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나의 죄 짐 맡은 예수

등록날짜 [ 2019-12-30 13:48:13 ]

마태복음 8 14~17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아직도 당신에게 온갖 고통이 상주해

있다면 말로만 성탄을 가진 것이니,

예수가 가진 사랑과 능력과 권세로

그 고통을 해결하고, 감사와 고백과

예배와 찬양으로 간증하시기를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성탄하신 예수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인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할 때, 그 사랑을 잘못 알면 하나님을 박애주의자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 세상에 독생자를 보내 주신 목적은 그저 박애주의적 사랑을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죄와 마귀역사로 수많은 고통이 난무하고 무법(無法)한 세상 속에 와서 무질서한 모든 것을 몰아내고 거기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 병은 건강한 사람에게 쑥 들어가 그를 몇 개월 안에 죽여 버릴 수 있습니다. 멀쩡한 사람에게 들어가서 죽이기까지 하는, 이런 무법자가 어디 있습니까. 세상엔 이런 무법한 질병, 무법한 죄악이 난무한데, 누가 그런 무법을 저질러 인간을 온갖 고통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있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으나 질병과 저주와 사고와 파괴를 일으키는 무법자가 수없이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소상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 무법자는 오직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만 알고, 보고,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세상 과학과 문명이 고도로 발전했지만, 인간이 무법하게 당하는 수많은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결국 죽여 영혼을 지옥에 던져 멸망하게 하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으니, 이를 성탄(聖誕)이라고 합니다.


본문은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운 모습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즉시 떠나갔다는 내용입니다. 또 해가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오니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다 고치셨다고 했습니다. 이는 이사야 선지자로 하신우리 연약함을 친히 그분이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라는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연약함이란 말은육체가 약하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연약하기에 죄를 이길 수 없고, 악한 마귀역사를 이길 수 없고, 악한 영들을 이길 수 없고, 정욕을 이길 수 없고, 질병을 이길 수 없고, 저주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이길 수 없는 모든 문제를 예수께서 담당해 해결하시려고, 이기게 하시려고, 우리의 모든 질병을 그 육체가 채찍에 맞음으로 다 짊어지시려고 오신 것이 성탄입니다.

 

복음으로 주시는 내 영혼의 기쁨은 영원

복음(福音)은 복된 소식, 아름다운 소식, 좋은 소식입니다. 이 지구상에서 좋은 소식이라고 해 봐야 그 기쁨이 얼마나 갈까요. 자기 소유의 집을 사고, 좋은 차를 사더라도, 정욕의 욕구는 아무리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고 그 기쁨은 얼마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주시는 내 영혼의 기쁨은 영원합니다. 또 돈과 명예와 권세나 이 세상 문명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내게 닥칠 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복음입니다. 오직 이런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예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 성탄하신 예수를 환영하기 바랍니다.


또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오셔서 역사하시려는 목적을 인간들에게 설득시키시려는 소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왜 오셨는지, 무슨 일을 하셨는지,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를 알게 해 예수를 믿고 은혜를 입게 하려고 설득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라는 말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예수는 자기 피를 내주고, 자기 살을 찢어 주면서 절규하듯 믿으라고 외치십니다. 우리가 영육 간에 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그 소망을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질병과 저주와 죄악에서 자유케 하시려고 전 인류의 죄 짐을 홀로 짊어지셨습니다. 우리가 죄인인 줄도 몰랐을 때, 죄에 이끌려 영원히 고통당하는 지옥에 간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죽음과 멸망의 죄 짐을 예수께 대신 짊어지게 하셔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매 맞으시고, 저주 받으시고,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그것을 믿는 자에게너 치료받아라, 축복받아라, 구원받아라하셨으니 이 같은 애원의 목소리, 생명의 목소리가 바로 복음입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8:32).


예수께서 2천 년 전 이 땅에 오셔서 내가 영육 간에 온갖 고통을 당할 것을 아시고 그 고통을 짊어지고 매 맞으시고 죽으셔서 해결했다는 사실을 믿기만 하면 영육 간에 자유를 누립니다. 예수께서는 죄에서, 질병에서, 죽음에서, 멸망에서 자유를 주시려고 내가 당할 고통을 홀로 짊어지고 해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매 맞으실 때 내 질병을 짊어지셨고, 저주 받으실 때 내 저주를 짊어지셨고, 피 흘려 죽으실 때 내 죄를 짊어지셨고, 부활하실 때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포하셨으니, 그 위대한 성탄으로 이루어진 축복이 나의 몫이요, 믿는 모든 자의 몫입니다. 예수께서는 이처럼 2천 년 전에 오셔서 우리 문제를 다 해결하시고 교회와 목사와 전도자를 세워서이것을 믿고 병든 자여 치료받으라. 저주받은 자여 축복받으라. 죄인이여 구원받으라고 애원했지만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듣고 예수 믿고 자유를 얻었으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영적인 부유 모르는 사람은 신앙생활 힘들어해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저렇게 살려면 너무 부담되고 힘들다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십일조 내야지, 주일 낮과 저녁에 예배 드려야지, 삼일예배와 금요철야예배와 구역예배까지 드리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모이는 일은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영육 간에 복 받은 자들이우리는 축복받은 자, 자유한 자, 영생을 얻은 자라는 기쁨으로 충만해서 예배하고 충성하고 순종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더 잘하지 못해서, 더 진실하지 못해서 아쉬워해야 합니다. 세상은 돈을 더 못 벌어서, 더 출세하지 못해서, 더 못 가져서 아쉬워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더 가지려고 애써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더 부유하려 하면, 하나님께서 기도할 때 응답하시고, 말씀 들을 때 축복하시고, 찬양할 때 영광을 받으시고 상()을 주시니, 우리는 부지런히 모이고 하나님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영적인 부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힘들어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목숨 내놓고 나를 살렸다면, 그분이 내게 무엇을 요구해도 거절할 수 없고, 어떤 요구를 해도 부담스러워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요구는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가진 수많은 고통의 부담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는내가 다 짊어지고 해결해 주겠다하시는데, 우리가 왜 부담을 느낍니까? 예수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에게 부담을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영원한 즐거움과 평안을 주러 오셨습니다. 병들 염려 없고, 지옥 갈 염려 없고, 망할 염려 없는 평안을 주러 오셨습니다.

 

나를 살려 줄 자, 내 문제 해결해 줄 자는 오직 예수

우리는 신앙생활 하는 것이 시간을 빼앗기고, 물질을 빼앗기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는 우리 인간의 권리를 단 한 가지도 뺏은 적이 없습니다. 건강하게 살 권리, 행복하게 살 축복의 권리, 지옥에서 벗어나서 천국에서 살 권리를 주셨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문제를 해결하고 자유하게 살 권리를 주셨습니다. 오직 인간의 권리를 뺏어 간 자는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입니다(10:10). 에덴동산에서도 인간이 그토록 행복하게 살아야 할 권리, 영원히 자유하게 살아야 할 권리를 뺏어 간 자가 바로 마귀역사입니다. 우리가 마귀역사에게 빼앗긴 것을 되찾아 행복하게 해 주려는 예수를 맞이하기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지옥 갈 시간을 천국 갈 시간으로 바꿔 주시려고, 병들 시간을 건강할 시간으로 바꿔 주시려고, 저주받아 고통당하는 시간을 행복한 시간으로 바꿔 주시려고 축복하고 계신 줄을 왜 모릅니까. 인간은 참으로 무지해서 무엇이 참인지, 무엇이 생명인지 모릅니다. 얼마나 무지하면 장승 앞에 떡을 쪄 놓고 복을 빌겠습니까. 장승에 인격이 있다면 속으로네가 깎아 세워 놔서 수십 년째 여기 서 있었더니 다 썩었는데, 무슨 복을 네게 줄 수 있겠느냐?’라고 되물을 것입니다. 인격 없는 것들에게 가서 무슨 복을 달라 하느냐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자기 스스로 속고 정욕에 속고 있는 여러분을 깨닫게 하려는 지식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깨달아 사모하는 자에게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는 분이 성탄하신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분은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러 왔고, 자기 생명을 주러 왔습니다. 나를 살려 줄 자,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자가 오직 성탄하신 예수라는 것을 발견했다면 당신은 가장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지금도 세상 수많은 사람이 마귀의 손아귀, 죄의 손아귀, 정욕의 손아귀에 들어 고통받고 있습니다. 병들게 하고 저주하고 멸망과 파멸로 이끌고 가는 이 원수를 알고, 보고, 쫓아낼 능력 있는 분이 누구겠습니까? 오직 주님이 이 마귀역사의 불법을 드러내서 파괴하고 마귀의 손에서, 죄의 손에서 우리를 건지러 오셨습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2:14)”라고 하신 말씀대로 사망의 손아귀에 있는 우리를 건져 내려면 죄를 해결하고 마귀를 없애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의롭고 거룩한 분이 아니면 악한 마귀 손에 붙들려 사망과 파멸로 그 영혼이 지옥에 던져지는 인간을 도무지 되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 수단으로 절대로 해결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의()와 거룩함과 능력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설교는 진리 가운데로 이끄는 인도(引導)

하나님의 아들이 내 질병을 고쳐 주시려 채찍에 맞음으로, 내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시려 대신 저주의 징계를 받음으로, 내 죗값을 갚으시려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합법적으로 나를 질병에서, 저주에서, 사망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권리요, 자유입니다. 빚을 백만 원 진 사람이 그 액수만큼 갚아 버리면 빚쟁이에게서 벗어나듯, 우리가 질병으로 아파야 할 고통을 예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갚아 주셔야 우리는 자유합니다. 내가 죗값으로 말미암아 지옥 갈 수밖에 없는데도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은죗값인 사망을 예수님이 대신 죽으심으로 갚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권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으로 이루어진 축복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영접하여 모셔 드리는 순간부터 다시는 마귀와 죄가 이끌어 가지 않도록 영원토록 보호하고 보전하시려고 우리를 성령께 맡기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4:16~18).


이 땅에서 내 수명(壽命)이 끝날 때까지가 아니라 영원토록 함께 계시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벌써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과 마귀의 지배를 받은 사람을 갈라놓은 것입니다. 예수 믿고 성령받으신 분은 영원한 진리 안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을 진리 가운데로 영원히 인도하실 것이니(16:13) 우리는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가면 됩니다. 설교는 성령의 소리요,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 가운데로 이끄는 인도(引導)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성령 안에 속한 자, 예수 안에 속한 자, 말씀 안에 속한 자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원수라고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 안에, 성령 안에 속하지 못했다면, 정욕의 인간, 이미 세상 지배 아래, 마귀 아래, 죄 아래 있는 인간이니 주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나와 여러분은 오늘 세상에서 나를 끄집어내서 성령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공로 안에, 진리 안에 머무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배은망덕한 작태 내 안에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이 모든 것을 주신 그분 앞에예수 믿기 힘들다, 충성하기 힘들다하며 무지하고 배은망덕한 작태가 내 안에서 나타나지 않도록 예수님을 향해 인격적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기 바랍니다. 혹시 예수 믿는 일에, 충성하는 일에, 감사하는 일에, 예배 드리는 일에,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일에 부담스럽거나 힘들다는 생각이 들거든 즉시너 왜 주제넘은 생각을 하느냐? 너는 왜 잘못된 생각을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오해하느냐하며 그 생각을 당신에게서 분명하게 몰아내기 바랍니다.


아무리 그 은혜에 감사하고, 아무리 믿음으로 순종하고, 아무리 육체로 힘들게 충성하더라도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아들을 내놓고 죽이신 사랑과 비교할 수 있겠으며,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와서 나 때문에 당하신 고난과 죽음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주를 위해 수고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오히려 하나님은 충성하는 자에게 면류관을 주시고, 영광의 상()을 주신다니 뼈가 부러져도 주 앞에 충성해야 하고, 오늘 생명이 끝나더라도 주 앞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분도 나를 살리려 죽으셨기 때문에 최소한의 인격과 의리를 갖춰야 합니다. 이런 감사와 하나님을 향한 바른 인격이 있어야 우리 스스로 보호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면서부담스럽다, 힘들다하는 사람은 성탄의 목적을 제대로 모르는 것입니다. 만약 부담스럽다면, 매 맞고 저주받고 죽어야 하는 주님이 부담스럽지, 왜 우리가 부담스럽습니까? 소방관은 불나면 사명감 가지고 불속에 뛰어들어 사람들을 살려 내고 자기는 목숨을 잃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요? 쳐다보면 누구든지 쫓아 들어가서 살리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 부담 때문에 자기 목숨을 걸고 장렬히 불속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주님도 인류가 죄와 마귀와 지옥이라는 엄청난 고통을 당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바라보고 부담스러워서 이 땅에 와서 자기 목숨을 내놓으신 것입니다. 인간의 병든 모습을 보시고 얼마나 부담스러웠으면 채찍에 맞아 해결해 주셨으며, 우리의 저주가 얼마나 부담스러웠으면 저주의 나무에 달려 우리 저주를 해결해 주셨으며, 죄로 지옥 가서 당할 영원한 멸망이 얼마나 부담스러웠으면 그 죗값을 친히 담당하고 죽으셔서 우리를 살리셨겠습니까?

 

지금 예수는 성령으로 내 안에 와 계셔

아들 예수를 죽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부담은 또 얼마나 컸을까요. 주님이 십자가의 고통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아버지여, 이 쓴잔이 내게서 넘어갈 수만 있다면 비켜 가게 하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절규의 기도를 올릴 때, 이마에서 땀이 핏방울처럼 떨어지며 몸부림쳤으니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이 기도가 얼마나 부담스러우셨을까요? 하나님이 부담스러워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이는 일을 취소하셨더라면,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 아래서 영원히 멸망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죽음을 앞둔 아들의 절규 앞에서 부담을 감수하셨습니다. 우리가 마귀와 사단과 귀신 때문에 병들어 고난을 당하고 저주를 받고 지옥 가는 문제는 품속에 있는 아들을 끄집어내어 죽이기까지 부담을 느끼셨습니다. 그러니 부담스럽다면 하나님이 부담스러워야지, 왜 우리가 신앙생활 하기 부담스럽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예수 믿기 부담스러운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 모두 성탄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똑바로 알도록 지성이 철들기를 바라며, 감성이 감사할 줄 알기 바라며, 의지가 나를 사랑하신 그분 앞에 죽도록 감사하며 살리라 작정하기 바랍니다. 내가 그분을 위해 죽을 일이 있다면 기꺼이 부담 없이 목숨도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차피 이 땅에서 한 번 살다 가는 인생, 주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나도 주를 위해 죽어 은혜받은 자임을 간증하고 싶은 것이 우리 영혼의 소망일 것입니다. 순교는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은혜받은 자의 인격만 살아 있다면, 자연적으로 피할 수 없는 사건이 순교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를 받았으니 죽어도 그 주님을 배신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합니다. 첫째는 내가 살고 싶고, 은혜받고 싶고, 축복받고 싶어서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이 내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고백하고 간증하고 충성하면서 은혜받은 자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이 성탄하신 목적이 이루어졌다면, 우리 모두 무자비한 마귀역사와 저주를 몰아내고 예수로 살기 바랍니다. 2천 년 전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으나 지금 예수는 성령으로 내 안에 와 계십니다. 내 고통의 문제를 다 해결하시고, 나를 거룩하게 하셨기에 내 안은 예수로, 성령으로, 예수 피 공로로 충만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당신에게 온갖 고통이 상주해 있다면 말로만 성탄을 가진 것이니, 예수가 가진 사랑과 능력과 권세로 그 고통을 해결하고, 감사와 고백과 예배와 찬양으로 간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5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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