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성령 충만하여 예수만 나타나게 하라

등록날짜 [ 2019-05-28 14:22:46 ]

요한복음 1417~21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세상에 보물 쌓아 놓으려고 사는 사람과 하늘나라에 쌓아 놓고 사는 사람은 삶이 달라

성령 충만한 사람은 육신이 끝나면 살게 될 하늘나라에 영광스런 면류관 만들며 살아

가장 불행한 사람은 영적으로 자기를 인도하고 성장하게 할 성령의 역사가 없는 사람

 

본문은 예수께서 자기를 좇는 이들과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아버지께 가면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 줄 것이다. 그분은 너희와 영원토록 함께 있을 분이니 잘 모셔라라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이 경험한 가장 위대한 사랑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는 죄로 멸망할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셔야 했습니다.


그뿐입니까?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인류 사랑을 몸소 이루시기 위해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대속물로 내놓아야 했고, 성령께서는 죄로 지옥 갈 영혼을 살리려고 수많은 전도자를 순교 현장에서 피 흘려 죽게 하기까지 복음을 전하도록 쓰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아들의 죽음을 마다하지 않으셨으니 하나님 사랑은 위대하면서도, 잔혹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6). 이 한마디 말씀 속에 그토록 강렬하고 깊은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독생자라는 말을 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죗값을 대속해 주시려고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죽게 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의 목적은 영생을 주기 위함이다

우리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사망, 즉 지옥이라는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사망이라는 빚이 얼마나 무섭고 대단하기에 지옥에 떨어지는 순간부터 이 사망의 빚을 영원히 갚아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죗값을 갚을 길 없기에 영락없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가 당할 영원한 사망을 자신이 대신 죽어 갚아 주셔서 우리를 지옥 신세에서 면하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 죽어도 사망의 죗값을 갚으신 예수의 피의 공로로 천국에 들어갈 복을 받았으니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본문인 요한복음 1417절에 성령을 가리켜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은 성령을 알지도 못하고 받을 만한 자격도 없습니다. 죄가 가득하고 또 회개한 경험이 없고, 예수가 피 흘리신 속죄의 은총을 가진 경험이 없기에 성령이 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피 흘려 죽으셔서 내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당할 사망의 빚을 갚아 버렸다는 사실을 믿고 회개한 사람에게는 성령이 임하십니다.


이 사람만이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라고 찬양을 부를 수 있습니다. 만약 세상 사람들에게 성령을 충만히 받으라고 하면 경제적으로 어떤 이익이 있습니까? 성령 받으면 돈 벌고 출세합니까?”라고 물어볼 것입니다. 성령 충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반대되는 행동과 마음과 생각과 이념에서 오는 죄를 회개로 다 털어 버리고 성령께 장악당한 상태를 말합니다. 한마디로 나 자신이 성령의 인격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과거에는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았지만 성령 충만하여 성령이 내 안에 인격화되면 반드시 성령의 뜻대로, 내 영이 원하는 대로 살게 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성령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백 명이 모여도, 천 명이 모여도 서로 생각이 같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영생을 소유한 자로서 육신이 끝나면 살게 될 하나님 나라에 자신의 집과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열심히 만들어 갑니다. 세상에 보물을 쌓아 놓으려고 사는 사람과,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아 놓고 사는 사람은 삶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을 헛수고하지 않으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을 모시고 신앙생활 하라

본문인 요한복음 1417절에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겠다는 말씀은 어마어마한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와 계시다는 말은 천지 창조의 주인이 내 안에 와 계시고, 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절대자가 내 안에 와 계시고, 인류 역사를 심판하실 전능자가 내 안에 와 계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입니다.


성령 받기 전에는 내 육신을 섬기느라 바빴는데 성령이 충만하니까 성령을 모시고 살기에 바쁩니다. 성령께서는 의로운 생활, 거룩한 생활, 신령한 생활을 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멸망할 영혼을 사랑하여 전도하는 생활을 하게 하시고, 성경 말씀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합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기록한 저자인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니 말씀대로 살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 하기 제일 쉬운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성령이 충만하지 못하면 신앙생활이 힘듭니다. 예배도, 기도도, 모임도 힘들고, 다른 사람 말이 귀에 거슬리고 불만도 많아집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스스로 깜짝 놀라면서 내가 지금 신령한 일에서 분리되어 가고 있구나, 무섭게 세상에 빠져 들어가고 있구나라며 깨닫고 돌이켜야 합니다. 만약 자기는 잘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잘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불평불만 한다면 마귀역사에게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목적은 성령 충만하지 못하게 가로막아 육신의 생각으로 살게 해서 결국 우리를 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성령의 인격으로 살게 하신다

18절에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성령으로 함께하시겠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부활 승천하시고 나니 제자들을 인도하고 이끌어 갈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따라다니던 예수는 눈으로 보던 하나님이셨으나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 하나님으로 우리 안에 오신다는 말입니다.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는다고 하신 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책임지고 보호하신다는 말입니다. 이제 성령께서 하자는 대로 순종만 하면 됩니다. 성령이 내 안에 임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고아가 아닙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먹게 하고, 예수로 옷 입게 해서 책임지고 신앙생활 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시장에 가려면 갈대밭을 가로질러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어린 제게 시장은 으리으리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장에 가시는 날이면 뒤에서 살금살금 따라갑니다. 그러다가 엄마!”라고 부르면 어머니가 뒤돌아보면서 나무라십니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너 데리고 가면 너 지키느라 힘들어.” 그 말을 듣고도 계속 따라가다가 다시 엄마!” 하고 부릅니다. 그러면 또 집으로 돌아가라고 야단을 치십니다. 배 타는 곳에 거의 다다르니 동네 사람들이 배를 타려고 많이 모여 있습니다. 그때부터는 사람이 많아서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어머니께서는 하는 수 없이 저를 불러 손을 꽉 쥐십니다. 장날이 되면 시장이 얼마나 북적거리는지 모릅니다. 어깨가 서로 부딪힐 만큼 많은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어머니는 저를 안 잃어버리려고 잘 잡았니? 따라오니?” 하며 계속 저를 챙기셨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보호하시려고 그렇게밖에 할 수 없으셨지만, 성령님은 우리 속에서 인격과 생각을 장악하시고 망할 곳으로 가면 그리로 가면 안 돼하시면서 육신의 생각이 틈타지 못하도록 항상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내 안에 오셔서 내 생각을 지배하고 장악하셔서 성령의 인격으로 살게 하시니 겉으로는 내가 움직이는 것 같으나 실상은 성령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성령께 양육을 받았다면 성령을 잘 모시라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고 우리를 망하지 않는 길로 양육하시니 성령의 역사가 감사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성령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진리의 영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말씀도 은혜롭게 들립니다. 성령 충만하면 기도도 잘됩니다. 신앙생활에 활력이 넘칩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양육을 받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 됐다는 것은 고아 신분을 벗고 하나님 가정의 멤버가 됐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 영적으로 자기를 인도하고 성장하게 할 성령의 역사가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잘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고등학생들은 부모가 공부하라는 말을 잘 안 듣습니다. 공부하라고 할 때 부모 마음은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싫은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육신의 생각과 소욕으로 가득한 사람은 하나님 말씀 듣기를 싫어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이 싫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하는 권면이 싫은 것입니다. 아이들이 자기 장래를 몰라서 부모 말을 듣지 않듯이 육의 사람도 몰라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성령의 책망이 없이는 자신이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여, 나를 책망하셔서라도 나 홀로 고아처럼 다니지 않게 하시고 성령의 생각으로 천국까지 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함으로 말씀에 순종하라

계속해서 본문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성령께서 감동을 주셔서 하나님 말씀을 기록한 책입니다. 성경 속에 있는 모든 계명은 우리가 영적으로 잘되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계명에 순종하고 복종할 때 하늘나라까지 인도받게 됩니다. 절대 다른 생각 가지면 안 된다며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이 참으로 감사하지 않습니까?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가 먼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를 먹으면 죽으니 절대 먹지 말라고 애타게 일러 주셨듯이, 하나님 말씀을 지키라는 말씀은 계명을 어겨 아담처럼 죽지 말라는 하나님의 사랑의 목소리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알면 자식은 효도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그 말씀이 옳기 때문이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는 것이 당연합니다. 감히 우리가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을 관계가 되는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입니까? 아무것도 없는 세계 속에서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는 얼마나 초라하고 작은 존재입니까?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어 아들의 목숨을 주어 구원하셨고, 성령까지 보내셔서 어떻든 우리를 하늘나라로 인도하시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불순종하여 신앙생활을 망쳐 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신앙생활에 실패한 결과는 영원한 사망입니다.


디모데전서 118~19절에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警戒)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破船)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파선은 배가 침몰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를 믿음에서 좌절시키는 자가 누구입니까? 우리를 믿음에서 파선시키는 작자가 누구입니까? 내 육신의 생각을 이용한 마귀, 사단, 귀신 역사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마귀 역사에 당해 아담과 하와가 믿음에서 파선했듯이 우리 인간도 파선시켜 지옥에 보내겠다는 말입니다. 고아처럼 떨어져 주님과 분리되면 우리는 죽습니다. 끝까지 성령과 함께해야 합니다. 기도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항상 성령의 목소리를 놓치지 말고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따라다녀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으로 인한 사단적 행위 벗어나는 능력은 성령의 생각으로 사는 방법뿐

성령께 쓰임 받으려면, 내게서 예수가 나타나려면 마가 다락방 제자들처럼 기도해야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성령의 생각으로 살라

만약 어떤 일을 내 임의로 했다가 그 생각이 성령과 다르다면 거기서 나타나는 영적인 폐단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최후의 심판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고 했습니다(8:5~7).


육신의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말씀은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하나님의 원수라는 말은 사단적 존재라는 뜻입니다. 사단적 존재는 하나님께 도전하는 존재,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존재, 하나님께 인정하지 않는 존재, 하나님께 쿠데타를 일으켜서라도 자리를 뺏으려는 악한 존재를 말합니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으로 인한 사단적 행위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생각으로 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겉은 달라도 모두 같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전부 하나님 말씀의 뜻을 좇고, 말씀대로 살고, 성령의 감동대로 살고, 감화대로 살고, 그의 뜻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과 생각과 인격을 성령께 모조리 장악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육신의 생각으로 성령의 생각에 도전하는 사단적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육의 사람은 성령의 사람과 다릅니다. 육신의 생각은 육신을 위해서 살고 영의 생각은 자기 영혼을 위해서 삽니다. 육신이 힘들고 어렵고 또 많은 손해를 볼지라도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어렵게 느끼지 않습니다. 생각이 성령과 함께하면 육신도 즐겁게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육신이 죽으면 내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육신을 벗는 그때 성령의 인도 따라 천국에 간다는 소망을 갖고 선한 일을 위해 죽고 선한 일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희망적이겠습니까?

 

성령으로 예수를 나타내라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승천 직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명령이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입니다. 이 계명의 말씀은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초대교회 때 이 말씀대로 회개하라고 외치며 복음을 전하자 삼천 명씩, 오천 명씩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날 때부터 앉은뱅이인 자에게도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하니 벌떡 일어났습니다. 이런 역사는 바로 예수가 나타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 이름으로 기도하여 응답받으라는 말씀은 모두 예수를 나타내라는 말씀입니다. 나를 통해 예수가 무제한 나타나야 합니다. 아무에게나 예수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성령이 책임지도록 성령께 나를 의탁한 사람에게서만이 예수가 나타납니다. 항상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가 무제한으로 나타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예수를 나타내기 위해서 준비된 사람입니다. 예수를 사랑함으로써 예수를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나타내는 것, 예수의 생애를 재현하는 것이 곧 능력입니다. 능력은 나를 통해서 주님이 나타나시는 분량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가 있을 때 내 이름으로 병 고쳐라, 귀신 쫓아내라는 계명에 순종하면 그 능력이 나타납니다. 내게도 그런 능력이 있게 해 달라는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이 능력은 성령이 내 안에 계셔야 나타나고, 약속의 말씀이 있어야 나타나고, 예수의 피가 내 안에 있어야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죄 사함받고 성령으로 양육 받고 있다는 증거가 곧 능력입니다. 이제 육신으로 살 생각을 버리십시오. 신앙생활 하며 성령으로 예수를 드러내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성령의 인도 따라 어떠한 핍박이 온다 할지라도 순교를 각오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육신이 떠나는 그 날 천국에서 금의환향하기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은 기도로만 이루어집니다. 성령께 쓰임받으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내게서 예수가 나타나려면 마가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처럼 기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2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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