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5-26 12:35:26 ]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 이유는 세상에 무슨 의(義)가 있거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세상은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라는 피치 못할 사정에 처했기에 인간의 불행을 방관할 수 없으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신 절대적인 증거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받으신 고난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하나님의 크신 사랑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토록 고난받으시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신 절대적인 표현이요, 증거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려 하지 않고 끝까지 오해하여 고난 속에 내던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실수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는 최후의 고통 속에서도 자기에게 고통을 가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인간은 이 같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전혀 알지 못하기에 겁도 없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기로 결의하였습니다.
당시 유대 총독인 최고 재판관 빌라도가 예수에게는 죽일 만한 죄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면서도 죄 없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자리에 내어준 것은 그 자리가 얼마나 살벌했는지를 분명히 말해 줍니다.
일러스트/박철호
또 예수를 좇다 죽기로 작정한 제자들마저 도망친 것을 보면 그 자리가 얼마나 무법하고 잔인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최고 재판관인 빌라도도 죄 없는 예수 편에 서서 법대로 집행하지 못할 만큼 아무도 예수가 죄 없는 분이라고 변호하지 못했습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저희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마27:22~26).
그 당시는 십자가를 저주의 나무로 여겼기에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은 누구라도 저주받은 자라는 절대적 증거였습니다.
저주받은 자와 함께 있는 자 또한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하기에 십자가를 진 자를 위해 어떠한 변호도 할 수 없는 것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진 자는 가문까지도 함께 저주받아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유는 예수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하려는 목적, 즉 마귀역사의 술수였습니다.
행악자 중에 행악자, 저주받은 자 중에 저주받은 자, 단 한시도 이 땅에 있게 해서는 안 될 죄인 중의 죄인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니 십자가에 달려 죽은 자를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하겠습니까?
누구라도 예수 편에 설 수 없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 저주받은 자로 기억될지언정 하나님의 아들, 유대인의 왕, 구세주라고 말할 자는 천지간에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사람의 변호를 원치 않으시고 성령의 변호를 받으려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사실을 제자들에게 먼저 일러 주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
성령만이 예수의 절대적 변호자
십자가에 대한 성령과 유대인의 증거는 극과 극입니다. 유대인들이 증거하는 십자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받은 자라 하여 사람들의 기억에서 망각시키려는 것이었다면, 성령이 소개하는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와 저주를 담당하신 인류 역사 속에 최고의 행복을 부여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입니다.
성령은 신성 모독죄로 가장 극형의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자기 죄로 죽은 것이 아니라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피 흘려 죽어서 인류를 구원한 구세주라고 소개한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은 예수를 오해하는 자로 하여금 그 오해를 풀게 하는 분이십니다. 성령으로 말하는 자는 예수를 저주할 자라 아니하며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알 수 있다고 주님의 입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성령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분명하게 변호해 주시는 절대적 변호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성령의 증거가 없었다면 제자들은 각자 자기 직업을 찾아갔을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성령이 오셔서 제자들을 예수의 증거자로 자유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부터 보고, 그분에게 듣고 배우고 사역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서 감히 그를 변호하지 못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의 죽음이 불법적인 것이라고 결정적으로 증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니 어떠한 두려움도, 죽음도 문제될 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감동된 사람이면 누구든지 자기의 증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교회도 성령으로 충만해야 부흥합니다. 성령은 마가 다락방에 숨어서 기도하던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를 좇는 자들을 잡아 가두는 살벌한 예루살렘 거리에 나가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이와 같이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아무도 예수가 구세주임을 증거해 주는 이가 없으니 우리는 모두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류를 구원할 계획을 세우시고, 아들 예수께서 아버지의 계획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고, 성령께서 구원을 이루신 아들의 피 공로를 마가 다락방에서부터 세상 끝까지 전해 주었습니다.
성령으로 감동된 많은 사람이 복음을 전하다가 죽었고, 그 피의 발자국이 우리에게 전해진 복음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인류를 구원할 뜻이 있어도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지 않았다면 아무 소용이 없고,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승천하셨어도 전하는 성령이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예수를 믿을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에 관한 소식, 구원에 관한 소식은 성령으로부터가 아니면 들을 수 없습니다.
성령은 지금도 여전히 성령으로 감동된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용하십니다. 교회와 성도가 성령으로 감동되어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오해하여 멸망하는 수많은 인간에게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십자가로 예수 그리스도를 정죄하여 저주했으나, 성령은 십자가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담당하고 피 흘려 죽으셔서 구원하셨다고 세상 끝 날까지, 땅끝까지 전하십니다.
우리 모두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예수를 오해한 자들의 오해를 풀어 주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여 지옥 가는 수를 줄여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시다.
위 글은 교회신문 <43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