지는 바가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사랑이신데 이런 것 때문에 나를 지옥에 보내시겠는가?’ 하고 자문자답하며 회개치 아니합니다. 회개가 없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만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만날 수 없으니, 그 죗값으로 지옥 가야 합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5:19~21).
우리가 율법을 알아도 그 율법으로 죄를 발견하여 회개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와 무관하며, 또 선지자가 회개하라고 외치는 사랑의 음성을 들어도 회개치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와 무관하며, 하나님 말씀으로 죄를 지적해도 회개가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와 전혀 무관합니다. 예배를 드려도 회개가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와 상관없으니 참으로 불행한 자요, 멸망할 자입니다.
회개는 영원히 살려는 절대적 의지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의와 자기 의에 대한 오해를 푸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이 말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율법에 대한 오해를 풀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이 죄 없다며 자기 의를 주장할 때 그들의 죄를 지적하셨습니다(마5:17~48).
회개가 없는 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가 무용지물이요, 오직 영원히 세세토록 불타는 지옥만 기다릴 뿐입니다. 회개가 없는 신앙생활은 자기 영혼을 능히 죄에서 구원할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으므로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회개로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의 피 공로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가 내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죄를 쏟아내 버려야 합니다. 절대로 ‘나는 교회 몇 십 년 다녔으니까 예수 만났겠지?’ 하는 착각과 오해 속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23:25~28).
우리는 참으로 내 속에서 부패해 가고 썩어 가는 근성과 죄악을 예수의 피 공로 앞에 다 내놓고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13: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하는 가장 첫 번째 길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에 동의하는 것이요, 영원한 지옥 멸망에서 벗어나 영원한 천국에서 살려는 절대적 의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가인아,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우리는 아담처럼, 가인처럼 죄를 무엇 때문이라고 핑계 대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회개로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선지자도 회개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회개하라, 제자들도 회개하라, 초대교회도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오늘날 목사도 여전히 회개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멸망하는 영혼을 살리려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소리입니다. 인류 역사에 가장 귀한 생명의 소리입니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위 글은 교회신문 <37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