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0-02-04 17:08:20 ]
다니엘 1장 8~9절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주님 뜻을 이루는 자로 사용돼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 뜻을 이루려고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으니,
주님 뜻을 이루는 데 쓰임받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선한 일에 쓰임 받는 성도가 되자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계셔서 항상 쉬지 않고 일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시든지 자기 일을 순간에 임기응변적으로 처리하는 분이 아니요, 오직 만세 전부터 자기가 하실 일을 섭리해서 경륜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도 순간순간 처한 상황에 따라 신앙생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앙생활을 단계에 따라 어떻게 하라고 성경에 기록해 주신 대로 순종하기로 뜻을 정하고 그대로 신앙생활 하면 하나님 일의 동역자가 됩니다.
우리는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려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지 전혀 모른 채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섭리론 차원에서 하나님의 일에서 배제된 사람이 되고 마니 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러나 성경에 보면 사람은 선악 간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피할 수 없으니 자신이 악역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는지, 선한 역할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는지 철저히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6~18).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인데, 그 뜻에 동의하지 않는 자는 멸망하고 맙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서 뜻을 이루어 가시기에 우리가 기왕 예수 믿어 신앙생활 할 것이라면 하나님의 그 거대하고 불변하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이루어가는 그 뜻에 어느 한 경점(更點)을 만들어가리라 작정하고 하나님의 신령한 동역자 되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악역으로 사용되면 안 됩니다. 성경에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16:4)라고 했습니다.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는 마음속에 마귀가 예수
팔려는 생각을 넣으니 그대로 했습니다(요13:2). 유다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에 철저히 악역으로 사용됐으나, 그 일이 우리에게는 죄 사함 받는
구원과 생명의 한 절차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악의 도구로 쓰임받은 유다는 죄책감에 시달려 자살하고 말았으니
그 영혼 지금 어디에 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절대 악역으로 사용되지 말고 선한 일에 사용돼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뜻을 같이할 때 뜻을 이루신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사십 일 동안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열한 번이나 나타나셔서 많은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할 수 없도록 수많은 증인을 만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마지막 사십 일간 부활하신 몸으로 계시다가 감람산에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주님이 승천해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현장을 500명이 다 같이 보고도, 예수가 사라지는 순간 두려움이 엄습하니까 380명은 도망칩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 예수께서 대제사장의 집과 빌라도 법정에 차례로 끌려가 신문받으시고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죽었는데 삼일 만에 부활했다고 할 때,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자들에게 “예수가 진짜 하나님 아들인데 대제사장과 빌라도가 죽였구나” 한다면 자기 민족 앞에서 살아날 길이 없으니, 어떻든 예수 제자들을 잡아 없애서 예수 부활 소식을 덮으려고 혈안이 됐습니다. 그러니 예수의 승천 장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을지라도 예루살렘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겠습니까? 예수님의 뜻은 도망친 380명을 통해서도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었는데, 결국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에게 준 사명의 섭리를 유산(流産)하는 자들이 됐습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우리도 최후 심판대 앞에 가서 ‘내가 살아 있을 때 주님 뜻대로 살 걸’ 하고 아무리 몸부림치며 후회해도 소용없으니, 지금이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이 확정되어야 하는 때임을 아시기 바랍니다(고후6:2).
하나님은 살고자 하는 자에게 살려 주는 뜻을 정하셨고, 긍휼을 입고자 하는 자에게 긍휼을,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 은혜 베푸실 뜻을 정하셨으나, 하나님의 뜻에 합할 때어야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로 작정한 자에게 그 뜻을 이루십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합니다. “제 회사가 잘되는 것이 주님 뜻입니다. 그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런데 주님께서는 “네 회사 번창보다 우선할 것이 이 나라와 이 의(義)가 네 안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 뜻은 하나님의 나라가 네 안에 이루어지는 것이야”(마6:33)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뜻에 맞지 않는 기도를 하면 평생 하더라도 응답이 없습니다. 그래 놓고 “믿어도 되는 것이 없다”고 투덜대고 원망합니다.
저는 교회를 개척하기 전부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가 전 세계, 국가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되게 해 주세요.’
하나님은 ‘때가 되면 이루어진다’고 하셨는데 지금 그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교회가 세계에 복음 전하는 일을 능히 뒷받침할 수 있고, 담임목사가 세계에 복음 전할 영력이 생길 때입니다. 기도했으면 그 응답의 때는 나 자신이 만들어야 합니다. 스스로 만들지 않고 그냥 막무가내로 하나님께 달라고만 한다면 어떻게 이루어지겠습니까. 성경에도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님의 쓰심에 합당하며”(딤후2:21)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뜻과 내 뜻이 거룩하게 만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지 않는다면 아직도 하나님의 뜻에 내가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시적으로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가졌다 할지라도, 인간의 한계와 수단으로 계속할 수 없는 일에 부딪힐 때면 ‘나는 못 하겠다!’ 하고 육신의 생각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못 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산 모세, 바울, 노아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정한 자는 하나님께서도 그 뜻대로 살도록 도우시고, 뜻대로 사는 그 일에 책임을 지십니다. 모세가 자기 민족을 애굽에서 해방해 인도해 내라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서 애굽에 들어갈 때, 끝까지 변치 않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내고야 말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과거에는 예수를 신성모독죄를 저지른 자로서 마땅히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할 자라고 여겼지만,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예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즉시 자기 뜻을 바꾸고 주님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됩니다. 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해 순교하기까지 지구 안에서 전무후무한 인간으로 한평생 살았습니다. 구전(口傳)에 따르면, 순교하는 순간에도 “예수를 위해 죽는 것은 내가 가장 원하던 바”라며 감사와 기쁨 속에 죽었다고 합니다. 인류를 구원하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듯, 사도 바울도 주를 위해 죽는 일에 그토록 기뻐했다는 말입니다. 뜻을 정하니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았고, 죽는 것도 주님과 뜻을 같이한 것입니다. 제자들도, 초대교인들도 그랬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해 이 시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사용되시기 바랍니다.
노아의 때는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자행자제하며 정욕의 욕구 충족을 위해 미치듯 날뛰어 사람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항상 악했습니다(창6:5).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에게는 내 뜻을 이루어 갈 만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는 일이 있어서인데 그 뜻을 이루어 드릴 뜻을 품지 않은 사람은 한마디로 저주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불러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는 역청과 잣나무를 구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약 백 년간 방주를 지었습니다. 당대 사람들은 노아를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일 년도 아니고 십 년도 아니고 백 년 동안 방주를 지어? 게다가 강가나 바닷가에 지을 것이지 웬 메마른 땅에 지어? 저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다니 정신 나간 거 아니야?”
그런데 백 년이 지난 다음, 하늘에서 구멍이 뚫린 듯 물이 쏟아지며 땅에 창일(漲溢)하니 노아의 가족 외에 모든 사람이 수장(水葬)되고 맙니다. 하나님 말씀의 효력은 때가 되면 나타납니다. 노아는 백 년 동안 단 한 번도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거나 거역하지 않고, 묵묵히 방주를 지었습니다. 순종이 곧 하나님 뜻과 같이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과학자들이 노아와 같은 방법으로 역청과 잣나무를 사용해 방주를 짓는다고 할지라도, 전(全) 지구적 홍수로 인해 창일해진 거대한 바다 풍랑을 견딜 수는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노아의 방주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따라 지어졌기에 그 엄청난 홍수에도 전혀 손상입지 않았고, 노아의 여덟 식구와 방주에 탄 모든 짐승이 살아남은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진리(眞理)이기에 절대로 부서지지 않습니다. 노아의 여덟 식구가 방주를 믿고 탔듯, 우리도 진리를 믿고 진리에 순종하면 살 수 있습니다. 모두 진리의 배에 타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재산보다 크고, 목숨보다 큽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내 목숨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데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사라질 존재를 기대하며 열망하지 말고, 하나님 뜻은 영원하니,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가서 면류관 받고, 이 땅에서 수고한 만큼 큰 집에서 살기를 기대합니다.
성경에 “하지 말라”하신 일은 하지 말라
하나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있냐?”라고 합니다. 또 예수 믿는답시고 종교 생활 하듯 교회에 오고 교회에 무슨 일이 생기든지 아무런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살았기에 최후에 하나님이 책임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서 방황하면 안 된다고 계속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뜻은 “너희가 예루살렘에도, 유대에도, 사마리아에도, 땅 끝까지 가서 내 뜻을 알려라. 내 뜻은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고 다 영생을 얻는 그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6:38~39).
본문을 보면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 자기 뜻을 정합니다. 하나님 뜻대로만 살기로 마음을 정한 다니엘은 변역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이 정한 뜻은 첫째, “나는 왕의 진미(珍味)와 포도주로 나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는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 온 자가 감히 왕이 하사하는 진미를 거절한다면 살길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목숨을 내놓고 거절했을까요. 그 왕의 진미는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나는 음식들로서(레11:2~8) 피를 제거하지 않은 고기나(신12:20~25), 이스라엘 백성이 먹어서는 안 되는 부정한 짐승의 고기(레7:21, 11:10~12)로 만든 음식이었습니다. 유대인은 우상 앞에 바쳐진 제물은 먹지 않습니다(고전10:28). 그런데 고대 근동 국가에서는 자신들의 신에게 제사했던 최상의 음식을 왕과 귀족이 나눠 먹었기에, 바벨론 왕이 내린 음식은 거의 바벨론 신에게 바쳐진 제사 음식이었습니다.
뜻을 정한 다니엘은 왕의 진미를 거절하고 환관장에게 말합니다.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보이는 대로 종들에게 처분하소서”(단1:12~13).
환관장은 다니엘이 채소만 먹어서 얼굴이 초췌해지면 왕명(王命)을 어긴 죄로 자기 목숨이 위태로워질까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간청에 못 이겨 열흘 동안만 채식을 하게 합니다. 열흘 후, 다니엘의 얼굴이 왕의 진미를 먹은 모든 소년보다 윤기 나고 아름다우니 그 후로 삼 년간 왕의 진미 대신 채소만 먹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속에 “하지 말라” 하신 일은 세상에서 아무리 유익을 많이 얻을 수 있어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은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하나님 말씀을 지켜 뜻을 같이한 자들의 영광은 영혼의 때에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 뜻대로 살면 그에게 다가오는 죄의 형벌로 지옥이 입을 벌리고 있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지 말고, 오직 순종하여 주님의 뜻에 동의하기 바랍니다.
하나님 뜻에 목숨 걸고 절대 순종하라
또 다니엘은 뜻을 정합니다. “나는 나의 조국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포로생활의 해방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어떤 신상(神像) 앞에서도 절하거나 섬기지 아니할 것이다.” 하나님 뜻에 목숨 걸고 절대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이 목숨보다 크기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결국 내 영혼의 몫입니다.
바벨론 왕은 유다 왕족과 귀족 소년 중에 흠이 없이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에 통달하며 지식을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둘 만한 소년들을 데리고 와서,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고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주어서 자기 나라에서 큰일에 쓰려고 했습니다(단1:3~5). 그들 중 한 명인 다니엘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니 그 뜻을 이루도록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왕을 받들어 정사(政事)를 얼마나 잘 운영했던지 총리 위의 총리가 되어 아래 총리들을 관장할 만큼 대단히 신임받는 인물이 됐습니다. 이를 시기한 자들이 다니엘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다니엘을 가만히 보니 하루에 세 번 꼬박꼬박 자기 방에 들어가 예루살렘을 향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를 보고 음모를 꾸민 후 왕에게 말합니다.
‘지금 이 나라는 왕을 중심으로 결속해야 합니다. 왕이 백성에게 추앙을 받기 위하여 왕이나 왕 신상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거나 다른 신을 섬기는 자는 사자 굴에 집어넣어야 합니다’(단6:7). 왕은 그 궤계를 알지 못하고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을 금하는 금령(禁令)에 어인(御印)을 찍습니다. 그리고 방을 붙이고 공포(公布)합니다.
“지금부터 삼십 일 동안 어느 신을 섬기거나, 경배하거나, 신에게 기도하는 자는 사자 굴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정한 뜻 그대로 어김없이 하루에 세 번 기도합니다. 신하들이 이 일을 왕에게 알리고 왕의 명령을 어긴 다니엘을 참소하니, 결국 다니엘은 굶주린 사자 굴에 던져집니다. 뒤늦게 다니엘을 죽이려는 음모인 줄 깨달은 왕은 총명한 다니엘을 잃는 것이 분하고 슬퍼서 밤새도록 잠 못 이루다 아침 일찍 사자 굴로 가서 외칩니다.
“다니엘아,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그러자 죽은 줄 알았던 다니엘이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萬歲) 수(壽)를 하옵소서”라고 대답하니, 왕이 심히 기뻐하며 다니엘을 굴에서 꺼내라고 명합니다. 하나님이 천사들을 보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다니엘의 몸은 털끝 하나 상치 않았습니다. 하나님 뜻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전하셔서 그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왕이 다시 명을 내려 다니엘을 모함해 죽이려 했던 자들과 그들의 처자들을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었더니 사자가 그들이 굴 밑에 닿기도 전에 삼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왕은 백성에게 조서(詔書)를 내립니다.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찌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단6:26~27).
뜻을 가진 한 사람이 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온 나라에 퍼지며 온 나라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 뜻대로 살리라 작정하고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목숨을 내놓고 행동했습니다. 포로로 잡혀 온 다니엘이 총리 중의 총리가 되어 왕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왕의 명을 어기고 감히 다른 신에게 절을 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왕의 명령은 어겨도 하나님의 뜻은 배신할 수 없다”며 하나님이 자신의 신이심을 분명히 했고, 하나님만 경배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함께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파도가 아무리 쳐도 깊은 바다 속의 암석은 요동치 않습니다. 세상 파도가 아무리 험하고, 생명을 위협할지라도 내가 가진 믿음, 하나님과 같이하겠다는 뜻이 요동하지 않을 때 하나님이 얼마나 감동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실 때까지는 절대 나를 해(害)하는 자를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기 위하여 하나님 뜻이 내 안에 수태(受胎)되게 하옵소서.’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에 연세중앙교회에 내가 소속한 기관에, 내 구역에 나를 통해서 주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있습니까? 만약 당신에게 그런 뜻이 없다면 하나님의 섭리적 역사 속에서 제외된 불행한 사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 뜻을 이루는 자로 사용돼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 뜻을 이루려고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으니, 주님 뜻을 이루는 데 쓰임받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6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