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영혼의 때를 위하여

등록날짜 [ 2017-04-26 07:30:23 ]

창조주 하나님이 정한 법칙대로 모든 사람에게 육신의 죽음 이후 ‘영혼의 때’ 반드시 찾아와
예수 믿는 목적은 죄로 말미암은 멸망에서 벗어나 영혼의 때에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누가복음 16장 25~31절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찌니라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사람들은 인간이 어디에서 나왔는가를 알지 못하여 진화론, 자연론, 유출론 등 여러 가지 이론을 들어 인간의 출현 근거를 밝히려 하지만, 인간이 어디에서 진화하고 어디에서부터 유출하였는지 등 자신이 주장하는 근거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합니다. 과학이 인간의 출현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만드시고 제일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이 소를 사 올 때도 외양간을 미리 준비해 놓고 사 오듯이, 인간이 사용하고 누릴 천지 만물을 모두 창조하신 후에 마지막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지으신 후 이레 되는 날에는 하나님도 쉬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삶의 법칙으로 살아가는 모든 인간
성경에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흙으로 창조하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령(生靈)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한 인간에게 삶의 법칙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법칙 외에 다른 방법으로 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신 삶의 법칙대로 살아갈 때 가장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남자를 지으시고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시어 둘이 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니 사람이 나누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창2:22~24).

이처럼 부부는 한 몸이기 때문에 일신(一身)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님이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말씀에 따라 인간은 자녀를 낳고 살게 됩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7~28).

하나님을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사는 것은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법칙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또 인간에게 이마에 땀이 흘러야 필경은 먹고 살리라고 명하신 대로 인간은 누구나 땀 흘리고 수고하며 삽니다(창3:19). 인간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삶의 결과는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하신 말씀대로 인생은 누구든지 수고와 슬픔 속에서 살아갑니다(시90:10).

또 하나님께서 너희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으니, 누구든지 죽음을 거부하고 부인하고 버틸 수는 없습니다.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9).

아무리 좋은 보약을 먹고 열심히 운동해도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최후의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지식으로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왔다 가는 존재입니다. 육체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고, 육체를 움직였던 영혼은 하나님에게서 왔으니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영원한 행복과 영원한 고통
성경 본문은 한 부자와 거지 이야기입니다. 부자는 이 땅에서 날마다 호의호식하며 살았고, 거지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주린 배를 겨우 채우며 살았습니다. 이렇게 이 땅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든지 간에 인간은 모두 죽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호화롭게 부를 누리며 산 부자도 죽고, 고통 속에 산 거지도 죽었습니다.

이 땅에서 삶이 끝나면 그만인 줄 알았는데, 죽은 다음에 거지는 천사에게 받들려 행복한 낙원에 가 있고, 부자는 활활 불타는 음부에 가 있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불에 가까이 가면 따뜻하고, 더 가까이 가면 뜨겁고, 더 가까이 가면 타서 죽습니다. 그러나 영혼은 비물질이요, 무형상이요, 존재요, 인격이기 때문에 타지도 않고 죽지도 않은 채 영원히 삽니다. 거지는 낙원에서 행복하게 영원히, 부자는 음부의 불 속에서 고통스럽게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낙원에서 영원히 사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인데, 음부의 불 속에서 영원히 사는 것은 얼마나 견디기 힘든 고통이겠습니까.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영원한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고통 가운데서 부자가 눈을 들어 낙원을 보니, 자기 집에서 얻어먹던 거지가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아버지여! 내가 불꽃 가운데서 견딜 수가 없으니 우리 집에서 얻어먹던 거지 나사로의 손끝에 물을 찍어서 내 혀를 서늘하게 해 주세요!”라고 외칩니다. 음부라는 곳은 아무리 많은 물을 쏟아부어도 서늘할 수가 없는 곳인데 말입니다.

부자는 자기 요청을 거절당하자, 자신과 똑같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는 다섯 형제가 세상에 있으니 죽은 나사로를 살려 보내서 그곳에 오지 않도록 권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죽은 자가 살아나서 말해도 곧이듣지 않을 것이며, 또 세상에는 목사와 전도자, 교회가 있으니 그들에게서 전해 들으라는 것입니다.

일러스트 / 박철호
 

영원히 행복한 삶을 준비해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인간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께 영광 돌린 자들을 하나님과 영원히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이,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지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세상에서 방황하며 살다가 하나님을 모른 채 세상을 떠나게 되면, 하나님은 분노하시고 그를 지옥에 던져 버리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죄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큰 지식입니다.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할 인간을 대신하여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시기까지 사랑하십니다. 교회가 사람들을 초대하는 이유는 죄가 무엇인지, 멸망이 무엇인지, 지옥이 무엇인지, 왜 사는지, 왜 죽는지도 모르고 사는 대단히 위험한 사람들이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서 나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영적 존재이며 항구적 존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육신이 끝나면 그만이라면서 일회적 존재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영적인 무지(無知)입니다. 세상에는 참이 없고 진리가 없습니다. 다 사라지고, 없어지고, 썩고, 변화되어 가는 무책임한 것들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진리이기에 태초부터 영원토록 변치 않으며, 그러하기에 우리의 믿음이 됩니다.

세상의 유물주의는 성난 파도와 같이 인간의 삶과 생각과 마음을 모조리 파괴해 버립니다. 세월이 당신의 육체를 삼키고, 육체가 세월을 삼키고, 세상의 명예, 지식, 물질, 권세, 문화가 당신의 육체를 한입에 삼키려고 합니다. 우리는 잔인한 세월 앞에, 물질문명 앞에 삶의 가치관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육신이 있는 동안 우리 영혼이 영원히 살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잘 포장된 것 같으나 실상은 썩은 송장만 있는 회칠한 무덤과 같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사람을 모아서 과시하려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잠깐 사는 칠십 년, 팔십 년 동안 어디서 온 인생인지,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 어디로 가는 인생인지를 잘 알아서 속지 말고,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자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2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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