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0-01-09 10:24:31 ]
마태복음 10장 1~15절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나님 말씀은 들었거든 그대로 믿고,
믿었거든 행동해서 결국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얻어내야 복이 있어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기에 무엇을 명령하든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복을 명령하실 때 내 것이라고 인정하는 자는 복을 받습니다. 2020년에 우리에게 주님이 어떤 축복의 말씀을 주시든지 단 한 사람도 거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목소리는 내게 주시는 복’이라고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받아들여 주님이 주시는 축복으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보내실 때, 제자들 자체로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나 잡아 근근이 연명하던 어부들인데, 주님은 그들을 보내면서 명하시기를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나환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라. 그 집에 한없이 복을 빌어라”라고 하십니다. 시골 오지에서 밭 갈던 농부 엘리사도 하나님이 불러서 쓰시니 사람이 할 수 없는 이적을 행했습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대로 순종해 움직일 때 이적의 역사가 일어나고, 그런 역사를 만난 사람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명령하실 때, 제자들은 단 한 사람도 ‘선생님, 제가 어떻게 귀신을 쫓고 죽은 자를 살리나요? 그물을 던져 고기는 잡을 수 있어도 능력 행하는 것은 제게는 무리한 명령이신데요’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명령에 따라 제자들이 가는 것은 겉으로 볼 때 제자의 발걸음 같아도 주님이 가시는 것이요, 겉으로 볼 때는 제자의 말소리 같으나 전능자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벳세다 광야에서 장정만 오천 명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할 때, 빌립이 말합니다. “예수님,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려면 돈이 많이 들고, 이 저녁에 그 많은 음식을 살 곳도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 인간의 상식과 지식과 상상을 초월해서 얼마든지 복을 주실 수 있으니 “복을 받아라, 내 것이라고 인정하라” 하실 때 “아멘” 하고 환영하여 소유하기 바랍니다. 아이 하나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주님께 드리자 주님이 떡을 가지고 축사(祝辭)하신 후에 나눠 주시니 그 군중이 실컷 먹고도 넉넉히 남았습니다(요6:1~13).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항상 이런 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주님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게 이루어지도록 믿어야 합니다.
본문에 제자들은 주님이 주신 복을 넉넉히 받아 가지고 갑니다. 그들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며 천국을 들고 갑니다. 천국의 힘으로 병을 고치고, 죽은 자 살리고, 귀신 쫓고, 나환자 고치고 그 가정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이것이 천국으로부터 오는 복이요 창조자가 주시는 복입니다. 주님이 나를 부르시면 복이요, 주님이 내 집에 오시면 복이요, 그 복을 받은 자가 주님의 명령을 받고 나가서 역시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고 죽은 자 살리고 나환자 고치고 이런 수많은 역사를 이루고 그 집에 가서 축복을 빌면 복이 임하니, 여러분은 복만 받는 사람이 아니라 복을 갖다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0년에 복을 운반하는 수레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어떤 복보다도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는 복을 열망했습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빌딩 한 채만 소유해도 엄청날 텐데,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내 것이라고 할 때 얼마나 대단합니까. 또 그 복을 나르는 사람은 얼마나 복이 있습니까.
‘돈이 있어야 복’이라는 사람은 돈에 매달리고, ‘건강해야 복’이라는 사람은 건강에 매달리고, ‘자녀가 잘돼야 복’이라는 사람은 자녀에게 매달립니다. 시한적이고 제한적이고 사라지고 없어질 복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눅7:22)”고 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가난을 문제로 보지만, 예수님은 소외되고 가난하고 저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자기 자신을 주려 하셨습니다. “내 살을 받아 먹어, 내 피를 받아 마셔,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그대로 이루어지니 듣고 행동하면 그 결과는 네 것이야”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복이 가득한데도 ‘왜 나는 이렇게 복을 못 받았지?’ 합니까. 독생자가 있는 곳에는 귀신과 저주가 떠나가고, 질병이 치료받고, 고통이 해결되고, 기도 응답이 있으니,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복이 있습니다.
제가 서부 아프리카 베냉에 집회를 갔을 때, 몸에 기력이 조금도 없고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야 겨우 강단에 올라가니, 현지 목사들이 ‘저런 몸으로 무슨 집회를 하겠나’ 하는 눈초리로 저를 쳐다봅니다. 그런데 강단에 서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복을 말할 때 ‘아이구!’ 하며 통곡하고 회개하니 그 자리에 모인 수십만 명을 죽이려는 죄악들이 떠나가고, 수많은 질병이 치료받고 귀신이 쫓겨 나가는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아! 이 모든 말씀이 내게 주시는 신령한 복이다” 하며 들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사랑받는 자보다 복된 자가 어디 있습니까. 주님이 “내 살을 받아 먹어. 영원한 양식이야. 내 피를 받아 마셔. 영원한 생명이야” 하실 때 그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을 받아야 예수의 생명으로 충만합니다. 주님이 “내 살을 받아 먹어라, 내 피를 받아 마셔라. 영생을 얻어라. 생명의 복을 받아라. 질병을 치료받아라. 귀신아, 떠나가라. 네 수많은 염려·근심·고통·저주는 물러가라” 하시는데, ‘그런 것이 어떻게 이루어져?’ 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리 복이 쏟아져도 그 사람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렇게 신령한 복, 예수라는 복이 내려가고, 회개하라는 복이 내려가는데도 받아들이지 않고 지옥 간다면 태평양 한가운데서 물고기가 목말라 죽는 것보다 더 신기한 일입니다. 금년에는 어느 예배든지 빠지지 말고, 어느 모임이든지 폐하지 말고, 하나님이 복 주시는 자리에 반드시 참가해서 복이 명령 될 때 소유하는, 복 받는 그릇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처럼 제자들이 천국을 들고 귀신 쫓고 병 고치고 죽은 자 살리는 천국의 복을 가지고 가는데도 만약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영접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는 발에 붙은 먼지라도 털어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복을 명하실 때 어떤 말씀이든지 무관심하지 말고 배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져야 할 절대적인 복이기에 환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들었거든 그대로 믿고, 믿었거든 행동해서 결국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얻어 내야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는 치료가 있고, 이적이 있고, 능력이 있고, 창조가 있고, 건강이 있고, 형통이 있는데, 환영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찌 내 것이 되겠습니까? 병든 사람은 고쳐야 복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은 귀신을 쫓아내야 복입니다. 제자들이 병자를 보고 ‘내가 병 고친다고 고쳐지겠어?’ 했다면, 주님의 말씀은 부도가 났을 것입니다. 항상 말씀을 들을 때마다 ‘그게 설마 내게 이루어지겠어? 내가 나가서 그런다고 그게 되겠어?’ 하면서 배타하고 수용하지 않아서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듣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으니 무슨 복이 있겠습니까? “구하라 주리라” 하셨는데, 듣기만 하고 기도하지 않으니 어찌 응답이 오겠습니까? 예수님의 약속은 십자가에서 피 흘린 자기의 이름을 걸고 한 약속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12:1~2). 그런데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가만히 있었다면 그 복이 임했겠습니까. 움직여 행동해서 그 복이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니, 복이 자기 것이 되었습니다. 어느 5대 독자의 며느리가 임신을 했습니다. 아무리 기뻐해도 중간에 유산되면 대를 잇지 못합니다. 언제든지 내가 말씀을 듣고 “아멘” 했거든 유산하지 말고, “내게 복이 수태(受胎)되었다. 나는 행동하고 생산해서 꼭 복을 누리리라” 작정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보내실 때 그 복을 알고 가지고 갔는데, 우리는 왜 그 복을 알면서 소유하지 못하고 항상 놓고 갑니까? 내가 복을 가졌다면 누려야 합니다.
제가 30대 집사 시절, 토요일이면 늘 병원 심방을 다녔습니다. 한번은 어느 대학병원에 갔더니 젊은이가 삶의 소망이 다 끊어진 모습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말을 붙여도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계속 곁에 앉아 하나님 말씀을 전하니 마음을 열고 자기의 사정을 털어놓습니다. 중동(中東) 건설현장에서 일하다가 커다란 에이치빔이 허리에 떨어져 하반신 마비가 되었고 다리에 신경이 통하지 않아 차디차고 바짝 말랐습니다. 그에게 토요일마다 가서 말씀을 전하고 예배도 드리니 점차 그 시간을 기다리고 마음을 엽니다. “성경에 말씀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젊은이, 텔레비전이 고장 나면 어딜 가야 하지?” “전파사에 가야죠.” “전파사에서 못 고치면 어디로 가지?” “버려야죠.” “아니지. 공장에 가면 돼지. 공장에 가면 새 부품으로 완전히 바꿀 수 있잖아. 사람도 고장이 나면 어디에 가지?” “병원에 가죠.” “그런데 병원에서도 못 고치면 어디에 가야 하지? 인간을 창조한 공장으로 가면 바로 고쳐.” 인간을 창조한 창조자가 있다고 하니까 청년이 믿기 시작합니다. 머리에 손 얹고 기도하고, 허리와 다리에도 손을 얹고 기도합니다. 굉장히 희망적으로 바뀝니다. ‘하나님이 나를 치료하신다. 내가 설령 치료를 못 받아도 나는 절대 지옥 가면 안 되고 천국 가야 한다.’ 이제는 살 희망이 생깁니다. 어느 날 간절하게 기도해 주고 집에 왔는데, 저녁때쯤 청년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집사님, 다리에 온기가 생기고 다리를 40cm쯤 들었어요.” “할렐루야. 주님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만져 봤더니 다리가 따뜻하고 들어 보라고 하니까 다리를 들어 올립니다. 복이 들어가니까 생긴 일입니다.
교회 개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삼각산에서 텐트를 치고 기도할 때 일입니다. 충청도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 은혜받던 어느 학교 선생님을 기도하던 곳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선생님, 삼각산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야기를 들어 보니 다리 마비 증세가 와서 학교를 그만두고 부인에게 이혼까지 당하고 삼각산에 능력 있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기도받아 고치러 왔다고 합니다. 저녁때 당시 연희동 우리 교회로 데리고 왔습니다. 애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믿음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그날 간절히 기도해 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제 자유하게 다니세요.” 그리고 그분의 다리를 만져 보니까 온기가 돌아 따뜻합니다. 그분은 그날 자유하게 걸어 귀향길에 올랐습니다. 이처럼 30대부터 병원에 다니면서 병자들에게 기도해 줘서 고친 것은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제게 병자를 고치라고 하신 말씀대로 순종했을 뿐인데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순종은 믿음입니다. 왜 우리는 제자들처럼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여 순종하지 않고, 듣기만 하고 거부하고 복을 놓고 갑니까. 설교 말씀을 들을 때는 예배 순서가 아니라, ‘내게 복을 직접 명령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면서 ‘왜 이 씨에서 열매가 안 맺히나?’ 하는 것 보셨습니까? 말씀을 듣거든 그 말씀이 결실하도록 순종하고 기어이 복을 얻어 내야 합니다. 끝까지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순종과 믿음은 동격입니다. 2020년에는 여러분의 육체에서 질병은 떠나가고 채찍에 맞으신 주님의 피가 가득한 집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심령에서 귀신 사단 마귀는 떠나고 성령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집에서 가난은 떠나고 창조자의 부유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집안에서 불가능은 떠나가고 기도와 응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집안에 예수께서 생애 속에 이루신 전도와 충성과 수고와 이적과 능력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담임)
위 글은 교회신문 <65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