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9-06-17 13:35:38 ]
에베소서 5장 17~21절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이 세상에서의 삶보다 육신의 때가 끝난 후 영원히 사는 문제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세월을 아껴서 성령이 충만하여 모든 정욕을 이기고 성령으로 인도받는 신앙생활을 해
보이지는 않지만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은 영이시며, 하나님의 영은 거룩하십니다. 오직 그분 홀로 유일하시며, 영원히 존재하시고, 일하시는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성령이시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역사하시는 영이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으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3:5~8).
내가 낳은 자식이 하루 종일 밖에서 놀다가 저녁 때 내 집으로 들어오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성령이 그 사람 안에서 그의 생각을 주관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도무지 세상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지, 왜 그렇게 교회 일에 열심인지, 왜 그렇게 전도하고 기도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는 받은 자만 알 수 있습니다(고전2:11).
한 인간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땀 흘리고 열심히 수고하면 잘살 수 있는데 나태하고 게을러서 가난하게 산다면 참으로 미련한 사람입니다. 세월을 낭비하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없고, 미래에 행복할 거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70년, 80년 인생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자신과 후손에게 명예가 되기도 하고 불명예가 되기도 합니다. 세상 삶이 이러한데, 영원히 사는 영혼의 때를 위한 신앙생활은 얼마나 더 중요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살아온 삶보다 육신이 끝난 후에 영원히 사는 문제가 훨씬 소중하기 때문에 우리는 세월을 아껴서 신앙생활을 지혜 있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비결은 성령 충만하여 성령으로 인도받는 생활입니다.
이천 년 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행1:8). 그 후 제자들이 마가 다락방에서 오로지 기도에 힘쓸 때 비로소 성령 충만함을 받았고, 그 성령으로 증거 된 복음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르러 우리도 듣고 구원을 받게 됐습니다.
영원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함께 일하시되 성령 자신의 생각과 인격을 우리 안에서 나타내시어 우리를 영원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진리는 속이지 않으며,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약 속았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
우리는 장래에 어떤 일에 부딪힐지,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지만, 성령을 모신 자는 성령이 옳은 길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장래 일을 성령으로 알게 됩니다. 장래 일을 알기에 예수 잘 믿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려는 것입니다.
성령은 자신의 뜻대로 역사하시되 누구든지 성령을 거역하는 자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12:31~32).
요즘 시대에 부모가 자녀에게 잘되라고 아무리 이래라 저래라 해도 자녀들은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면 결국은 쓸모없는 사람, 세상에서 지극히 작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성령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데도 그 말씀을 거역하면 결국 영적으로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죄의 것이 되고 마귀의 것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죽으심의 증거인 피 값으로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영원히 지옥에 가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대신해서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고, 그 흘리신 피로 우리를 값 주고 사셨다는 것입니다(고전6:19~20). 그래서 우리는 그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잘못된 생각, 고집, 나쁜 습관, 못된 성질을 전부 고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하나님이 우리를 전 삼고 오셨는데 누가 그를 훼방하고 더럽힙니까? 훼방하고 더럽히는 자는 망하고 맙니다. 성령은 내 안에 오셔서 고집도 짜증도 불만도 불평도 시기도 질투도 못된 육신의 소욕과 생각도 전부 고치시고, 나를 거룩하게 만들어서 하늘나라까지 인도하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6~17).
오직 성령을 받은 자, 경험한 자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내 안에 오셔서 질병을 고치시고, 악한 영도 몰아내시고, 가난도 떠나게 하시고, 오직 행복만 넘쳐나게 하십니다. 능력과 권리가 충만한 분이기에 그분을 모신 자의 권리는 대단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노라 하면서도 성령을 그 심령에 모시지 않아 손해 보는 사람이 많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령받은 자가 가장 행복한 사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죄 속에서 방탕과 어리석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본인은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인간의 육체 소욕은 정욕이라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옳은 생각으로 살아간다고 자부할지라도 그 생각의 끝은 정욕입니다. 오직 성령의 생각만이 우리를 옳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해야 모든 정욕을 이기고 생명과 진리로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다는 말은 그분이 나를 100퍼센트 장악했다는 말입니다. 어린아이가 길을 가다가 차가 다니는 도로로 잘못 가면 엄마가 아이를 안전한 길로 인도하고, 뛰어가다가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듯이, 성령이 충만한 자는 비록 그가 잘못된 길을 갈지라도 성령의 생각이 그를 이끌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한 자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고 했으니, 그는 그 나라의 능력과 부요로 살고, 또한 그 나라에 가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성령받은 사람은 그 능력으로 질병을 고치고, 문제를 해결하고, 악한 영도 몰아냅니다. 자신을 행복하도록 만들 능력이 성령 안에 있으니, 성령받은 자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이끌어 갈 때만 방탕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방탕이 무엇입니까? 향방 없이 값진 것을 값없는 것과 같이 내던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바로 목숨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목숨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16:26). 그런데 천하보다 귀한 목숨을 죄짓는 일에 내던져 방탕한다면 이 사람은 무지한 자 중에 무지한 자요, 바보 중에 바보입니다. 그는 방탕한 죄 값으로 영원한 심판을 받고 말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육체를 망치고 영혼도 망치는 일을 자초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술 취함이란, 자신의 이성과 의지를 포기하고 제 3의 존재에게 자기 생각과 정신을 빼앗기는 것을 말합니다. 술에 취한 사람이 평소에 하지 않던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정신과 생각이 마비되어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술의 힘에 결박당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세속에 결박당하고 죄에 결박당하면 육체는 온전한 것 같지만, 행동은 술에 취한 사람처럼 향방 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술에 취한 자가 아니라 성령이 충만한 자가 되어서 성령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인간의 육체 소욕은 어리석고 지혜가 없으며, 술 취함과 방탕뿐입니다. 이렇게 육체의 소욕인 정욕으로 사는 것은, 나의 장래를 망치고 영육 간에 자기를 파괴하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지혜 없는 어리석은 자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타락한 인격을 회복시켜서 바르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사람의 잘못된 지식과 감정을 바꾸고 하나님의 원수라도 의로운 사람으로 만드시는 분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방탕한 자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돌아오기만 하면 성령은 즉시 그를 새롭게 고치실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육신의 소욕 붙잡아 줄 분은 오직 성령
모든 육체는 불의한 죄의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못된 짓을 해서라도 자기의 욕구를 채우려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 의로운 생활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하셨으므로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겼던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창4:7).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5:19~21).
우리 속에는 죄를 짓고자 하는 소원을 다스릴 만한 능력이 없고, 육체가 하는 일은 이런 더러운 것들뿐이라는 것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5~8).
또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짓고 타락하며 불의하게 살아서 나를 지옥으로 이끌고 가는 육신의 소욕을 붙잡아 주실 이는 오직 성령밖에는 없습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4~15).
노아의 홍수 사건이 바로 육신의 욕심, 곧 정욕 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러므로 죄의 생각을 유산하고, 죄로 이끌어 가는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오직 성령의 생각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없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피 쏟아 구원하신 영혼들이 하늘나라까지 인도받을 수 없음을 아시고, 성령을 보내어 인간의 멸망할 생각을 영원히 살아야 할 생각으로 완전히 바꾸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내 안에 모시고 성령이 나를 관리하시도록, 성령이 나를 하늘나라까지 인도하시도록 항상 성령이 충만해야만 합니다.
성령을 모시는 순간 저주와 질병과 악한 영이 떠나가고, 그분이 나를 가장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드시며, 가장 바른 길로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바로 그 성령으로 치료와 은총과 축복을 받고, 영원한 행복의 길로 인도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2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