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최후의 계명
구령의 정신으로 세상 끝 날까지 복음을 전해야
마가복음 1장 35~39절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
하나님은 자기 뜻대로 일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하신 사역과 장차 하실 사역을 성경에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성경에 기록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신 것입니다(요19:30).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신 것을 인류가 모두 알고,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전도는 주님의 최후 명령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전도를 위해서입니다. ‘전도’는 예수 안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알게 전해서 예수 믿고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받게 하여 영생과 천국에서 영원히 살도록 만들어 주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일이 바로 ‘전도’입니다. 이 전도를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는 뜻을 정하시고 그 뜻대로 일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과 뜻을 같이하여 예수와 함께 영혼 구원의 뜻을 이루며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최후의 계명이요, 그 계명을 받은 구원받은 성도가 이루어 가야 할 사명입니다(막16:15~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8~20).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저는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지만 너무 많이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영생과 천국을 가졌다면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신 모든 고난을 가진 것입니다.
통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셨고, 그가 영생하듯이 나도 영생할 것이요, 그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듯 나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것이요, 그가 천국에 계시듯 나도 영원히 천국에 있을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말씀대로 이루셨습니다. 이것을 알고, 보고,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내어 우리에게 보여 주고 경험하게 하십니다.
이방종교의 교리는 경험이 될 수 없으나 하나님 말씀은 살아서 지금도 내게 하시는 말씀이요, 주님이 흘리신 그 피가 나 때문이니 그것을 현재성으로 내가 경험하고 있습니다.
영혼 구원의 사명은 목숨보다 큰 것이기에 주님은 자기 목숨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죄가 없으면서도 죄인 중의 죄인 괴수와 같이 행악자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피 쏟아 죽으셨습니다. 예수와 함께하는, 구원받은 믿음의 사람이라면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고통당할 인류를 구원하는 일에 생애를 다해야 합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2~14).
영혼 구원에 인생을 쏟아야
예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인류의 죗값인 사망을 죽으심으로 대신 갚아 이를 믿고 회개하는 사람마다 영원히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38~40).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하심을 알고, 믿고, 전하되 육신의 때에 다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5~8).
곧 자기 인생을 영혼 구원하는 전도에 쏟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다 쏟으셨듯이 우리도 다 쏟아부어야 합니다. 복음 전도는 주님과 같은 정신을 갖고 ‘나는 죽어도 너만은 살아야 한다’는 한 알의 밀알 같은 생애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님과 영혼 구원의 뜻을 같이하는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요 전도자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행2:38~39).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10:5~8).
주님과 뜻을 같이하는 전도
제자들이 전도하는 것은 주님과 뜻을 같이하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성령으로 재현하는 것입니다. 전도하라는 주님의 최후 계명은 명령이기에 행하면 좋고 안 해도 무방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공로를 전하지 아니하면 인류 구원의 하나님 아버지의 뜻도, 그 뜻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 헛것일 뿐입니다.
그토록 인류가 구원받기를 바라셨던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뜻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류의 죗값을 치른 고귀한 희생의 대가가 헛것이 된다면 참으로 아깝고 안타깝습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자기 목숨보다 크게 여기는 사람들만 절대 조건으로 시행합니다. 곧 구원받은 조건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재현하는 조건이요, 한 사람이라도 더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건져내 살리는 구령 열정이라는 사명의 조건입니다.
그러므로 전도하지 않는 것이 죄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요, 구원자를 향한 불순종과 반항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죽음이 타살입니다. 질병의 타살, 사고의 타살, 천재지변의 타살. 그 다음이 자연수명입니다. 오래오래 살다가 안 죽고 싶은데 죽습니다.
우린 이렇게 죽지 말고 주님이 내 영혼 구원을 위해 죽으셨듯, 제자들이 우리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죽었듯, 가장 값진 죽음을 고대합시다.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은 죽도록 전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교회도, 목사도, 모든 성도도 영혼 구원이라는 전도를 위해 존재합니다. 당신의 심술 궂은 무관심, 남이야 지옥 가든 말든 지나치는 이기주의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령의 정신을 멸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몰라 지옥 가는 수많은 영혼의 살고 싶어 몸부림치며 당신이 전도하는 목소리를 기다리는 갈망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귀 있는 사람은 저들의 갈망하는 요청을 들으십시오. 전도합시다. 전도합시다. 나의 가정에, 이웃에, 나라에, 세계에 예수 몰라 지옥 가는 영혼이 사라질 때까지 말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6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