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4-22 11:59:00 ]
인간을 향한 절대적인 사랑으로 죄 없이 죽으신 주님
고통을 대신한 현장을 안다면 예수 이름으로 자유해야
이사야 53장 4~6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비물질이요, 무형상이요, 존재요, 인격입니다. 그는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인간이 육신의 감각으로 느낄 수도 없는 분입니다. 그가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흙으로 돌아갈 육체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 영혼을 함께 주셨습니다. 육신은 이 땅에서 살다가 제한된 시간이 끝나면 우리 영혼으로 하나님 나라에 가서 영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사는 축복을 부여하셨습니다.
인간의 멸망을 안타까워하신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거룩하시고, 선하시고, 신령하시며,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의롭지 못한 자와 거룩하지 못한 자, 선하지 못한 자와 사랑하지 않는 자와 신령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과 함께 살 수가 없습니다. 인간을 향한 주님의 사랑이 위대한 것은 인간의 멸망에 접근하셨다는 점입니다.
죗값은 사망입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아담이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의 말을 듣고 속아서 먹는 순간 하나님 원수의 패거리가 되었습니다. 영원한 죽음의 함정, 곧 지옥에서 영원히 살아야 할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도 마귀도 똑같이 하나님께 도전하고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만 구속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수많은 사람이 죄가 무엇인지, 죄의 결과가 자기에게 어떤 절망을 초래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죄 아래서 육신에 유익한 것을 얻어보려고 몸부림을 치며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죄 아래서 멸망을 향해 질주하면서 마치 자신이 행복을 찾아 질주하는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영적 세계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영육 간에 파멸로 내던지는 일을 재미있게 합니다. 사치, 향락, 쾌락, 성적인 타락, 심지어 동성애, 자살까지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최후가 비참한 날을 향해서 쉼 없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인간은 심판주 하나님을 모른 채, 하나님의 정의로운 말씀을 전혀 모른 채 불순종과 도전과 교만의 바벨탑을 쌓고, 우상과 방탕의 불야성을 이루는 광란 속에서 저주와 파멸과 죽음의 축배를 나누며 죄와 죽음으로 비대해져 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불쌍하고 안타까운 사건인데도 인간은 이 같은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죄악에 빠져 있는 인간을 살려 내시려고 하나님께서 율법을 보내셔서 인간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죄와 저주 아래에 있는 인간을 영원히 살리시고 축복하려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로서 회개를 선포하셨고, 제사장으로서 친히 인간의 저주와 죽음을 대신하는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려고 인류의 중한 죄를 대신 짊어지고 최고 행악자만 골라 처형하는 십자가 형틀에 못 박혀 죽으시려고 갈보리 곧 골고다로 행하셨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이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골고다 언덕은 이 땅에 한 시라도 살려둬서는 안 되는 최고 행악자를 죽여 없애는 십자가 처형장입니다. 골고다 언덕은 의로운 주님으로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는 수치와 고난과 찢어지고 버려진 아픔과 피 흘림과 죽음의 현장이었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으로서 죽어야 할 이유가 없고 죽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그분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고의적으로 그 엄청난 수치와 고난, 수없는 찢어짐과 무너짐과 아픔과 피 흘림의 저주를 당하셨습니다. 진짜 잔인한 행악자라면 그가 고난당하면 당할수록 당연하다고 할 텐데 우리 주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일러스트 / 박철호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이 죽은 자를 살리고,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고, 중풍 병자를 걷게 하고, 소경을 보게 하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게 했습니다. 불행한 인간을 찾아다니면서 그 불행을 해결해 주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박수와 찬양과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을 하셨습니다. 절대로 죽을 일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가 만약에 자신의 죽을죄를 지고 죽는다면 인류의 구세주가 될 수 없습니다. 그분은 죄를 지은 사실이 없고 죽어야 할 이유도 없는 절대적인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이 당하신 고난은 바로 내가 죄 아래서 당해야 하는 고통의 분량, 내가 영육 간에 당해야 할 죽음의 분량인 것입니다. 그분이 담당하신 고난은 죄 아래에 있는 모든 인간이 당해야 하는 저주와 질병과 사망과 종국에는 지옥이라는 고통을 대신하는 현장이었습니다.
이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당하는 현장이 자기의 죄를 짊어지고, 자기의 고통을 대신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는 자는 한없이 미안하고 송구하여 주님 앞에서 몸 둘 바를 모르는 감사로 그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같은 은혜를 소유한 자만이 죄와 저주와 영원한 고통의 지옥에서 벗어나 해방과 자유와 기쁨을 소유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피의 공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 이야기입니다. 그 사건이 자신의 이야기가 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지옥에 가야 합니다. 인간은 이 땅에서 죄로 말미암아 육신으로 땀 흘려야 먹고살고, 해산의 수고를 하고, 온갖 고통 가운데 살아온 인생도 모자라 지옥 불에 가서도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을 예수께서는 친히 십자가에서 대신 짊어지심으로 우리의 영원한 고난을 종결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예수 십자가의 은혜를 소유하라
그 은혜로 말미암아, 지긋지긋한 가난과 육체의 질병에서 부유와 치유의 행복이 충만함으로, 죄와 저주와 죽음과 지옥 공포와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에서 기쁨과 환희와 평안이 넘치는 경험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소유할 믿음은 첫째, 자기 자신이 죄 아래서 저주와 고통과 지옥을 영원히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요,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간이 짊어질 고통과 고난의 짐을 십자가로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셔서 해결했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사53:5-6).
우리의 진정한 신앙과 믿음은 성경이 증거하고, 하나님 아버지가 증거하고, 성령이 증거하고, 사도와 초대교회가 증거한 믿음, 즉 예수 그리스도가 찔리시고 상하시고 징계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심으로 온 세상 죄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확실하게 보고 그 은혜로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채찍에 맞으시고 고난당하시는 신음은 곧 인간을 사랑하시는 그분이 자기 몸으로 피를 토해 내는 소리요, 인간이 찾고 만나야만 하는 은혜의 소리입니다.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 그가 뿜어내는 인간을 향한 그 처절한 피 소리는 죄와 저주에서 고난당하고 있는 우리 인간이 반드시 찾고 만나야 하는 절대적인 생명의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인간의 어떠한 불가능이라도 해결해 주시는 현재성의 이름입니다.
성도여,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허락하신 은혜, 영육 간에 꼭 소유해야 할 그 은혜를 믿음으로 가져서 영육 간에 자유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으로 이루어진 모든 은혜를 소유했노라고 간증합시다. 찬양하며 감사하며 증거합시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이루신 이름인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3-14).
예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합시다. 예수 이름으로 인간을 괴롭히는 귀신도 쫓아내고, 병도 고치고, 죄 사함도 받읍시다. 그 위대한 고난의 이름 예수 이름으로 죄와 저주와 질병과 온갖 고난을 이기고 자유를 누립시다. 고난의 이름, 예수 이름으로 말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38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