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은 예수께서 흘리신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
우리도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이웃에게 복음 전해야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는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기에 모든 육체의 생명을 주관하십니다.
정녕 죽음에 처하게 된 인류
하나님께서 인류 구속사를 위하여 갈대아 우르, 우상의 도시에서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을 불러내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사람이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어도 그 목소리 속에 어떤 축복과 생명이 있는지를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부르는 하나님의 축복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창세기 15장 6절 이하에 보면 삼 년 된 암소 그리고 암염소 그리고 숫양, 산비둘기, 집비둘기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짐승들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데 새는 쪼개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피를 흘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피 흘리지 아니한 새 때문에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깊이 잠든 사이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네가 제사에 실패했으니 네 자손이 이방인에게 끌려가서 사백 년 동안 괴로움을 당하다가 사백 년이 지난 다음에 나오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게 모든 것을 임의로 하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먹으면 정녕 죽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곧 죽지 말라고 일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모두 죽지 말라, 멸망하지 말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어서 하나님 말씀대로 정녕 죽음이 오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어느 곳이든지 죄를 지으면 죗값을 죽음으로 치러야 한다는 원칙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죗값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자연 소멸되지 않습니다. 꼭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인류의 죄를 대신한 예수의 피
모든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17:11).
피가 없이는 어떤 육체도 소생할 수 없습니다. 피 소리는 생명의 소리요, 살라고 명령하는 소리입니다.
인류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져 영원한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일러스트/박철호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는 소리는 인류를 죽이는 죄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 곧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이 절정을 이루는 소리였습니다(요3:16).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체로 오신 것은 하나님 사랑의 절규, 즉 피 소리를 뿜어내기 위해입니다.
죗값은 사망이기에 죄 있는 자는 생명의 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셔서 인류의 죄를 사해 주셨으므로 우리에게 예수의 피만 흐른다면 우리도 생명의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고, 예수께서 생명의 소리를 외치셨습니다. 그 생명의 소리 앞에 질병과 귀신이 떠나가고 죽은 자가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생명의 소리는 죽은 자가 살아나는 소리요, 육신의 질병을 몰아내는 소리입니다. 영육 간에 죽음에서 다 소생시키는 소리입니다.
예수의 제자들과 초대교인들도 예수의 피로 죄 사함받아 성령이 임하는 순간에 생명의 소리를 외치면서 예수와 동일한 이적과 표적을 행하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사망 가운데 있기에 생명의 소리, 즉 예수의 피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생명의 피 소리는 예수만이 가진 특성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마귀의 권세를 멸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시고, 피 소리에 담긴 생명의 특성을 우리 인간에게 적용하셨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좆는다는 것은 이 예수 생명의 피를 터트리는 삶을 산다는 말입니다.
죗값은 피 값으로 지불한다고 했습니다.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너희더러 그 아이에게 득죄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피 값을 내게 되었도다 하니”(창42:22)
예수께서 우리의 죗값을 자기 피 값으로 지불했다면 우리도 마땅히 피 소리, 즉 생명의 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믿노라 하면서도 죄가 얼마나 무섭고 그 결과가 죽음이라는 사실이 생각을 지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죄의 결과가 죽음이요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선악과를 먹어 범죄한 순간 정녕 죽음이 임하였습니다. 이 영원한 죽음에서 살리려고 예수께서 피 소리를 낼 육신으로 이 땅에 와서 온 인류를 살리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다는 것은 예수의 육신이 죽어 피 소리를 내러 오셨다는 말입니다.
십자가의 피 소리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 사랑의 절규입니다. 예수의 피 소리를 들은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요, 예수의 피 소리를 들은 자만이 피 쏟으신 예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피를 따라가는 신앙생활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15). 계명을 지키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일이요, 주님을 사랑하면 예수의 피 소리를 듣고 피의 발자국을 따라갑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이 피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가는 삶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사랑하는 성도여, 하나님이 주신 계명 하나하나를 핏자국을 따라가듯 살아보았습니까? 그렇게 살았다면 우리 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다는 증거며, 이는 능력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의 흔적과 능력은 피 소리의 절정이며, 이는 사랑과 용서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예수의 육신을 따라, 그가 말씀하신 계명을 따라, 피 흘리신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입니다. 일평생 이 말씀, 즉 ‘피의 소리’라는 사랑의 음성을 얼마나 따라 걸어 보았습니까?
30년, 20년, 10년, 5년 뒤를 돌아볼 때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사랑한 사실 없이 의무적으로 끌려 다니듯 계명을 지키며 신앙생활을 했다면 예수의 십자가 사랑의 절규가 나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예수의 재림이 임박한 이 때에 심판의 문전에서 주님이 “네가 내 계명을 지켰느냐” “네가 너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랐느냐” “네가 내 피의 소리를 따랐느냐, 죄의 발자취를 따랐느냐”고 물으실 때 과연 당신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습니까.
계명을 지키고 말씀을 따르기는커녕 성경 말씀이라고는 단 한 구절도 이루지 못하고 내 생각, 내 뜻만 앞세우며 살지 않았습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기는커녕 자기를 변호하기에 바쁘지 않았습니까.
피 소리를 따라 살기는커녕 사랑 없어 메마르고 강퍅한 이기주의에 빠져 있었다면 주님 오실 때 무어라 말하겠습니까. 지금 당장 주님께 무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를 지고 사랑의 절규인 피 소리를 내어 인류의 생명이 되신 것같이 우리도 내 몫의 십자가를 지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피 소리를 내는 사람이 됩시다.
피 소리는 사랑하는 것이요, 용서하는 것이요,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죽어가는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하나님 계명의 발자취를 따라갑시다. 힘들고 어렵지만 나를 쳐서 말씀 안으로 계속 들어갑시다. 피 소리의 발자취를 따라갑시다. 생명의 발자취를 따라갑시다. 복음을 전하여 피 소리를 냅시다.
위 글은 교회신문 <40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