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7-06-12 14:34:53 ]
예수 십자가 피의 공로로 죄를 씻고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 들어갈 수 있어
구원받은 성도들은 세상 의지하지 말고 영원토록 영혼을 보존하시는 성령 안에 거해야
사도행전 2장 37~42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천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셔서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인간이 바로 아담입니다.
마귀에 속아 죄인이 된 인간
인간은 아담을 모르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모르면 이 땅에서 실패자가 되고, 실패자는 결국 마귀와 더불어 지옥에 가서 영원히 쉼 없는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아담 때부터 인간에게는 지옥 갈 밑천이 생겼습니다. 그 밑천이 바로 죄요, 죄는 불순종입니다. 불순종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마귀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만물을 임의로 먹고 사용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 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만 먹지 말라.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에는 목회자가 성도에게 “신앙생활 잘해 달라, 예배 시간 잘 지켜 달라, 기도하자, 하나님 말씀대로 살자, 죄짓거든 회개하자”고 말합니다. 이는 곧 한 사람도 육신의 소욕과 정욕의 요구에 빠져 자기 영혼을 사망의 생각으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주님의 심정입니다.
인간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마귀역사는 인간의 기능과 지능을 뛰어넘습니다. 인간을 얼마든지 속여서 죄짓게 하고 정당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죄지은 사람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변명하기에 바쁩니다. 뒤에서 죄를 덮고 죄를 감추고 죄를 짓게 한 마귀역사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바로 간교하게 거짓으로 속이고 어두움으로 장악한 마귀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전체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신 말씀은 죄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사람의 양심이나 도덕, 윤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양심의 기준에서 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양심의 기준을 알지도 못할뿐더러 인간의 양심의 기준에서도 죄를 이겨 낼 능력이 없습니다. 이는 처음 사람 아담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실과를 마귀에게 속아서 먹었습니다. 마귀가 먹어야 된다고, 그래야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되고 선악을 알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마귀의 말을 듣고 망하게 되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도 하나님의 양심과 달리 인간의 생각하는 것과 계획하는 것이 항상 악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들은 악한 줄 몰랐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홍수로 지면에서 사람을 쓸어 없애 버리셨습니다. 바로 죗값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죄를 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죄를 알면 하나님의 기준 앞에 회개해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구원을 보존하는 절대적인 하나님
하나님은 거룩한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나타내셨으니 곧 그의 말씀이시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인간의 영육을 파괴하는 죄를 담당케 하시고, 죄에서 벗어난 자들에게 그 증거로 성령을 선물로 부어 주셨습니다.
성령은 죄 사함받은 자들에게 오셔서 하나님과 절대적인 화목을 이루게 하시고 우리의 영혼과 영원히 함께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
성령은 속죄(贖罪)하는 절대적인 요소는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을 보존하는 절대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구원주이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으니(롬10:13),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곧 구원을 얻은 자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종교적 의미로 부르느냐, 교리적 가르침으로 부르느냐, 아니면 성령의 감동과 체험으로 부르느냐입니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요, 영원한 문제입니다.
예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7:21). 성령의 감동 없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의식적인 자요, 지식적인 자요, 실상은 주와 무관한 자인지도 모릅니다. 성령으로 하지 아니하고는 주를 주라 시인할 수 없고, 성령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2:10).
성령을 선물로 받으라는 것은 하나님과 사이에 원수된 죄가 풀어지고 화평이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는 죄를 예수가 친히 끝내셨으니 믿고 회개한 자에게 성령이 임하여 화평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일러스트 / 박철호
영원토록 인도하시는 성령과 함께하라
제자들은 예수를 좇았지만 주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붙잡히셨을 때 잔인하게 부인하고 각기 제 길로 떠났으니, 성령이 아니고는 눈으로 보아도, 귀로 들어도 주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시자 죽기까지 주를 시인했습니다. 성령으로 주를 인정하는지 인정하지 않는지 죽음 앞에서는 확실히 드러납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셨을지라도 성령이 아니고는 선지자의 글을 읽으며 살았던 서기관도, 제사장도, 바리새인도 예수를 전혀 알지 못하였고, 오히려 예수를 행악자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잔인하게 죽이고 말았습니다. 예수가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을지라도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 수 없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1).
하나님의 아들을 훼방하고 거역했더라도 깨닫고 회개하면 죄를 사함받지만 성령을 거역하고 훼방한 죄는 영원히 사하심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12:31~32).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죄를 씻고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면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것이니,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과 삼위일체(三位一體)가 되십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은 인정하지만 성령의 역사는 부인합니다. 이것은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처사이니,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성령은 인류 구원을 위하여 아버지와 아들과 동역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고,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고, 보존하고 양육하십니다. 주님은 자기가 흘리신 십자가 피의 공로로 죄 사함받은 자들을 즉시 성령에게 맡기셨으니, 구원받은 영혼은 오직 성령 안에 있어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시기에 자기가 피 흘려 구원하신 영혼을 절대로 빼앗기지 아니하십니다.
성도여, 비록 우리의 육신은 세상에 있을지라도 우리의 영혼만은 성령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보존하고 양육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죄와 저주에서 구원받은 자기 영혼을 세상의 지식이나 이론이나 명예나 재물로 양육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은 자기 육신이라도 자기 영혼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직 사망으로 이끌고 갈 뿐입니다.
아버지를 떠난 탕자를 세상이 학대하듯이 세상과 육신은 자기 영혼의 합리적인 학대자일 뿐입니다. 오직 성령만이 귀중한 나의 영혼을 맡을 영원한 아버지이십니다. 성령으로 난 자만 성령에게 양육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3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