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9-07-30 11:41:01 ]
마태복음 26장 57~68절
“예수를 잡은 자들이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국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속들과 함께 앉았더라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증거를 찾으매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가로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의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뇨 하되 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 생각이 어떠하뇨 대답하여 가로되 저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가로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예수의 고난과 죽으심이 영원한 축복 되었으니
우리는 날마다 예배를 통해 축복을 소유해야
그동안 우리가 한 감사와 충성은 하나님께
사랑받은 은혜에 대한 증거이며 고백일 뿐
주를 위해 수많은 충성했어도 교만은 안 돼
모든 고통의 원인은 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사랑을 제한 없이 인간에게 표현하고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은 인간을 향한 최고의 사랑 표현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보고 알고 체험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죄로 말미암아 고통과 저주 속에 살다가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멸망을 도무지 피할 수 없고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지옥이라는 처참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인류 구원의 뜻을 만세 전부터 정하시고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지옥 형벌의 멸망에서 건져 내기로 결심하셨으니,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보내신 이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체로 오신 것은 인간의 영육 간 불행을 남김없이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은 죄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해결되면 고통도 자연히 해결됩니다. 나무가 무성하게 자랄 수 있는 근본은 뿌리에 있습니다. 뿌리가 뽑히면 나무는 죽은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서 죄가 사라지면 모든 고통도 순간에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인류를 향한 구원의 비밀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류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서는 죄가 없는 의로운 분이 오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만이 죄가 없고 의롭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짊어질 자격이 있으십니다. 또 영원히 멸망해야 할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영원히 의로우신 분이 와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만이 우리의 죄를 능히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왔다고 했는데(마3:16), 이는 비둘기를 잡아 제사를 지냄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매일 범하는 죄를 용서받은 것처럼, 우리도 날마다 범하는 죄를 예수 이름으로 용서받고 예수의 피 공로로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마3:1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에 이끌리시어 죽은 자를 살리고, 문둥병자를 고치며, 소경을 보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며,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는 수많은 이적을 나타내며 불가능이 없음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예수께 나아오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다 구원을 얻게 하고 문제와 고통을 해결해 주셨으니,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때와 동일한 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인간의 고통을 무제한 해결하시는 능력을 가지고 공생애를 사셨습니다. 그러나 이천 년 전 예수가 사신 역사의 현장에서 예수의 능력과 이적을 눈으로 본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믿음 없이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으며, 그저 선지자 중에 한 사람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애를 시작할 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습니다. 그 시대에 성경을 제일 잘 안다는 율법사도 서기관도 제사장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향한 구원의 비밀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누가 감히 그를 때리고 저주하며, 누가 감히 그를 핍박하고 죽일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는 우리의 죄와 저주를 대신 담당하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완벽하게 감추시고 나사렛 목수의 아들이라는 천한 신분으로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사망권세를 이긴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고의적으로 당하신 고통
예수께서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제일 계명을 어긴 신성모독죄라는 이유로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했던 자들이 결국은 하나님의 아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예수는 죄가 전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인데,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죄목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죄 없음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사정없이 때리고 밟고 찢으며,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잔인한 대우를 했습니다. 인간의 육체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대우를 받으면서도 예수께서는 그 모진 고난과 고통을 넉넉히 견디시면서 자기가 당한 고난만큼 인간이 받을 축복을 바라보며 기뻐하셨으니, 어찌하여 그토록 우리 인간을 향해 관대하셨을까요? 우리가 주님 앞에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이기에, 우리가 주님 앞에 어떤 유익이 있는 자이기에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일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사랑의 가치를 바로 알고 받을 수 있는 사람, 사랑의 가치를 알고 배우며 그 사랑에 감사하여 충성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우리가 해야 할 당연한 도리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예수께서 찔리셔야만 우리의 허물을 해결할 수 있으며, 그가 상해야만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실 수 있으며, 그가 징계를 받으셔야만 우리가 평화를 누릴 수 있고, 그가 채찍에 맞으셔야만 질병에서 놓임받을 수 있기에 주님은 그 말씀을 육체에 그대로 이루셨던 것입니다. 채찍에 맞는다는 것은, 입을 열지 않고 고의적으로 맞는 것입니다. 자기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고의적으로 맞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질병에서 해방시키고 치료해 주시려고 고의적으로 채찍에 맞으셨던 것입니다. 죄는 우리가 짓고 죄에 대한 책임은 왜 주님이 담당해야 했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 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감추시고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신성모독죄로 고통당하면서까지 우리의 영육 간 문제를 해결해 주셨을까요?
은혜받은 자의 감사와 충성
우리는 죗값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는 죄인인데 주님은 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그토록 잔인하게 죽어야만 했을까요? 주님의 은혜 앞에는 입이 만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당하신 고난과 죽으심이 우리에게는 영원한 축복이 되었으니, 우리는 날마다 예배를 드려 그 축복을 소유해야만 합니다. 믿음으로 소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어떤 고난을 당할지라도, 최후에 순교할지라도 절대로 후회나 원망이 없습니다. 오히려 나를 구원하신 예수로 인해 그렇게 죽을 수 있어서 감사할 뿐입니다.
주를 위해 수많은 충성을 한 사람이 있다면 혹시라도 교만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아무리 많은 충성을 한들, 우리를 영원한 멸망과 지옥에서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할 뿐입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 아무리 많은 수고를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사랑하신 분량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동안 우리가 한 감사와 충성은 하나님께 사랑받은 은혜에 대한 증거이며, 고백일 뿐입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며,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모진 매를 맞으시고 온갖 질병에서 자유하게 하신 이 축복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떤 육체의 질병이 있을지라도 이 시간 주님의 은혜 안에서 자유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주님이 매를 맞고 저주를 받으며 죽기까지 바라셨던 소원입니다. 이 소원이 여러분에게 체험으로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3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