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우리를 온전케 하신 주 예수를 바라보라

등록날짜 [ 2019-11-18 13:18:20 ]

히브리서 12 1~5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우리는 어떤 세상 것이

유혹하고 미혹할지라도,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죄는 짓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 피 공로로 죄 사함받고 구원받았다면다시는 나를 죄에 내어주지 않겠다. 목숨은 피 흘려 죽어도 내 영혼은 못 내놓는다라고 확실하고 분명하게 생각을 정립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내 마음, 곧 심비(心碑)에 기록했기에(고후3:3) 필요할 때면 내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운동력 있는 말씀으로 들려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지을 때면그러면 안 돼. 그건 죄야. 네가 지은 죄를 사해 주려고 내 아들이 너 위해서 피 흘려 죽었어. 네가 또다시 죄지으면 내가 너를 위해서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피 흘려 죽게 한 것이 무슨 소용 있니?’ 하시는 하나님 말씀이 들려야 합니다. 피 쏟아 죽어 나를 구원하신 주의 거룩한 의로움과 선함과 신령함을 지켜 내는 것이 우리가 평생 해야 할 가장 소중한 일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구원받은 내가 예수의 증인

히브리서 12 1절에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라고 했는데, 어떤 증인을 말하는 걸까요? 예수께서 사도행전 1 8절에성령이 임하시면 내 증인이 되리라하셨듯이, 성령이 임하여 예수를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증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사건을 바라본 증인이 얼마나 많고, 예수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신 사건을 보고 듣고 경험한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예수의 십자가 피 공로로 내 영혼이 구원받았으면, 나도 반드시 예수 증인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를 얼마나 쉽게 짓습니까? 예수께서 나를 위해서 피 흘린 것과 죽은 것과 부활하신 것을 본 허다한 증인이 있는데 어떻게 그 증인에서 빠져나와 다시 죄를 지어서 십자가 피의 공로를 무시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희미한 사람은 죄를 쉽게 짓습니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이 확실한 사람은 죄를 지으려야 지을 수 없는데, 지옥 가서 어떤 고통을 당하는 줄 뻔히 알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죄 짐은 얼마나 무거울까요? 주님이 찔리고 상하고 징계받고 저주받고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만큼이나 무거운 것이 죄의 짐입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타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고통, 고통, 고통을 견디면서 살아낼 수 없는 곳에서 살아야 하는 절망적인 사건, 죄의 무거움이 그 정도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우리가 무거운 죄 짐을 또다시 짊어져서야 되겠습니까?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정말로 담대한 사람들은 교회에서 남의 말 하고, 남 시험 들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 놓고 자기는사실이 그렇다는 것이지 언제 내가 남 말 했어?” 하며 죄를 죄로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주님은 분명히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아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18:6)”고 하셨습니다. 실상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영적으로 실족하게 하는 것이 더 심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그토록 피 흘려 죽어 내 죄를 대신 짊어져서 해결했기에 우리는 두 번 다시 죄지으면 안 됩니다. 구원받은 자의 죄는 예수 십자가 피의 공로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맡은 죄 짐보다 무거운 짐은 없어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했습니다. 죄는얽매인다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에, 돈에, 정욕에, 성욕에, 명예에, 게임에, 스마트폰에 얽매인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정작 본인은 얽매인 줄을 모릅니다. 이 결박당한 영혼이 짊어진 것이 죄 짐이라면, 참혹한 날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세상 것이 유혹하고 미혹할지라도,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죄는 짓지 말아야 합니다.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競走)를 경주하며라고 했습니다. 허다한 증인이 보는 앞에서 예수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나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했거든, 구원받은 자답게 천국을 향해서 계속 경주해 가라는 말입니다. 충성, 전도, 기도라는 경주를 계속해서 내 영혼의 때 영광을 계속 만들어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거운 죄 짐을 짊어진 자가 하늘의 상을 향해 경주할 자격이나 있겠습니까.


우리가 볼 때 죄 짐은 그저, 죄인가 보다싶겠지만 죄 짐보다 무거운 짐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죄인 줄 뻔히 알면서도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죄 짐은 마귀가 짊어지게 한 것이기에, 무거워서 얽매이고 억눌리면서도 못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죄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죄보다 큰 예수의 피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내 죄를 대신 짊어지시려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쓴잔이 나에게서 비켜 지나갈 수만 있으면 지나가게 하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되기까지 그렇게 애절하게 세 번씩 기도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자기가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신을 당해 넘겨져서 죽으러 가셨습니다. 내가 견딜 수 없는 죄 짐을 주님이 대신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죄는 육신도 영혼도 해치는 무거운 짐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지붕을 뜯고 중풍 병자를 예수 앞에 달아 내립니다(5:17~26). 예수께서 중풍병자를 바라보면서 하시는 첫 말씀이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풍이라는 무거운 짐을 누가 그렇게 결박해 놓았습니까? 바로 죄가 결박했다는 것입니다. 죄가 육신도 결박하고, 영혼도 지옥에 결박하니, 죄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매일 기도해서 그날의 죄는 그날 회개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죄가 내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병이 되고, 저주가 돼서 내 영혼을 죽여 지옥에 보내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이 베데스다 연못가에 가셨을 때, 38년 된 병자가 꼼짝달싹 못 하고 누워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불쌍히 보시고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시고는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갑니다(5:1~9). 그런데 얼마 후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때 하시는 말씀이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5:14)입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던 오래된 병자가 죄 때문에 병들었다니, 죄 짐이 얼마나 무거운 것입니까. 그보다 더 무거운 짐은 죽어서 지옥 가는 영혼의 짐입니다. 죄는 육신도 영혼도 해치는 무거운 짐이라는 말입니다. 중풍병자도 중풍병에 얽매여 고통받고,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던 병자도 질병에 얽매여 꼼짝달싹 못 했는데, 만약 죽어 그 영혼이 지옥에 얽매일 때 누가 지옥의 사슬에서 풀어 줄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정말로 우리는 주님이 그 피로 내 죄의 얽매임을 회개를 통해서 해방해 주신 것에 감사하며 살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죄를 좀 지었다고 거듭난 자기 자녀를 지옥에 보내겠느냐?” 요한일서 38절에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죄지으면 소속이 마귀에게로 이관(移管)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됐는데 어떻게 그 자녀가 죄를 지었다고 버리겠느냐. 한번 구원받았으면 천국 간다.” 이런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영혼의 때 영원한 지옥의 짐

본문은 허다한 증인이 보는 앞에서 네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살다가, 어떻게 무거운 죄를 범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다시는 죄에 얽매이지 말아야 하고 신령한 경주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정신적, 육신적 고통이 심해도 지옥에 비교하면 짐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질병 때문에 당하는 육신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법적으로 안락사가 허용되는 먼 나라에까지 가서 죽음을 택하기도 합니다. 죄로 오는 육체의 고통도 이렇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라면, 지옥에서 영혼이 당하는 죄 짐은 얼마나 참혹하겠습니까. 우리는 절대로 죄 짐을 지지 않으리라 결단해야 합니다.


저도 올 초부터 육신의 고통을 계속 받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심한 고통을 견디다 못해 주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왜 이런 고통이 제게 역사하는지 저는 눈이 어두워 볼 줄 모르고 깨닫지 못하니, 주님이 깨닫게 해 주세요.” 답이 없으시니 또 기도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하고 있으니, 성도들을 봐서라도 이 종이 깨닫게 해 주세요.” 또 어떤 때는 이렇게 기도해 봅니다. “주님, 지금 나이지리아, 브라질, 토고, 앙골라에 복음 전하러 가야 합니다. 아프리카 전역에서 성회를 초청하는 나라마다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 그들이 천국 가겠사오니 저에게 기회를 주셔서 그들에게 복음 전할 기회를 주세요.”


주님이 대답을 안 하신 것도 대답입니다. 저는 실망이나 좌절하지 않고그저 죽으면 주님 앞에 가고, 살면 주의 일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기도하며 계속 찾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 앞에서 교만했습니까. 주님, 제가 우리 성도들을 사랑하지 않았습니까. 주님, 주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주님을 섭섭하게 했습니까.” 또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사단의 참소로 인한 고통이라면, 반드시 이기게 하소서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무거운 죄 짐은 이 세상에 있을 때 당하는 것이지, 이 세상을 떠나면 육신에 더는 고통의 짐은 없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지옥 가면, 그때부터 고통의 짐이 영원하니 절대로 지옥만은 가지 말아야 합니다.

 

죄는 예수 십자가 피 공로를 무시하는 것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12:2).


허다한 증인이 보는 예수, 그 예수가 당신을 온전하게 했습니다. 죄에서 완전히 의롭게, 선하게, 거룩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피 흘려 죽게 함으로 당신을 죄에서 저주에서 지옥에서 구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을 이루신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의 증표,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온전케 하신 주 예수를 바라보고 너도 온전한 데서 절대로 이탈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이루신 구원이 온전하지 않을 리 있겠습니까. 그 온전한 구원을 내가 다시 죄를 지어서 온전치 못하게 한다면 주님이 구원을 이루신 십자가의 피 공로를 얼마나 무시하는 것입니까.


구원받은 자가 다시 죄를 짓는 행위는 예수의 십자가 피 공로를 조롱하고,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머니 안에 있는 손수건 꺼내 쓰듯, 죄지을 때마다 예수의 피를 그렇게 마구 사용해도 되는 것입니까, ‘또 회개하면 되지 뭐!’ 하는 이런 정도로 예수의 피가 싸구려입니까. 그 피는 값으로 치를 수 없기에,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선물이라고 했습니다(2:8).


우리를온전케 하신 주 예수를 바라보면그가 흘린 십자가 피의 공로 앞에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내 죄를 짊어지고 나를 온전케 구원하셨으니 그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를 바라보는 순간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제자들은 마가다락방에서 성령을 충만히 받고 한 사람도 다시 죄로 돌아설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 로마 사람들 가장 참혹한 처형 방법으로 십자가형을 사용했습니다. “주를 위해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장담한 제자들도 주님이 십자가형을 받을 때는 요한 외에는 이미 모조리 도망칠 정도로 십자가 처형은 끔찍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얼마나 고통스럽고 저주스럽고 비참하고 참혹한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누구를 온전케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나요? 모든 인류입니다. 그때부터 지금 세대와 다음 세대 우리 모두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하는 데 온전하여 모자람이 없으시다는 말입니다. 그 예수를 바라보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은 자가 다시 무거운 죄 짐을 짊어지겠느냐는 것입니다. 게다가 죄의 뒤에는 육신이 끝나면 지옥의 짐이 있습니다. 여기에 얽매일 수 없으니 우리는 결단코 죄를 이겨야 합니다.

 

예수 피 앞에 회개만이 죄를 소멸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12:2). 주님 앞에 즐거움이 무엇입니까. 자기 한 몸 죽어 인류가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받게 하려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기에, 이 땅에 오신 뜻을 완성하실 때 즐거웠다는 것입니다. 또 잠깐 동안 우리의 부끄러움을 짊어지고 우리가 죽을 죄의 짐을 지고 그가 잔인하게 피 흘려 죽으시며 발가벗겨 만장 앞에서 손가락질당하고 조롱당하십니다. 예수님이 죽으실 때, 십자가에유대인의 왕이라고 써 붙였습니다. ‘너희 왕은 이제 십자가에서 이렇게 죽었어. 너희는 그런 놈의 백성일 뿐이라며 빌라도가 유대인을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을 넘어서 인류의 죄를 파괴하시고 이기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왕 중의 왕이라는 말입니다. 그가 당하신 부끄러움이 나의 부끄러움입니다. 죄를 지으면 누가 알까 봐 창피스럽고 부끄럽지 않습니까. 교회에서도 자기가 지은 죄를 다른 사람이 알면아이고, 저 사람이 알았나 봐. 이 교회 창피해서 못 다니겠네합니다. 빨리 회개하여 죄 사함받고 천국 가야지, 얼굴 못 들고 다닐 만큼 창피하다고 교회를 나간다고 죄가 없어집니까. 죄를 지적받거든 부끄러워하지 말고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주님이 너의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부끄러움을 대신 담당했다는 말입니다. 죄는 알고 짓든 모르고 짓든, 과거에 짓든 현재에 짓든 자연적으로 소멸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피 공로 앞에 회개해야만 죄가 없어집니다.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 이기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12:3). 정말로 신앙생활이 피곤하고 핍박이 피곤하고 예수 믿기가 피곤하고 힘이 듭니까. 때로는 낙심되고 좌절합니까. 멸시당하고 무시당합니까. 예수가 너희를 위해서 너희가 거역하고 범죄한 죄, 아담부터 거역하고 범죄한 죄를 다 참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구원한 것을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12:4)란 말은, 피는 흘려도 죄는 용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피 흘리는 짐은 잠깐의 고통이지만, 죄 짐은 영원한 지옥의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피곤하다는 말은 몸이 피곤한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낙심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어렵고 핍박받고 힘드니까정말로 주님이 살아 계시면 이럴 수가 있을까? 우리를 이렇게 내버려 두고 힘들게 할 수 있을까?” 하며 낙심치 말라는 것입니다.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그런 핍박과 고통을 당하면 하늘에 상이 있다는 말입니다.


제 생각에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참수(斬首)당할 때 내심 기뻤을 것 같습니다. 바울이 로마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 옥살이를 하고 마침내 죽음을 맞이할 때 얼마나 기뻤을까요? ‘이제 순교하면 나는 주님 곁으로 간다하며 그 순교에 희열을 느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관제(灌祭)와 같이 벌써 부음이 되고”(딤후4:6)라고 고백한 것처럼 저도 그렇게 고백하고 죽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지만 나이 어린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세상, 죄와 싸워 가며 세상 다 살고 오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세상에서 오래 사는 그 시간이 다 죄와 싸우는, 마귀역사와 싸우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피 흘리기까지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패배자는 그 죄를 짊어진 죄 짐이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제발 신앙생활에 힘들어하지 맙시다. 낙심하면 진다는 것입니다. 힘들게 하는 마귀 사단 귀신 역사를 이기라는 말입니다.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워서 이기라는 말입니다.


만약 순교당했다고 합시다.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 마귀가 다시 나에게 핍박할 일도 없고, 죄짓게 할 일도 없고, 대항할 일도 없습니다. 내가 영적인 존재가 되는 순간 누가 우리를 핍박하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영혼의 때가 도래할 때 죄의 짐을 벗어 버린 자의 행복은 영원합니다. 그래서 낙심치 말고 피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피곤하면 그때부터 좌절이 온다는 것입니다.


주님 재림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내하며 경주하여 천국까지 가는 일에 어떤 죄도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룩하게 영광의 날 천국에서 뵙는 성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5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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