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04-18 13:53:48 ]
어떤 고난과 핍박과 환난이 닥치더라도 전도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으니 오직 영혼 구원에 전력해야
디모데후서 4장 5~8절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본문은 지구상에 전무후무한 인생을 살았던 사도 바울이 자기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 유언의 말을 하며 성령의 감동에 따라 지금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명령은 들어도 되고 안 들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명령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지을 때 명령하셨습니다. “태양이 있어라. 달도 있어라. 별도 있으라. 윗물과 아랫물이 갈라져라. 바다와 땅도 갈라져라. 산천초목아, 생겨라. 동물도 생겨라.” 이것은 모두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명령입니다.
예수께서도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요12:49~50)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세주 예수를 만나 바울이 된 사울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억세게 핍박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히브리 사람이요,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교육도시 다소에서 자랐고, 전 세계에서 여덟 명만 제자를 두었던 가말리엘의 문하생일 정도로 그 시대 엘리트였습니다.
그런 사울이 예수를 핍박했습니다. 요셉의 아들, 나사렛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요, 구세주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교의 하나님을 모독했으니 그 죄로 죽여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사울이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요셉의 아들로 알아서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해서 승천하시고 난 후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그들을 핍박했습니다. 예수를 좇는 자들을 똑같은 신성모독죄인으로 여기고 잡아다 옥에 가두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도 가표를 던졌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다메섹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잡아들이기 위해서 가고 있었습니다. 도중에 갑자기 “사울아! 사울아!” 하는 목소리와 함께 빛이 쏟아지면서 두 눈이 멀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다.”
그 순간 율법에서 말한 예수를 깨닫게 됐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의 정죄를 담당하고 찔리고 상하고 징계받고 채찍에 맞고 피 흘려 죽으신 구세주라는 사실을 깨닫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후 애절하게 하나님께 회개하며 ‘사울’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습니다. 사울은 세상에서 큰 자라는 뜻이요, 바울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라는 뜻입니다.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바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할 때 보이지 않던 눈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다음부터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자기 신분을 버리고, 출신도 지식도 환경도 버렸습니다. 세상에서는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다 버려도 아깝지 않은 것은 그만큼 소중한 것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더 큰 것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를 아는 고상한 지식을 알고 나니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이 배설물처럼 보이더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3:7~9).
예수 외에는 궁극적으로 구세주가 없다는 것과 인생이 살아야 할 본질과 육체가 있을 때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본질을 드디어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고난이 따르는 복음 전도의 길
바울이 구브로에서 시작해서 마지막 로마까지 가는 복음 전도 여정은 엄청난 과정입니다. 얼마나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3~27).
겸손한 바울이 ‘수고를 넘치도록’ 했다고 표현한 것은 인간으로서 한계를 초월할 만큼 고생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환경과 지식과 신분과 출신을 배설물처럼 버릴 만큼 예수를 아는 것이 고상한 지식이라고 한 것처럼 예수를 알면 예수를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런 모진 고난을 겪은 것은 오직 복음 전도를 위해서였습니다. 한 사람도 예수 몰라서 지옥 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마지막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죽을 날을 얼마 앞둔 시점에서 자기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부탁합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4:1~5).
전도에는 꼭 고난이 있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도 고난 없이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마귀, 사단, 귀신이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들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하고 싶게 만들어서 죄를 짓게 합니다. 그 죗값은 사망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다고 했습니다(요일3:8). 지옥 가기로 작정된 마귀와 함께 지옥 간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죄를 지으면 교도소나 구치소에 가서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면 죗값으로 병들고 저주받고 고통당하며 불가능의 고통 속에서 망할 수 있습니다. 목숨이 끝나는 순간에 마귀에게 미혹받은 자는 마귀와 더불어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옥 가서는 안 됩니다. 지옥을 향해 가는 자를 방관해서도 안 됩니다. 복음을 전해서 꼭 살려내야 합니다. 매를 맞는 일이 있어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고난을 당해도 전해야 합니다. 죽음이 와도 전해야 합니다. 그가 지옥 가서는 안 되니 살려내야 됩니다. 이것을 위해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살 찢고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내가 죗값으로 지옥 갈 죄를 대신 짊어지고 예수께서 죽으신 것이니 나는 죄에서 합법적으로 해방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는 것이 전도입니다. 이 소식을 전해서 지옥 가지 않도록 구원하는 일이 전도입니다. 예수 십자가의 피 공로로 구원받은 성도는 이 사실을 내 가족, 내 형제, 내 이웃,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7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