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알게 하여
전도를 위해 자기 모든 것을 다 사용할 줄 알아야
누가복음 16장 25~31절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예수의 제자 빌립이 그동안 율법에서 들었고, 많은 선지자가 말했고, 예언이 적중하게 이루어질 만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바로 예수였습니다. 그래서 자기 친구 나다나엘에게 “모세가 기록하였고 율법에 나타난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를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곧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가 바로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말하자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누가 봐도 선한 것이 나올 리 없는 동네가 나사렛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빌립은 “와 보라”고 말했습니다. 친구의 말에 끌려서 나다나엘이 예수께 왔습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을 보시고 “너는 어떻게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가장 간사함이 없이 정직하냐. 네가 무화나무 아래에 있을 때 내가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나다나엘은 빌립이 말한 예수가 바로 이스라엘의 구세주라고 느꼈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소개한 그 예수를 저도 소개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친히 세상에 오시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만물을 인간에게 주시려고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인간은 가장 마지막에 창조되었습니다. 태어나 보니 태양이 있고, 마실 물이 있고, 먹을 양식이 있고, 밟을 땅이 있고, 살아갈 문화가 있지만 이것들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먼저 만들어 놓고 그다음에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지 만물이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망하지 않고 잘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어떤 고생과 고통도 무릅쓰고 자식을 위해 희생합니다. 부모의 가슴속에 있는 천륜입니다. 하나님은 인자한 아버지이십니다. 인간은 자식 사랑으로 가득한 아버지를 떠났으니,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알지 못한 연고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행복한 에덴동산을 선물하셨습니다. 그리고 “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는 먹지 마라.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독약은 알고 먹어도 죽고 모르고 먹어도 죽습니다.
일러스트/노혜지
인간이 몰라서 먹고 죽을까 봐 미리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원수 마귀가 뱀을 이용해서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된다”고 속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결국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정녕 죽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운명에 처한 자들입니다. 이는 천지간에 피조계에서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아버지를 떠난 인생을 찾으러 이 땅에 오셨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사렛의 보잘것없는 마을에서 출발하여 세상 사람이면 누구라도 외면하는 십자가의 길, 골고다 언덕까지 가셨습니다. 그가 가신 고난의 길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신 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죄로 멸망할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을 대신하여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공로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영원히 가로막은 죄의 담을 헌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10:19~20).
예수의 피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았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충성을 바쳐야 하고, 제한할 수 없는 인격적인 행위를 역사해야 합니다.
복음만이 영혼을 구원한다
시편 90편에 인간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했습니다(시90:10). 예수 믿으면 천국이요, 안 믿으면 지옥입니다. 예수 안 믿고 천국 갈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 스스로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도 스스로 살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먼저 알고 믿은 우리가 모르는 이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복음 증거는, 당연히 예수의 증인이니 먼저 나 자신이 은혜 입은 자임을 증거해야 하고, 구원의 은총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증거하여 예수를 알지 못하여 믿지 못하고 지옥 가는 수를 하나라도 더 줄여야 합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허락지 아니하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하신대”(막5:18~19).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16:15~16).
전하지 아니하면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전해서 듣게 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으니 부지런히 듣고 부지런히 전해야 합니다(롬10:16~17).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아니하고 믿는 것은 자연 신앙이요, 이방 종교와 같습니다(겔13:1~3). 자연 신앙은 하나의 정성에 불과하나 우리 기독교의 믿음은 분명하게 듣고 듣는 것을 믿는, 믿음을 주시려는 하나님과 믿음을 가지려고 하는 인간 사이의 진리적인 차원의 영적 이해입니다. 천지간에 어떤 소리를 들어도 구원이 없으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으로 주신 복음만이 우리의 영혼을 능히 구원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3~14).
그러므로 먼저 들은 자가 믿고, 믿고 구원받은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요15:26~27) 주께 받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마28:19~20).
전도는 주님의 지상 명령
전도는 예수를 통해 구원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요1:46~49). 전도 받은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 주고 예수의 제자가 되게 하여 예수를 그의 심령에 모시게 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믿는 자에게는 증거가 있습니다(요일5:8~12). 그러므로 기독교는 체험으로 믿고, 체험으로 알고, 체험으로 전하여 내가 한 체험을 가족, 친지, 이웃도 함께 체험케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령이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수를 아는 자들에게 자기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으며, 오직 성령으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우리는 빌립의 전도와 같이 누구에게나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알게 해야 합니다. 그의 목소리를 듣게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압도당하게 해야 합니다. 또 그의 제자가 되게 해야 합니다. 전도는 주님의 지상 명령입니다(마28:19~20, 막16:17~20). 추수할 수 있도록 잘 심고, 잘 가꾸고, 확실하게 거두게 해야 합니다.
전도하지 않는 것은 불순종이요, 잔인한 짓이요, 주님의 심정에 무관심한 패역 행위입니다. 전도하지 아니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심하는 자요, 사람의 영혼들이 지옥 가기를 바라는 자와 같이 무관심한 자입니다.
전도에 무관심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공로를 업신여기는 자요, 한 사람이라도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방관하는 자요, 성령의 감동을 소멸하는 자입니다.
성령받은 성도는 제자와 같이, 초대교회와 같이, 전도를 위하여 자기 모든 것을 사용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전도를 위하여 독생자라도 사용하듯이 말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3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