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4-15 16:31:19 ]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으니
가슴 터지게 주님께 감사하며 믿음을 내 몫으로 가져야
마태복음 26장 57~68절
“...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증거를 찾으매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가로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의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뇨 하되 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 (중략)... 가로되 저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가로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하나님이 태초에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이 지으신 뜻대로 우리를 이루시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고 했습니다. 이것이 창조자가 인간을 만드신 목적입니다.
끝없이 인간을 미혹하는 마귀역사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 채 이성 없는 동물적 존재와 같이 잘 먹고 잘 살고 잘 입고 욕심을 이루면서 육신의 요구가 흡족히 채워질 때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모든 만물을 인간에게 주시면서 “소유해라, 정복해라, 다스려라”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만물을 지배하며 가장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와서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선악과, 네가 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돼!”라며 미혹했습니다. 마귀가 하는 말을 들어 보니까 정말 하나님이 될 것 같습니다. 미혹하는 마귀는 이처럼 전혀 불가능한 일을 믿어지게 합니다. 돈 있으면 산다고 하는 것도 나이 먹으면 죽는다는 사실 앞에서는 불가능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하나님이 되어 보겠다며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피조물이 조물주인 하나님이 되겠습니까? ‘이 땅에서 돈 벌면 잘 산다’는 말도 곧이들을 수 없습니다. 제일 잘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죽어도 천국 갈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잘 사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짓을 해서 불순종이라는 죄를 짓습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라고 했습니다. 악한 사단, 마귀, 귀신은 “돈 벌어야 산다, 공부해야 산다, 출세해야 산다”라며 속임수를 가지고 속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속이는 원수에게 절대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원한 행복을 확보하자
인간이 숨 쉬고 살아가는 시간은 길어야 100년 미만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돈 벌고 명예를 얻는 목적이 대부분 잘 먹고 잘 살고 행복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애쓰다가 모두 죽고 맙니다. 우리 인간은 영적 존재입니다. 육체가 영원히 살았으면 좋겠지만 육신은 나이 먹고 늙으면 죽습니다.
세상 사람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는 아주 큰 죄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아니한 죄입니다. 이 죄에 걸리면 육신이 있을 때는 그대로 놔두지만 육신이 끝난 다음에는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면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지옥불은 사람이 말로 형언할 수 있을 만한 고통이 아닙니다. 너무나 뜨거운데도 타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불구덩이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는 곳, 바로 하나님 앞에 범법한 죄인이 가서 살아야 할 장소입니다.
성경에 부자가 나옵니다. 얼마나 부자인지 돈을 쓰고 싶은 대로 팍팍 써도 재산이 줄지 않습니다. 그는 지위가 높은 사람, 힘 있는 사람, 돈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과 함께 먹고 마시며 호의호식하고 호화로이 연락하며 즐겼습니다. “나보다 행복한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 할 정도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일러스트 / 박철호
반면 그 부자의 집 문턱에서 얻어먹던 거지가 있었습니다. 병들어 헌데를 앓았는데 개가 상처를 핥을 정도였습니다.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살던 거지는 누가 봐도 비참하고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부자도 거지도 늙어서 죽었습니다. 부자로 호의호식해도, 거지로 고통스러워도 세월이 가고 나이 먹으니까 죽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면 꼭 죽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죽은 다음에 부자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상에서는 더없이 행복하던 그가 유황불이 활활 타는 지옥불에 던져진 것입니다. 육신이라면 타고 죽으면 그만이겠지만 영혼은 비물질이니 타지도 죽지도 않고 영원히 고통만 당합니다.
오늘날 세상에서도 돈 있고 권력 있고 힘 있고 호화롭게 살아가는 사람 중에 예수 믿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렇게 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것은 자기 영광을 위해 살라고 만든 것이 아니라 창조자의 영광을 위해서 살라고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가난하고 멸시받고 천대를 받을지라도 육신이 끝날 때 그 모든 것이 함께 끝납니다. 이 땅에서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지옥에 비하면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이 다하는 그날에 영원히 죽지도 않고 아픔이 없고 고통이 없고 사망도 없는 아름다운 천국에 가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기로 작정해야 합니다.
주님의 고난을 내 몫으로 소유하자
하나님은 구세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으로 계실 때에 말씀하셨고 그 말씀을 인류가 들었으니, 그 말씀은 곧 인류를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1:21).
이 같은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을 사랑하시겠다는 구체적인 사랑을 실천하신 시작이었습니다. 이는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려는 실천을 친히 자기의 육신을 통해서 보여 주시고 체험케 하시려고 직접 나타내시는 현재성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사랑한 결과는 친히 우리의 문제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인간은 허물과 죄로 멸망할 수밖에 없고, 육체의 질병으로 말미암아 고난과 고통을 피할 수 없는 형벌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파멸하는 인간의 영육을 방관하지 아니하시고 성난 병사와 같이 자기 육체에 잔인한 고난을 친히 담당하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언제 예수 그리스도께 영육 간의 멸망에서 우리를 구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까? 주님은 멸망하는 인간보다 먼저 인간이 죄와 저주와 질병으로 영육 간에 망한다는 사실을 아시고 친히 자원하셔서 자기의 육체를 인간 구원을 위하여 그토록 잔인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주님은 인류 구원 사역을 이루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먼저 귀신을 쫓으시고, 병을 고치시고, 죄를 사하시고, 종횡무진 역사하시면서 마귀, 사단, 귀신 역사를 파괴하시고 거침없이 인간을 살리는 일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든 수단을 실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일을 마치시려고 매 맞으시고, 저주받으시고, 피 흘려 죽으시는 죄인을 자처하셨습니다.
인간의 구원을 이루시려고 드린 겟세마네 동산에서 몸부림치던 절규의 기도는 위로는 하나님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았으며 아래로는 온 인류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는 의로우신 성자 하나님으로서 자기의 전능하신 능력을 다 포기하고 인간을 향한 영원한 사랑을 실천하시려고 가야바의 안뜰에서 모진 매질과 수모를 받으면서도 입을 열지 아니하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이 고난이 인류를 위하여 당하시는 것인 줄 누가 감히 짐작이라도 했겠습니까!
홍포를 입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당한 수모와 매질, 피 어린 참상은 위로 하나님 아버지의 가슴을 터질듯이 숨 가쁘게 하는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도 가슴 폭발할 듯이 ‘하나님의 아들이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이럴 수가!’ 절로 터져 나오는 견딜 수 없는 충격으로 영혼과 육체에 전율이 흐르듯 “오, 예수여!” 할 뿐입니다.
더구나 최후에는 십자가에서 잔인하게 처형당하시며 인류의 죽음을 대신해서 죽으시고 인간이 죽어야 할 죗값을 갚으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그 고난의 현장은 하나님에게는 다 이루심이요, 인간에게는 생명의 화산이 터지는, 신인(神人) 주체인 생명의 절정이었습니다.
우리는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주님의 고난을 나의 몫으로 삼고 누려야 합니다. 가슴이 터지듯이 감사하며 주님의 가슴속으로 우리의 믿음을 폭발시킵시다.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합시다. 할렐루야!
위 글은 교회신문 <38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