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말씀이 육신이 되사 피로 생명 주신 예수

등록날짜 [ 2019-12-19 11:58:52 ]

요한복음 6 53~5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예수의 살은 영원한 양식이고,

예수의 피는 영원히 사는 생명입니다

예수의 살과 피가, 그 찢어진 살과 피가

여러분 안에 있어 성탄이 여러분에게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

하나님은 손에 잡히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우리 인간의 감각으로 전혀 느낄 수 없을 때 말씀을 통해서 자기를 나타내셨습니다.


모세가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누구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요?”라고 물으니 하나님은스스로 있는 자라 말해라. 너를 통해서 애굽에서 해방시킬 자라 말해라라고 말씀하십니다(3:13~18). 이처럼 하나님은 누군가를 통해서 자기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우리 인간에게 자기가 어떤 일을 하겠다는 뜻을 나타내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 인간에게 공개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뜻이 공개되었기에 나와 여러분이 그 뜻을 알고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절망스러울까생각할 때, 하나님의 뜻이 세상에 나타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요한복음 5 39절 이하에 예수는성경이 누구를 말하는 줄 아느냐? 나를 말한다. 아버지가 누구를 말하는 줄 아느냐? 나를 말한다. 나도 나를 증거한다. 성령도 나를 증거한다. 너희도 나를 증거하는 증인이 되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예수를 말하고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분은 예수십니다.

 

예수로 이루신 우리 영육 간 고통의 종말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6:38~40).


왜 살리는 것이라고 거듭 말씀하셨을까요? 이미 우리는 영적으로는 죽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영생(永生)’이라는 말과영원성(永遠性)’이라는 말은 육체에 관한 말이 아닙니다. 육체는 영원히 살 수 없기에 영원히 사는 내 영혼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생하시니 그의 생기(生氣)로 생령이 된 내 영혼도 영원히 살아야 하는데 죄를 지어죗값은 사망’(6:23)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죽어 지옥에 가서 활활 타는 불 못에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며 영원히 살아야 한다면 이보다 불행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너희는 지옥에서 영생해서는 안 돼! 하나님 나라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야 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예수로 알린 것이 바로 이사야서 53 5절 말씀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라는 말씀대로 2000년 전에 예수가 찔렸으니 여러분의 허물은 오늘로 도말(塗抹)되기 바랍니다. 내 허물로 인해 죽으셨으니 오늘로 내 허물은 사라지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5~6).


내 죄악도 예수가 짊어지고 갔습니다. 내가 받을 징계도 예수가 짊어지고 갔습니다. 내가 병들어 고통당할 질병도 예수가 채찍에 맞아서 짊어지고 갔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으나 우리 죄악의 짐을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죗값인 사망을 갚기 위해서다 이루었다하시고 피 쏟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 영육 간의 모든 고통이 끝났습니다. 저주의 종말, 지옥의 종말, 모든 고통의 종말을 예수께서 이루셨습니다.

 

지옥 갈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를 지러 오신 예수

인간은 어떻게 하다가 첫 사람 아담부터 하나님 은혜와 사랑의 배신자가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하나님 형상의 모양으로 만든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과 같이 영생하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행복하게 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불행하게 만드는 실과는 먹지 마. 먹으면 정녕 죽어”(2:17)라고 말씀하신 것에는, 먹지 말라고 할 때 이미 그 말 뒤에먹게 하는 존재가 반드시 있다. 너는 그의 궤계를 이겨 내야 한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결국 마귀는 뱀을 이용해서 아담이 실과를 먹게 만들고정녕 죽으리라는 절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아담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영적인 존재라는 뜻인데, 영적인 존재인 아담이 죽었을 때는 바로 그 영혼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육체처럼 죽어 한 줌 흙으로 돌아가 버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신죽음이라는 말은 지옥 형벌 속에서 영원히 고통당한다는 뜻입니다.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성경에거기는 불도 꺼지지 않고 불로서 소금 치듯 하는 곳이야. 타는 유황 불 못 같은 곳이야”(9:48~49, 19:20) 말했으니 절대로 지옥은 가지 말라고 예수가 우리 죄를 짊어지고 피 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죄 사함받고 지옥 신세를 면한 자여, 다시는 지옥 가려고 말씀에 불순종하지 말고, 절대 말씀에 순종해서 성령으로 하나님의 의에 거하기 바랍니다.


사람 육신의 눈으로 보면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는실패자입니다. 거지인 데다 병들어 노동할 기력이 없어 부자(富者)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개와 함께 나눠 먹었으니 누가 봐도 불행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5:7)라고 했으니, 우리는 자기가 얼마나 긍휼함을 입어야 할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아무리 긍휼히 여겨 봤자 스스로 긍휼함을 입을 수 없고 이를 해결할 분은 예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그분이 나를 긍휼히 여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긍휼히 여기셨기에너는 지옥에 가는 불행한 인간이 되면 안 돼하시며 내가 죽어서 지옥 갈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주님이 오셨으니 이를 성탄(聖誕)이라고 합니다.

 

예수 피의 공로를 만나야 천국 갈 수 있고

성탄에기쁘다 구주 오셨네하며 찬양하지만, 주님은 나를 살리려고 죽으러 오셨는데 어떻게 내 기쁨만 드러내겠습니까. 그저 미안하고 죄송하니 온유하고 겸손하게 성탄절을 맞이해야 합니다. 이처럼 나는, 예수님이 오셔서 내 죄 짊어지고 죽어 나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돈이 있고, 잘살고, 대단해도 그 속에 하나님의 긍휼함을 그 아들의 목숨으로, 그 피로 얻지 못했다면, 그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습니다. 70~80년 살다 없어질 육체가 대단한들 초 토막 같은 인생, 다 타면 끝나는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육신은 영원히 살 희망이 전혀 없고, 아담인 내 영에게만 희망이 있습니다. 육신으로는 불행했던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는 하나님의 나라 낙원에서, 조상 아브라함 품에서 영원히 행복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최고의 지식이 바로 내 영혼이 사는 지식, 예수를 알고 만나고 그로 살아가는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는 이 땅에서 호의호식하며나는 선민, 아브라함의 후손이야. 이래 봬도 나는 율법을 아는 사람이야. 나야 죽으면 우리 아버지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겠지라고 했으나 죽어서 그가 간 곳이 지옥이었습니다(16:22~23). 세월은 무서운 작두날처럼 목을 쳐 육체는 한 줌 흙으로 내던지고 그 영혼이 예수를 만나지 못했으면 지옥에 내팽개치는 잔인한 것입니다. 우리는 잔인한 세월을 만날 것이냐, 행복한 세월을 만날 것이냐를 이 땅에 육신이 있을 때 결정해야 합니다. 모태신앙이라 천국 가는 것이 아니고, 몇 년 믿어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니고, 영원히 살려 주려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만나야 천국 갑니다. 피의 공로는 누가 만납니까. 주님의 피의 공로를 만날 사람은 내 속의 죄를 들고 와서 예수님의 피와 바꿔야 됩니다. 내가 죽어서 지옥 갈 죄와 자기가 죽어 흘린 피와 바꿔 주려고 예수가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이런 사실이 내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쉼 없는 지옥의 고통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끌어안고 이 땅에 살다가 죽는 순간부터 영원히 숙명대로 지옥의 고통 속에 살아야 합니다. 이것만은 안 되니까예수 믿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냥 종교를 선택하자는 것이 아니라, 피 흘리신 예수 앞에 내 죄를 내놓으면 흘리신 그의 피로 내 죄는 도말(塗抹)되고 피의 생명으로 영원히 산다는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부르지 아니하면 내게 올 자가 없다”(6:44)고 하셨는데 아버지의 부름을 입어 주 앞에 왔으니 최소한 여러분은 아들을 보낸 아버지의 부르심을 입은 엄청난 복을 받은 자입니다. 정말로 위대한 축복입니다. 아버지의 부르심을 입은 것은 피 흘린 아들을 만나라는 말입니다.

 

예수라는 이름 속에 피의 공로와 생명 있어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창조자요,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살도록 영적인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내 육신이 살라고 천지만물을 주셨고, 내 영혼이 살라고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 육신은 한시적 존재라 끝나는 날이 오지만, 내 영혼은 지옥에 가든 천국에 가든 종말 없이 영원합니다. 이렇게 영원성(永遠性)을 지닌 인간으로 만들어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행복하게 살라 하셨는데, 어쩌다가 하나님이 되겠다고 도전했던, 하나님의 원수 마귀·사단·귀신의 말을 듣고 먹지 말라는 실과를 먹었느냐는 말입니다.


성경에 모든 말씀은하라하지 말라는 두 가지 명령으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은 대부분하지 말라하시는 소극적 명령이요, 신약은 대부분하라하시는 적극적 명령입니다. 그 피로 구원받은 사람은 그 피를 더럽게 하지 않으려고 죽을지라도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육체는 어차피 죽음으로 끝나니 기왕에 순종하다 죽자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지지하고 경외하여내게 죽음이 올지라도 절대로 하나님 말씀에 상처 내지 아니하리라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기도하라는데 안 합니까. 성경에도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1:5),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14:14)고 하셨습니다. 저도 명예가 있어서윤석전이라는 제 이름을 걸고 무엇을 할 때 부정하거나 명예를 실추하는 일이나 욕먹는 일에는 제 이름을 절대 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기도하는 일에내 이름을 줄 테니 내 명예를 걸고 기도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명예보다 큰 것은 없으니 그 명예를 걸면 다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피 흘려 죽어 나를 살리신 이가 자기 명예를 주면서앞으로 또다시 죽을 죄를 범하거든 이 명예를 가지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 속에 그의 피가 있고, 예수라는 이름 속에 그의 살이 있고, 예수라는 이름 속에 그의 생명이 있고, 예수라는 이름 속에 그의 피 공로가 있기에 천하 모든 것을 다 보태도 해결할 수 없는, 지옥 갈 죄의 문제를 그 이름 앞에 내놓는 순간 아주 도말되고 무효가 되니 얼마나 대단한 이름입니까. 대단한 예수 이름 안에 얼마나 피의 생명이 넘치며, 권세가 넘칩니까. “내 이름으로 귀신 쫓아. 병 고쳐!”(16:17~18), “무엇이든지 구해, 내가 시행할게!”(14:14)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도 기도하지 않는 것은 예수 이름으로 다 이루어진다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을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3 18절에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이미 심판받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이름을 믿을 때 그 이름으로 충성하고, 그 이름으로 감사하고, 그 이름으로 예배하고, 그 이름으로 전도합니다. 내 생애 전부를 그 이름을 위해 산다는 말입니다. 예수 이름의 명예를 내가 정말로 사용할 믿음이 있다면, 그 이름 앞에 귀신은 떠나가야 하고, 질병은 치료받아야 하고, 죄는 파괴되어야 하고, 고통은 떠나야 합니다. 예수라는 생애가 그 이름 안에 다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이 반드시이기는 생활

인간이 하나님께 대적하다가 하나님 되어 보겠다고 감히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어떻게 피조물이 하나님이 되겠다고 감히 불순종하고 도전할 수 있습니까. 이처럼 우리 인간은 무지해서 마귀의 지능과 기능을 이겨 낼 수 없습니다. 마귀를 멸하시고 마귀의 지능과 기능을 알고 보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하라하시면, 마귀는하지 말라로 유혹하니하지 말라는 마귀 궤계를 이겨야 합니다. 언제든지 성경에하라하거든하지 말라하는 마귀 역사가 있고, 성경에하지 말라하거든하라하는 마귀 역사가 있으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이 반드시이기는 생활입니다. 마귀를 이기는 생활, 죄를 이기는 생활, 악을 이기는 생활, 지옥을 이기는 생활, 육신의 소욕과 정욕과 요구를 이기는 생활, 이 생활이 여러분 것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왜 못 이깁니까. 육신은 연약해서 할 수 없다(8:3)고 했으나 하나님의 아들로 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원래 찬양하는 천사로 지어졌으나 하나님께 대적하는 순간에 흑암의 영원한 결박에 갇혀서 영원히 지옥 가기로 작정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마귀를 구원할 계획은 전혀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똑같이 불순종한 죄를 지은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품속에 있는 아들을 죽이려고 이 땅에 보내셨으니, 참으로 감사하지 않습니까.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자 하나님께 도전하니 그냥 쓰레기처럼 빗자루로 쓸어 지옥에 처넣어도 시원찮고, 이 지구에 인간이 한 명도 없도록 모조리 없애도 아무런 아쉬움이 없으신 분이, 왜 자기 아들을 이 땅에 보내기로 뜻을 정하시고 그 뜻대로 아들을 죽여 우리를 살리시는지 감당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육체로 오신 예수라는 성탄의 과녁 분명해야

왜 성탄절마다 산타 복장을 하고 마치 박애주의 사상가가 이 땅에 태어난 것처럼 호들갑을 떱니까. 부모는 아이들이 양말 벗어 놓으면 선물을 사다 살짝 넣어 놓고 산타가 왔다 갔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성탄절을 그런 세속주의에 뺏기지 말고, 그럴듯한 포장에 속지 말고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성탄의 과녁이 분명해야 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1:21). 예수는예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내 백성을 구원하러 왔으니, 다른 것이 어찌 대행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 박애주의가 대행할 수 없습니다. 이 지구가 온통 박애주의로 물들어도 내 손톱만 한 죄 하나 해결할 수 없으니, 오직 하나님 아들이 피 흘려야 합니다. 성탄은 육체로 오신 예수만, 내게 피 흘리신 예수만 겨냥해야 합니다.


예수가 가야바의 집 뜰에서 시작해 갈보리 언덕을 오를 때까지 찔리고 상하고 징계받고 채찍에 맞고 최후에 십자가에 못 박혀 그 고통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듣고, 알고, 믿어 천국 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아버지, 이 쓴잔이 나에게서 비켜 갈 수만 있거든 지나가게 하소서”(26:39). 주님이 눈물 흘리고 땀방울을 핏방울같이 쏟으시며 하신 겟세마네의 절규! 십자가라는 중대사를 앞두고 애절하게 절규하시고 결국은아버지의 뜻대로, 아버지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신 우리 주님! 그 모진 매를 맞을 때 살이 쭉쭉 찢어지는,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십니다. 왜 하나님 자신이 말씀이 육신이 돼 자원해서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류를 살려 내고 싶어서 자원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는 주님, 그분을 바라볼 때 저 죽음은 내 죽음이요, 저 아픔은 내 아픔이요, 저 고통은 내 고통이어야 합니다. 근본 하나님으로서 영원성을 가지신 주님이 영원히 죽어야 할 내 영 대신 피 흘려 죽으시는 순간, 그 사실을 믿는 자에게 죄는 역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순간, ()이 서(西)에서 먼 것같이, 내 등 뒤가 보이지 않음같이, 죄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피 흘려 죽으심으로 죄가 모두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육신으로 태어난 예수의 육신이, 당신 구원의 은총이 십자가의 고통과 피 흘리심의 역사가 여러분 안에서 이루어져야 성탄이 내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가 육신을 입고 왔는데 피 흘린 것이 내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성탄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가 육체로 오셨을 때, 그 육신을 직접 보았어도 믿지 않은 사람은 죗값으로 지옥에 갔습니다. 채찍으로 때릴 때 그 살이 찢기면서 흘러나온 피를 본 사람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흘러나온 그 피를 본 사람들도 그분이 구세주임을 믿지 않아서 지옥에 갔습니다. 피 흘리기 위해서 육신으로 오신 예수, 내 죄를 해결해 주기 위해 피 흘려 죽으러 오신 예수가 말구유 안에 태어나 잠자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봤더라도 구원은 없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시며 내 죄 담당하신 피 흘리심이 내 안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가 피 흘리고 살 찢긴 사건이 내 안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내 살을 받아 먹어. 영원한 양식이야. 내 피를 받아 마셔. 영원한 음료야”(6:54~55). 세상에는 하루 버틸 양식이 없는데 예수의 살은 영원한 양식이고, 하루를 버틸 음료가 없는데 예수의 피는 영원히 사는 생명입니다. 예수의 살과 피가, 그 찢어진 살과 피가 여러분 안에 있어 성탄이 여러분에게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5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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