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0-01-13 16:34:42 ]
에베소서 5장 15~21절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지난해 세월을 낭비했을지라도
새해에는 세월을 내 영혼의 때를 위해서,
하늘에 마음껏 영광과 상과 면류관을
만들기 위해서 성령의 지혜와 지식과
믿음과 능력과 분별력 갖고 살리라
작정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변하지만 하나님 말씀은 변하지 않아
이 세상에는 많은 책이 있습니다. 그 책들을 읽어보면 책을 쓴 당대에는 그럴 듯한 내용이지만 세월이 흐르면 독자가 사는 시대와 맞지 않아서 ‘오늘날은 그런 시대가 아닌데…’라고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신 말씀이나, 수천 년 전에 하신 말씀이나, 지금 하시는 말씀이나, 장차 하실 말씀이나 똑같이 우리 인생에 여지없이 적용됩니다. 하나님 말씀은 시대를 초월해 우리 인류에게 주신 진리이기에 어느 시대든 변하거나 가감하거나 보완하지 않는 완전한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세상은 얼마나 쉽게 변합니까. 제가 어렸을 때는 한 동네에 라디오가 한 대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귀했습니다. 그러다 텔레비전이 나오고, 이제는 스마트폰이 나와서 누구나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삽니다. 세상은 계속 변합니다. 우리가 볼 때 변해 가는 문명이 매우 좋은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라디오 속에는 음란물이 없으나 스마트폰 속에는 청소년들 마음을 빼앗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혜로운 자는 물질문명의 더미 속에서 육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세월을 허비하지 않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위해 알뜰하게 쓸 줄 압니다.
술이나 담배를 하는 사람을 보십시오. 젊어서는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몸을 함부로 해도 몸의 강한 면역성과 세포의 힘으로 견디지만, 갱년기가 되면 몸에 잠재된 악한 성분들이 계속 병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다 어린 자녀를 두고 세상을 뜬다면 남은 가족은 어떻게 합니까. 술 마시고 방탕한 것이 육신의 때에 후회를 남기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죗값은 사망(롬6:23)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죄를 재밌게 짓습니다. 죄를 지어서 육신이 끝난 다음 자기 영혼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당한다면, 죄는 자신의 적(敵)입니다. 그런데도 죄를 사모하여 죄짓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는 죄를 지으면 자기 영혼이 사형선고를 받아 지옥에 가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좋은 것을 누가 못하게 하느냐?” 하며 세월을 낭비하고 죄악 속에서 영육이 망할 짓만 하고 삽니다. 세계적인 도박장에 가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전 세계에서 도박을 하러 몰려옵니까. 도박장마다 가득한 사람들은 수고하지 않고 얻는 게 좋아서 모여드는 것입니다. 이게 다 결국 자기에게 주어진 세월을 서서히 망쳐가는 무서운 행동입니다.
인생이 아무리 대단해도 어느 날엔가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 당신의 육신은 한 줌 흙으로 돌아가 사라집니다. 세월은 육신을 위해서도 아껴야 하지만, 내 영혼의 때를 위해서 아끼고 알뜰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네가 무슨 일을 할 때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하셨겠습니까? 다시 말하면 “악한 시대를 살아갈지라도 너만은 악을 품으며 살아서는 절대 안 된다. 악한 세월 속에서 악을 떠나 가장 지혜롭고 선하고 의롭고 거룩하고,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네 이웃을 사랑하며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2020년에는 우리가 망하지 않기를 바라시며 “네가 죄 아래서 죽어가니? 내가 대신 피 흘려 죽어서 너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할 것이니, 내 피를 바라보고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닫고 죄에서 돌이켜 내 흘린 피가 헛되지 않도록 거룩하게 살아라. 인생의 실패자가 되지 말고 영혼의 때의 성공자가 되라”고 애절하게 부탁하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따라 삽시다.
예수 안에 변하지 않는 새것으로 살게 됨에 감사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계22:13). 이처럼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을 세월 속에 두셨습니다. 인간은 한 세대의 세월을 살다 가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만드신 이가 어떻게 살라는 삶의 법도 주셨으니 바로 성경입니다. 그런데 성경이라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있어요? 있으면 나와 보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없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지구상 어떤 종교 경전에도 그 종교의 창시자가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오직 성경에만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에게 주신 법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은 창조한 세상에 사시(四時)와 일자(日子)와 연한(年限)을 두시고, 오가는 세월의 한계를 정하셨습니다. 달과 해를 통해서, 밤낮을 통해서 내가 세월 속에서 살고 있고 세월이 가고 있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매년 오가는 세월의 교차점을 새해라 합니다. 그런데 새해가 돌아오면 ‘신년(新年)’이라고 말하지만 무엇이 새것입니까? 작년에 떠 있던 해가 그대로 있고, 작년에 있던 달도 그대로 있습니다. 새해는 새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너는 한 해가 낡아졌고, 다음 해가 또 낡아진다. 네 인생이 낡아지기 전에 네 영혼의 때의 새것을 만들라’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지구도 점점 더 낡아져 갑니다. 푸른 산과 맑은 강이 점점 오염되고 낡아지고, 갈수록 쇠퇴해 갈 뿐입니다. 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핵무기를 만들어 이 지구는 수십 번 넘게 불살라 사라질 만큼 핵무기가 적재돼 있습니다. 다 인간을 위협하는 것들이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의학도 고도로 발달했으나 못 고치는 병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세상에 불가능이 얼마나 많은데 무슨 새로운 것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새것이 있으니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3:2),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전1:9)라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온 것만 새것입니다. 영원히 죽을 자가 살 자로, 멸망할 자가 영생할 자로, 지옥 갈 자가 천국 갈 자로 우리는 반드시 새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알지 못하나 새것이 된 자만 압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그리스도 안에서만 새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새것이 어디 있습니까? 자동차도 새것 샀다고 좋아하나 타는 순간부터 헌것이 되고, 새 옷도 입는 순간 헌옷이 됩니다. 우리가 새것이라고 이름을 붙일 뿐이지, 결국은 낡아져 없어집니다. 그러나 천국은 낡아지지 않습니다. 내 영혼에게 준 예수의 생명은 낡아지지 않습니다. 영생은 낡아지지 않고 영원히 삽니다. 우리는 내게 신령한 새것이 있음에 감사하며 또 한 해를 주심은 새것을 위해서 살라는 것이니 진정한 새것을 만들어가기 바랍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는 검정 고무신에 바지저고리를 입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아버지께서 우리 동네에 일본에서 양복 기술을 배워 오신 분에게 좋은 옷감을 주고 양복을 맞춰 제게 입혔습니다. 당시에는 매우 신식 옷인데 제가 입던 바지저고리와 다르니까 도저히 창피스러워서 못 입고, 벗어서 학교 가는 길에 논배미에다 던져 버렸습니다. 새것을 줘도 새것인지 모르니까 그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도 ‘영원히 산다’는 새것을 자기에게 주려 해도 영원히 사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 하면 자기에게는 안 맞는다고 거부하거나 “당신이나 믿어!”라며 비아냥거립니다. 여러분은 예수 안에서 변하지 않는 새것으로 살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하지 않습니까.
제한된 세월 속 인간에게 영생을 주신 예수
창조자가 인간을 만드시고 세월을 주셨으니, 그 속에서 흥하느냐 망하느냐, 새것이냐 낡아져 가냐에 대해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최초의 인간 아담이 영원히 새것이요, 낡아지지 않는 하나님의 법인 그 줄에 서지 않고, 이미 낡아지고 실패자가 되고 영원히 지옥에서 살기로 작정된 마귀 말을 듣고 먹지 말라는 실과를 먹었습니다. 그 순간 인간은 사망이라고 하는 심판을 받아 육체가 끝나는 순간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절망적입니까.
사람들은 죽음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내 육신이 끝난 다음 확실한 새 생명인 새것이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아, 때가 됐으니 내가 가는구나’ 생각하고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인생 최고의 마지막 꿈이 오직 천국이라는 소망이요, 주님을 뵙고 싶기에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내가 죄로 지옥 갈 수밖에 없고 사망 아래서 절망적인 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주님이 대신 죽어서 내 죗값을 갚고 나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하셨으니, 그 주님이 얼마나 보고 싶습니까. 이런 사람은 비록 세월 속에 살고 있으나 이미 새것이 됐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16:26)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천하보다 귀한 육신을 천하에 있는 돈, 명예, 권세를 얻으려 다 써 버리고 낭비한다면 당신의 영혼은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천하를 다 줘도 그것들은 목숨이 끝나면 내 것이 아닙니다. 내 눈앞에 아무리 맛있는 사과가 있어도 먹어야 내 것입니다. 이 세월은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려고 주신 것입니다.
세월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은 세월 속에 있는 인간을 구원하고자 함입니다. 물에 빠진 자를 건지려면 물에 들어가야 하듯, 주님은 세월 속에 있는 인간을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살려 주러 오셨습니다. 이 세월 속에서 주님을 반드시 만나 영원하신 그의 생명으로 살아야 영혼의 때도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제한된 세월 속에서 제한되지 않는 생명을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주님이 세월 속에서 드러난 멸망할 인간의 죄악을 그분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지워 없애 버리고, 영원히 사는 생명과 천국을 주러 오셨으니, 예수를 만나 거룩한 세월을 가진 자는 이제 절대로 세월을 더럽히면 안 됩니다. 세월을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말씀 밖에, 예수 피의 공로 밖에 있는 사람들은 세월 속에 심판받을 죄만 계속 쌓아 갑니다. 사람들은 인생이 끝난 다음 죄로 말미암아 당할 영적 고통을 어렴풋이나마 알기에 온갖 신(神)을 만들어 놓고 ‘내가 이렇게 정성을 들이고 선덕을 베풀었으니 신이 있다면 죽은 다음에 좋은 곳에 보내 주지 않겠는가’라고 기대합니다. 그 신을 믿어 준 대가로 좋은 곳에 보내 주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생각에서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대상은 구세주 예수요, 그가 내 죄를 담당하고 피 흘려 죽으신 것은 역사가 증언할 줄 만큼 이 세상 어디에도 감출 수 없는 대사건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주를 위해 죽은 사람이 수없이 많았고, 지금도 일 년에 2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예수를 전하다 죽어 갑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이루어진 일이 아니요, 대낮에 많은 사람이 다 보는 앞에서 이루어진 일이니 누가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있겠느냐”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행4:16).
예수 믿는 것은 나를 도울 신을 내가 찾은 것이 아니라, 나를 도와줄 예수가 이 땅에 나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만든 신들은 이 땅에 와서 죽어 사라졌지만 예수님은 내 죄를 담당하고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오백 명 넘는 사람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고 그 주님이 성령으로 내 안에 와 계시니 누가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땅에서 계속 죽음과 저주의 날을 만들 것이냐, 생명과 영생과 축복과 천국의 날을 만들 것이냐를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세월을 분초라도 아껴서 자신을 거룩하게 만들어 항상 육신의 끝 날을 기대하면서 ‘나는 고통 없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리라’ 하는 사람만이 새것을 가진,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세월 속에 주님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 되라
세월을 붙들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속도로 지나갑니다. 그 나이만큼 늙어 가고 죽어 갈 뿐, 절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생은 육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멸망할 죄를 양산하면서 세월을 속절없이 낭비하면서도 희희낙락하다, 그 죽음 끝에는 비참한 지옥의 날이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예수 믿는 우리에게 세월이 ‘지나간다’는 것은 육신의 수고와 고통이 끝나고 영원한 행복과 축복과 면류관이 기다린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단점은 내 영혼의 때를 위해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시간이 사라져 간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때를 똑같이 세월 속에 있어도 자기 영혼의 때를 어떤 날로 만드느냐가 대단히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너희는 성령과 함께 살아라. 네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지 말고 성령의 지혜와 지식과 믿음과 능력으로 살아라. 성령이 주시는 진리로 살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요, 하나님의 영이시기에 그가 내 안에 오셔서 나를 하나님 뜻대로 살게 하십니다. 내가 육신의 정욕과 소욕에 따라 하나님과 원수 돼 망하지 않게 하시고, 성령의 인격으로 새로운 생애를 살아가게 합니다. 성령의 인도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내 영혼의 때에 큰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기브온 전투에서 여호수아가 전쟁에 거의 이기려고 할 때 태양이 저뭅니다. 태양이 저물어 오늘 밤 전쟁을 끝내지 못하면, 적들이 내일 전열을 가다듬어 다시 침략해 올 수 있으니 하나님께 전쟁을 끝낼 수 있도록 태양을 정지시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자 태양이 정지돼 그대로 떠 있어서 전쟁을 종결했듯이, 우리는 세월이 있을 동안 육신을 이기고 지혜롭게 살아서 육신의 때를 행복한 날로 종결해 영혼의 때의 영광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세월은 주님 뜻대로 살고 영혼의 때를 위해서 사는 자들에게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내 것’이 되지만, 세월을 마귀가 사용하고 육신의 정욕대로 사는 자들에게는 자기 스스로 적군이 되어 자신을 멸망으로 몰아넣습니다. 육신의 소욕과 정욕과 생각을 누가 해볼 수 있습니까. 오직 성령만이 해봅니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어 의학적으로 죽어야 하는 질병, 수많은 죄악을 누가 해볼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의 마귀·사단·귀신 역사를 누가 해볼 수 있습니까. 이런 불가능이 있을 때 예수를 일하시게 하는 것만이 세월 속에 주님과 더불어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어떤 좌절하게 하는 소리를 해도 일어나게 하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이 베데스다 연못가를 지나가시다가 누워 있는 한 중풍병자를 봅니다. 주께서 중풍병자에게 “낫고자 하느냐?” 묻습니다. 그가 “낫고자 하나이다” 할 때 “네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중풍병자가 순간에 일어나서 걸어갑니다. 불가능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자기를 찾아 주기를 원하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이 세월 속에 그 주님이 계시니, 내 영혼 데려가면 천국에서 살 것이요, 고쳐 주면 땅에서 살 것이기에 아무 걱정하지 맙시다.
또 제자 요한과 베드로가 기도하러 가다가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만났습니다. 그에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제는 일어나서 걸어가”라고 합니다. 불가능한 문제에 봉착한 내 앞에는 항상 해결해 주시려는 예수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세월 속에 나를 붙들어 주려고 와 계시는데, 왜 세월 속에서 주를 만나 문제를 해결받으려고 그분을 주목하지 않습니까? 2020년에는 주님과 함께 삽시다.
새해는 성령과 함께 살아 세월을 아끼자
세월보다 훨씬 빠른 것이 영적생활입니다. 마귀·사단·귀신은 세월 속에서 나를 어떻게든 죄 아래서 죽여서 지옥 보내려 하지만, 우리는 마귀역사의 세월보다 빨리 예수 믿고 오늘 죽어도 천국 갈 수 있고, 오늘이라도 주님은 나와 함께 일하실 수 있다고 할 때 세월보다 빠른 영적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탕자는 자기가 가진 세월을 철저히 낭비해 파탄당했으나 아버지와 함께할 때는 부유하고 행복한 세월을 보냅니다. 2020년에는 나그네 된 세월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갑시다. 술 취함과 방탕함과 어리석음은 자기 세월을 무분별하게 낭비하지만, 성령과 함께 지혜롭게 살면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새해를 맞이할 때면 누구나 ‘세월을 아끼리라. 신앙생활 잘해 보리라. 정말로 하나님과 관계를 잘해 보리라’ 수없이 다짐합니다. 그러나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세월에서 속은 것입니다. 마귀는 세월을 가지고 속이고, 문화를 가지고 속이고, 육신의 환경과 상황과 현실을 가지고 속이니 이 원수에게 당하지 맙시다.
우리는 성령과 함께 세월을 아끼면서 하나님과 함께 살 날을 만들어야 합니다. 내게 주신 세월의 장점은 영혼의 때를 위해서 준비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축복입니다. 지난해 세월을 낭비했을지라도 새해에는 세월을 내 영혼의 때를 위해서, 하늘에 마음껏 영광과 상과 면류관을 만들기 위해서 성령의 지혜와 지식과 믿음과 능력과 분별력 갖고 살리라 작정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웃에게 다른 것은 몰라도 예수라는 이름은 항상 줄 수 있고, 예수 피의 공로는 항상 줄 수 있고, 예수를 믿음으로 영생과 천국을 항상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새해에는 이웃에게서 지옥을 뺏고 저주를 뺏고 죄악을 빼앗아 예수를 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5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