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6-09 12:54:17 ]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절대 능력을 나타내셨으니
성도는 제한 없는 권세와 축복 마음껏 누리며 살아야
마태복음 10:1~15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며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죄와 저주와 질병과 사망과 지옥 형벌로 잔인하고 참혹하게 고통당하는 모습을 방관하지 아니하시고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사랑을 베푸셨으니,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같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피 흘려 죽이기까지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며 사랑하신 것은 인간의 박애주의나 인정, 애정, 감정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에 오직 믿음으로, 체험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야 하는 인간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려는 예수라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부자를 봐도 죽으면 지옥 가는 것이 불쌍하고, 거지를 봐도 죽으면 지옥 가는 것이 불쌍합니다.
아무리 권력 있는 자라고 해도 그가 죽어 지옥 간다면 불쌍한 일입니다. 거지라서 불쌍한 게 아니고 부자라서 대단한 게 아니라 목숨이 끝나는 순간에 어디로 갈 것이냐, 이 영원한 문제에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불쌍하지 않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이 누구는 불쌍하고 누구는 불쌍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육신의 생각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호의호식하며 호화로이 연락(宴樂)하던 부자는 누가 봐도 복 받았고 대단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세월 앞에 장사가 없으니, 죽어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죽어 보니 불길이 활활 치솟는 음부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가 불쌍한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자기 처지가 어떤지를 잘 아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애쓰게 됩니다. 불쌍한 사람은 긍휼을 입어야 하는데, 예수만이 긍휼이십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의 집 문턱에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개와 나눠 먹던 거지는 누가 봐도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육체가 헐어서 고름이 나오고 개가 핥아먹는 고통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 역시 세월이 흘러 죽었는데 낙원, 천국에 갔습니다. 그때부터는 누가 행복한가, 불행한가에 답이 나옵니다. 세상은 행·불행을 말하는 곳이 아니라 만들어 내는 곳입니다.
인류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영육 간에 단 한시도 살 수 없으니 지금도 하나님께서 주신 만물을 사용하며 육체가 살고, 하나님께서 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육 간에 살아가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적인 경험입니다. 이같이 인류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인류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긍휼히 여기사 자기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으니 곧 영원한 멸망에서 영생을 얻게 하시려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신앙생활은 복을 절대화하는 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절대 권세와 능력을 나타내셨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전능하신 사역 전부가 인간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어디를 가나 인간의 고통을 방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 제한 없이 고치시고, 해결하시고, 주시고, 역사하셨으니, 예수께서 하신 그 엄청난 이적과 표적은 감히 사람이 할 수 없는 절대적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와 같은 자기 사역을 제자들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제자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재현했습니다. 주님은 평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하는 일을 너희도 하겠고, 나보다 더 큰일을 하리라고 말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
일러스트/노혜지
이같이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서, 인간을 통해서 멸망하는 인간, 고통 속에 있는 인간을 도우려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지구상에 생명을 주러 오신 예수를 환영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것이요, 자신에게 온 복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부유가 복이 아닙니다. 부유로 해결할 수 없는 죄와 저주와 질병을 해결하는 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내 목숨이 끝날 때 지옥 문을 닫아 버리고 능히 영생과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것이 복입니다. 이 자격을 주시는 이는 오직 예수밖에 없습니다. 이 복을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복에 관심을 두면, 이 복을 절대화해야 합니다. 이 복을 사모하고, 이 복을 가지려고 절실하게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 믿는 일입니다.
본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불러서 자기가 하시는 일을 제자들에게 하라고 명령하셨으니 제자들은 전혀 무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같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는 미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출신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주님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너희는 가면서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로 여행을 두려워 말라, 아무 성에나 들어가라, 복을 받기에 합당한 자를 찾아 그 집에 머물러 평안을 빌라, 명령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너희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하셨습니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마10:9~14).
이와 같은 대단한 권세, 대단한 기업을 무지한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성도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을 권세자로 여기지 아니합니다.
더러는 자기들이 월급 줘서 먹고사는 자기들의 시녀나 사환쯤으로 생각할 뿐, 주님이 보내신 자로 여기지 아니합니다.
제한 없는 복을 받으라
사람에게는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주님이 그를 통해 역사하실 때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이 땅에 계실 때 자신을 능치 못함이 없는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믿지 않을 때는 역사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9:23).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았을 뿐입니다. 왕궁의 내시와 같이 어명(御命)을 전할 뿐입니다. 내시는 보잘것없는 존재이나 그가 전하는 어명은 절대적입니다.
성도여, 주의 종이 전하는 설교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인정하면 이적을 볼 것이요, 무시하면 복 받기에 합당하지 못한 자입니다. 오늘 당신들의 불가능이 무엇입니까? 육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무엇이든지 예수로 해결하십시오.
복을 받기에 합당한 자는 자기를 축복하시려는 예수의 명령을 제한하지 아니합니다. 주님을 제한 없이 역사하게 하여 제한 없는 복을 받으십시오. 죄악도, 저주도, 질병도, 마음의 근심도 다 예수가 일하시게 하십시오.
제자는 예수의 일을 하고, 목사도 예수의 일을 합니다. 예수의 권위를 인정하고 제한하지 마십시오.
복을 받기 합당한 자는 내 이상과 환경과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을 하나님이 하실지라도 다 수용합니다. 환영하고 받아들입니다.
자기 지식과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축복이 자신을 장악해 들어오는 것을 가로막지 않습니다. 설교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하나님이 점령하겠다는 표현입니다.
제발 점령당하십시오. 완전히 점령당하십시오. 축복의 기회를 소유하십시오.
위 글은 교회신문 <43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