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영혼의 때를 위하여

등록날짜 [ 2019-05-02 15:50:12 ]

영혼의 때를 위하여
누가복음 16장 19~31절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 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 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찌니라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하나님 앞에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세상에서 방황하며 살아가는 것
지혜로운 농부가 봄에 씨 뿌려 가을에 거두듯 오늘 예수 믿어 영혼의 때 준비해야



하나님이 주신 삶의 법칙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이 생령(生靈), 곧 아담이 되게 하셨습니다(창2:7~8). ‘아담’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영적 존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한 영적 존재인 사람에게 천지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살도록 축복하셨고, 인격과 언어를 주어 문화를 이루며 살게 하셨습니다. 또 사람에게 삶의 법칙을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법칙 외에 다른 방법으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남자를 지으신 후 남자의 갈비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시고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창2:24)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곧 우리 인간에게 주신 부부 윤리요, 가정의 기초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1:28)고 하셨으니, 사람이 성장하면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또 인간은 땀 흘려 일해야 먹고산다고 말씀하셨으니(창3:19), 사람은 누구나 땀 흘리고 수고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경제 윤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삶의 결과는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하셨습니다(시90:10). 인간은 누구든지 자기 삶을 뒤돌아볼 때 수고와 슬픔 속에서 살아왔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9)고 하셨으므로 누구라도 죽음을 거부하거나 부인하고 이 땅에서 영원히 버틸 수는 없습니다. 이같이 인간은 이 땅에 잠시 왔다 가는 존재입니다. 육체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에게서 왔으니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최후의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어떤 지식으로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인간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자 함이요, 하나님께 영광 돌린 사람들을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이 주신 공기로 호흡하고, 하나님이 주신 물을 마시고, 하나님이 주신 건강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남의 물건을 도적질하거나, 거짓을 행하고, 살인하고, 간음하며, 국가에 반역하고, 가도(家道)를 폐하는 것 등을 죄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사실을 알지 못하고 세상에서 방황하며 살다가 하나님을 모른 채 세상을 떠나면, 하나님은 그를 지옥 형벌로 다스리십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죄가 무엇인지, 멸망이 무엇인지, 지옥이 무엇인지, 또 왜 살고, 왜 죽는지도 모르고 영원히 불타는 지옥을 향하여 질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해결할 수 없는 죽음의 문제
사람들은 자신이 영적 존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육신이 끝나면 그만이라고 하여 일회적인 존재로 살아가려 합니다. 세상에서 잠시 사는 나의 목숨이 끊어지면 영적 존재인 영혼이 영원히 산다는 영적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이 땅에서 경제적 욕구, 정치적 욕구, 명예 욕구를 채우려고 온갖 지식을 총동원해서 칠십 년, 팔십 년 사는 일에만 전력을 기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면 결국 그것이 죄가 되어 망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 무지입니다. 자기 영혼이 지옥 간 후, 그때서야 영적 세계를 깨닫고 “이럴 줄 알았으면 예수 잘 믿고 하늘나라 갈 걸” 하고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지옥은 한번 갔다가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산다고 생각합니다. 월급쟁이가 매달 받는 월급은 그가 새벽부터 출근하여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 일한 한 달 인생과 바꾼 것입니다. 그의 아내는 그 돈으로 가족이 먹고 입는 문제를 해결합니다. 바로 그의 한 달 목숨을 가족이 입고 먹으며 사는 것입니다. 그가 한 달 목숨을 몇 번이나 월급과 바꾸면 그의 인생이 끝날까요?

자기 육신이 살아 있는 동안 다 쓰지도 못할 돈을 벌어서 쌓아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돈을 벌려고 밤잠을 설쳐 가며 사업계획을 세우고, 전 세계를 다니면서 사업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 몸이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 병원에 갔다가 중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는 사람도 많습니다. 의사에게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살려만 달라고 아무리 애원해도 해결할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돈을 벌기 위해서 밤잠을 설치고 살았던 그에게, 잔인하게 죽어 가는 그에게 돈은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죽음 하나 해결할 수 없는데 목숨을 바쳐야 할 가치가 있을까요? 돈의 무용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죽어 갈 때 돈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배워야 산다고 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나이 40세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박사라는 지위를 얻기 위해 40년 인생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박사라는 지위가 또 그를 30년간 부려 먹었습니다. ‘박사’가 70년 인생을 다 부려 먹고 난 후 그가 세상을 떠날 때, 박사라는 지위는 그의 목숨을 일 분도 연장해 주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권력이 있어야 산다며 권력을 얻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독재자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생죽음시키면서까지 권좌에 앉았습니까? 권력을 잡은들 그 권력이 얼마나 오래갑니까? 그 권력으로 자기 인생을 하루라도 더 연장할 수 있습니까? 그 권력으로 자기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무용지물입니다. 이렇게 인생은 모든 것을 얻기 위하여 투쟁하다가 얻은 것 같으나 얻지 못하며, 잡은 것 같으나 잡지 못하고 그냥 빈손으로 가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방법
어떤 사람은 자식을 잘 양육해서 좋은 학교에 보내야 산다고 합니다. 자식 하나 잘 키워 보려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이며 평생 죽을 고생 다하고 키워도 부모 심정을 제대로 아는 자식이 있습니까? 이 세상에 어떤 자식이 부모가 키운 만큼 효도하며, 부모가 자신에게 쏟은 사랑의 분량을 다 알겠습니까? 잘 길러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면 그다음부터는 부모를 쳐다보지도 않는 자식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부모가 사랑으로 자식을 키울 뿐이지 자식이 효도하기를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이 됐습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만 줄 뿐, 부모의 고통을 나눌 수 없고, 죽어 가는 부모의 목숨을 일 분도 연장해 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잘 키운 자식이라도 죽음 앞에서는 무용지물입니다.

부지런히 돈 벌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느냐고 물어보면, 다들 “먹고살려고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먹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이도 먹으면 죽고, 밥그릇도 많이 먹으면 죽습니다. 제일 고등사기꾼이 밥그릇입니다. 먹으면 산다더니 먹어도 다 죽습니다. 우리는 하루에 세 번은 꼬박꼬박 먹어야 산다고 속아 살았습니다. 밥을 먹어야 사는 것이 아닙니다. 밥그릇은 한때 배를 채울 수 있지만 영원히 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70년, 80년 살다가 때가 되면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한 이치입니다(창3:19).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려는 근성을 버려야 합니다. 부활하여 변화된 몸으로 천국에서 영원히 살려는 근성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 유물주의는 휘몰아치는 태풍과 성난 파도같이 인간의 삶과 마음과 생각을 잔인하게 빼앗아갑니다. 돈 있어야 산다, 많이 배워야 산다, 권력 있어야 산다, 먹어야 산다, 명예 가져야 산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의 육체는 세월 속에 철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철거반이 철거민 촌을 철거하듯이, 인간의 육체는 일 년 살면 일 년 철거당하고, 십 년 살면 십 년 철거당하고, 오십 년 살면 오십 년 철거당하고, 마지막 숨질 때는 모조리 철거당해서 한 줌 흙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때 우리 영혼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세상에서도 집이 철거당하면 이사할 집이 있어야 하듯, 우리 영혼도 육신의 때가 마감할 때 이사할 처소가 있어야 합니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마련해 주신 처소, 천국입니다. 천국이 우리 영혼의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은 인간의 육체를 삼키고, 육체가 세월을 삼키고, 세상 명예나 지식, 물질, 권세, 문화가 인간의 육체를 한입에 삼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잔인한 세월과 물질문명 앞에 삶의 가치관을 분명히 재정립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사용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살 부유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인생의 존재 가치
나무는 여름에 잎이 무성하다가도 가을이 되면 퇴색하여 잎이 지고 앙상한 가지 위에 열매만 남습니다. 이것은 나무의 존재 가치가 가을에 맺는 열매에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도 가을이 되었을 때, 인생의 존재 가치를 나타내 줄 생명력 있는 신령한 영적 작품을 꼭 남겨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영혼의 때를 위한 준비입니다.

본문의 부자는 천국과 지옥을 알지 못하여 세상에서 호화로이 연락(宴樂)하다가 영혼의 때를 준비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그 결과 음부의 불꽃 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세상에서는 죄를 범하면 사형, 무기징역 등 죄에 따라 형량이 다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죄를 범하면 경중(輕重) 없이 모두 사망입니다(롬6:23). 성경에서 말하는 사망은 세상에서 육신이 죽듯이 목숨만 끊어지는 것이 아니고, 영혼이 지옥 불에서 영원히 고통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차라리 죽어 버리면 좋을 텐데 영혼은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에 절대로 죽지 않고 고통과 괴로움을 끝없이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우리 인간의 멸망을 방관하지 아니하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는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죗값을 단번에 갚아 주셨습니다. 아들이 빚을 백만 원 짊어져서 빚쟁이에게 시달릴 때 아버지가 대신 갚아 주면 그 순간에 아들은 빚에서 벗어납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할 나를 대신해 하나님의 아들이 내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었다는 사실을 믿기만 하면 오늘까지 내가 어떠한 죄를 지었든지 사함받고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믿지 못해서 지옥에 간다면 이보다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은 돈 드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기로 작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고통 중에 부자가 아브라함를 향해 절규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눅16:24). 이 같은 절규가 예수를 모른 채 지옥 고통의 현장에서 신음하며 몸부림치는 당신의 모습이라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또한 당신 부모 형제의 절규라면 어찌하겠습니까?

바로 눈앞에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죽어 가는 사람이 있다면, 설령 자기는 빠져 죽을지언정 물에 뛰어들어 그 사람을 건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또 눈앞에서 불에 타 죽어 가는 사람이 있다면, 설령 자기는 타 죽을지언정 그 처참한 현장을 바라만 볼 수 없어 뛰어들어 살려 내고 싶어 못 견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당신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눈이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당신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눈임을 아셔야 합니다. 오늘이라도 당신이 세상을 떠나면 영원히 지옥 형벌을 피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방관만 할 수 없기에 애타게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이 진실한 사랑의 호소를 받아들여 예수 믿고 구원받기를 바랍니다.

지혜로운 농부는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곡식을 거둡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오늘 예수 믿어 영혼의 때 하나님의 품에서 행복합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농부라도 농토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듯이, 죽은 다음에는 지옥이라는 최악의 고통 가운데서 아무리 깨닫고 이를 갈며 후회해도 예수 믿을 기회가 없습니다. 육신이 있는 오늘이 예수 믿을 절호의 기회요, 구원의 날입니다. 음부에서 몸부림치는 부자는 지금도 그곳에 있습니다. 영원히 그곳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간에 예수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렸다는 사실 하나만 믿으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행복과 부유를 누리게 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2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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