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0-03-17 15:05:52 ]
히브리서 11장 6절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믿음은 말씀을 내 몫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것
하나님은 말씀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히4:12~13).
본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무엇을 해 주겠다고 누군가에게 철석같이 약속을 했는데, 그만 약속을 실천하기 전에 숨을 거뒀다면 그 약속은 무효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 말씀이 살아 있다’는 것은 약속하신 하나님이 과거도,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하신 말씀을 과거에도 이루셨고, 현재도 이루고 계시고, 앞으로도 이루실 것이기에 그 말씀을 듣는 모든 자에게 믿음이 되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신 말씀은 우리 인간이 그 말씀을 수용하든 거절하든 축복의 약속입니다. ‘너희를 살려 주겠다, 책임지겠다, 천국 가게 해 주겠다’라는 복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이 분명히 이루어진다고 믿지를 않으니까 그 엄청난 축복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믿음을 갖고 산 사람은 믿음의 분량만큼 하늘나라에서 분명히 영광과 부유와 상(賞)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의 사람들의 행동은 세상 사람이 보기에는 ‘왜 저렇게 무모하지? 왜 세상에서 하라는 것은 안 하고, 하지 말라는 짓은 하나?’라고 할 만큼 세상과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룹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같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말씀대로 사시는 일에 극과 극의 대치를 이뤄 결국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사건을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인격화됐을 것이요, 믿음이 없다면 세상 것이 인격화됐을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 소리를 듣고,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성경에 말했으니(요8:47), 마지막 때일수록 하나님께 속한 자가 돼 하나님 말씀을 듣고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으로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과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행하시는 분이시고, 하나님의 약속 이행은 대로(大路)에서 행함같이 그 위대한 역사를 만인이 알고, 보고, 경험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를 사시다 찔리고 상하고 징계받고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서 잔인하게 못 박혀 죽으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지금 성령으로 우리 안에 와 계신 것은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믿는 자에게는 비밀이 공개되나, 믿지 않는 자에게는 여전히 비밀로 남아 있으니 비밀이 공개된 예수를 믿게 되었음을 축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겠다는 약속의 성취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시는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하신 다음,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고 죄의 결과까지 다 일러 주셨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뱀을 이용해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했고, 먹는 순간 정녕 죽음이 왔으니 그때부터 아담의 후손인 인류는 태어나서 죽으면 육은 흙으로, 영혼은 지옥으로 계속 분리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분리돼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는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임마누엘을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1:23) 약속대로 예수가 이 땅에 태어나 찔리셨는데 그가 찔림은 우리 인류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인류의 죄악을 담당하기 인함이요,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 인류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저주를 받음으로 인류의 죄로 오는 모든 저주가 소멸되고, 채찍에 맞음으로 질병에서 치료받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인류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살리셨습니다(사53:5~6).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대로 실천한 것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이요, 은혜요, 축복이요, 영생이요, 천국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약속 실천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 그저 육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자 온갖 수고를 다하다 육신이 강제철거당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면, 그 영혼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당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이를 막아 주시려 약속하신 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요, 이를 막아 주시려 믿으라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예수의 생애입니다. 믿음은 내 몫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눈앞에 사과가 있어도 내 입에 들어가야 내게 영양분을 주듯, 아무리 성경을 놓고 ‘이 약속은 내 것’이라고 주장할지라도 내게 이루어져야 진정한 내 몫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약속을 줬거든 이루어져야 내 것이고, 이루어져서 내가 가지고 생명으로 살아야 하고, 내가 가지고 그 이름으로 이적을 나타내야 하고, 내가 그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과 뜻을 같이할 때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알아도 행동하지 못하면 믿음 없는 사람
제가 외국에 나가 대규모 성회를 인도할 때면 수만 명이 모이는데 회개 운동이 엄청나게 일어납니다. 왜 그렇게 회개 운동을 강력하게 할까요? 예수께서 이 땅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대로 이루신 십자가 피의 공로는 회개로만 내 몫으로 얻을 수 있고, 회개로만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흘린 피는 내 죄와 바꾸기 위한 것입니다. 내 죽음과 바꿔 피의 생명으로 살고, 내 죗값과 바꿔서 예수 생명으로 살고, 사망과 지옥과 바꿔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합니다. 이처럼 믿음은 하나님 아들 예수의 생애가 내게 다 이루어질 때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실천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과 사역을 믿음으로 순종하기에 감사하며 충성하고, 받은 은혜의 분량대로 예배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아들 예수를 주신 그 크신 사랑을 믿음으로 소유하고 경험하고 나타내고 표현하는 것을 영적생활, 곧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영적생활과 신앙생활의 성공 여부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주신 약속을 얼마나 확실하고 분명하게 가지고 믿고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약2:17)이라고 했기에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입었습니다. 구약시대는 거의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입었는데, 그 사람이 진짜 의로운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 움직임으로 의롭다 함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피의 공로로 의롭다 함을 입은 게 아니라 내 안에 내주해서 가졌으니 얼마나 복 받은 사람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
그런데 우리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어디까지만 수용하겠다고 마음속으로 정합니다. “삼일예배, 금요철야, 구역예배까지 다 드려? 뭐 그렇게 예수를 수다스럽게 믿어? 나는 주일예배 한 번만 드리기로 했어.”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믿음과 아무 상관 없이 자기가 자기 믿음을 정하는, 영적생활의 실패자입니다. 하나님 아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 이 쓰디쓴 잔이 내게서 비켜 지나갈 수만 있거든 지나가게 하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하시며 몸부림쳐 기도하실 때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이 모세혈관이 터져 핏방울과 같이 떨어집니다. 그 심한 통곡과 눈물의 기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하는 중대사를 앞두고 하셨습니다. 나와 여러분에게 생명 주기를 그렇게 애타게 원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찔리고 상하고 징계받고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셔서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주님께 예배드리자는데 무엇이 두려워서, 무엇이 바빠서 그렇게 하나님과 관계를 그만두는 것입니까. 이런 사람은 믿음이 없고, 예수의 생애로 주신 구속의 은총을 받지 못한 자인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시고 죽어서 나를 구원했다면, 나도 죽음 앞에서도 주님을 믿고 주님을 떠나지 않는 것이 내가 사는 길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요15:5)라고 하셨으니, 누구든지 예수를 떠나는 자는 절대 살 수 없습니다. 살려 주려는 주님과 살려는 내가 만나는 것이 믿음이고, 주님이 살려줄 줄 믿고 내가 살 줄 믿고 나오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과 관계를 끊을 수 없는 믿음의 사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믿노라 하면서 실상은 믿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말세에 우리 주님이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는데, 마태복음 24장에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미혹에 주의하라, 거짓 선지자와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주의하라,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고, 너희를 환란에 넘겨주고 죽이고 온 민족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마24:3~13).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면 어찌 견디겠습니까. ‘믿음 없다’는 말은 ‘하나님이 내게 하신 약속을 모른다’는 뜻과 같습니다. 알아도 행동하지 못한 사람은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상도 죽음도 핍박도 능히 이길 힘 가져야
당신에게는 ‘믿음의 기력’이 얼마나 있습니까? 내게 ‘예수’라는 ‘전지한 능력’이 있어 그 힘으로 내 신앙을 가동하고, 내 육신의 소욕과 세상과 마귀·사단·귀신 역사를 이겨 하나님의 나라까지 가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기력입니다. 자동차가 연료에서 움직일 힘을 얻듯, 우리는 예수가 내게 주신 은혜의 힘, 능력의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능히 순교를 넘어서서 천국까지 가야 합니다.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賞)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해 드리고, 그의 이름에 있는 능력을 인정해 드리고, 그의 약속을 인정해 드리고, 그의 피를 인정해 드리되, 내가 가지고 인정해야 합니다. 믿노라 하면서 왜 믿음의 증거가 나타나지 않습니까.
주님 재림이 가까이 올 때,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힘든 날이 오겠습니까. 연료탱크에 기름을 많이 넣고 출발하듯, 주님 재림의 때까지 넉넉히 사용할 믿음의 에너지가 항상 풍성해야 합니다. 교회 다니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당신 속에 세상을 이기고, 죽음도 이기고, 핍박도 이길 믿음의 역량이 넘쳐서 능히 이길 힘이 있어야 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요일5:4~5).
세상을 이기는 힘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육신 때문에 이기지 못합니다. 육신을 이겨야 이어서 세상도, 마귀역사도, 환경도, 돈도 이기는데, 이런 것들이 전부 육신에게 필요하기에 놓지를 못합니다. 결국 이것들이 장애물 돼 내 영혼을 파멸로 이끈다면, 이보다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부활하여 승천하기 직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고 말입니다. 붙들리면 죽을까 봐 두려워 덜덜 떨고 있는데, 온 천하에 다니면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할 힘과 기력과 그 영력이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또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6~18). 그러나 제자들이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하다 성령이 임하니 넉넉한 힘과 영력을 가지고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해서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믿음의 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는 믿음은 누구에게나 그 분량에 제한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교회 다니는 것까지가 내 믿음이야”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방언하는 것까지가 내 믿음이야”라고 합니다. 우리는 주를 위해서 최후에 순교(殉敎)라는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에게는 순교의 과제를 이뤄 낼 능력이 있습니까? 제자들은 전부 다 주님께서 명령한 과제를 성령의 기력, 믿음의 기력으로 해냈습니다.
믿음은 이적과 생명이 넘치는 자원
사람들은 믿노라 하면서 자기의 신념과 능력을 믿음으로 오해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자신의 능력의 한계, 곧 육신의 한계나 감당할 수 없는 불가능에 봉착할 때가 옵니다. 그때서야 믿음의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이제 하나님만 의지하기로 했어”라고 한다면 지금까지 들은 설교는 무엇이며, 지금까지 믿은 믿음은 어디 갔기에 이제야 믿음을 찾습니까. 여러분은 믿음을 최악의 경우에 찾지 말고, 지금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 주님 재림하시는 그 날이나 당신 목숨이 끝나는 그 날 믿음을 찾는다면 절망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주어진 무한하고 초월된, 이적과 생명이 넘치는 자원(資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믿음은 불가능에 대처할 수 있는 절대 필요한 기업이 되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 비상금을 가지고 있듯, 우리에게 최고의 비상금은 믿음입니다. 기력 없는 믿음, 능력 없는 믿음, 예수 생애를 갖지 못한 믿음은 믿음이 아니요, 성령이 보증하지 못하는 믿음은 신념일 뿐입니다.
인간이 마귀역사를 보지도, 알지도 못하고, 어떻게 역사하는지도 전혀 모르는데, 어찌 인간의 방법으로 마귀역사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롬6:23)’인데 죗값을 짊어지고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문제를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이 가진 질병, 고통, 수많은 어려움을 이 지구상의 돈, 명예, 권세 등 어떤 수단으로도 해결할 수 없을 때 얼마나 불행합니까? 그러나 예수는 마귀역사를 보고 알고 멸하는 분이시고, ‘죗값은 사망’이라는 문제를 피 흘려 죽으셔서 해결한 분이시고, 인간의 모든 영육 간의 불가능을 현장에서 고치시고 해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을 내게 믿음으로 주셨으니 이것을 지구상 최고의 기업으로 알고 사용하기 바랍니다.
그런데 믿음을 가졌는지 안 가졌는지조차 모르다가 어떤 불가능한 일에 봉착했을 때 ‘큰일 났네’ 한다면 안 가졌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베드로는 예수를 좇을 때 스스로 믿음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주님이 가야바의 뜰에서 조롱과 멸시받고 빌라도 법정에서 채찍에 맞아 고통당할 때 베드로가 그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꼴을 볼 때 믿음이라고는 터럭만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령 충만히 받고, 예수 생애를 자기 안에 완전히 가졌을 때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향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3:6) 하니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어갑니다. 이것은 누구의 힘입니까? 우리의 믿음이신 예수의 힘, 성령의 힘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가진 영육의 불가능을 모조리 해결하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믿음으로 주셨습니다. 예수로 주신 믿음을 사용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일하심을 현장에서 목도하는 이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믿음은 죄 사함받고 구원받는 것만이 아닙니다. 반드시 죄에서 나왔으면 죄를 이길 수 있고, 마귀 사단 귀신에서 벗어났으면 악한 역사를 이길 수 있고, 세상에서 나왔으면 세상을 이길 수 있고, 성령의 사람이 됐으면 육신의 정욕을 이길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말합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주님이 자기를 고치려고 마음만 먹으면 고칠 수 있다는, 예수님을 인정하는 믿음을 보였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곧 나병이 깨끗이 낫습니다(마8:2~3). 이처럼 당신이 가진 불가능을 해결하기를 원한다면, 믿음의 기력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기력이 없으니 삼일예배도 안 나오고 기도도 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에서 믿음의 기력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자로서, 그 약속을 믿고 그 약속대로 행하며 주님을 일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 속에서도 자신을 믿어 주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주님과 함께 큰일을 하기 원하십니까?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주님을 확실하게 믿으십시오. 주님이 나와 함께 내 생애 동안 일하게 하십시오. 예수가 주시는 제한 없는 이적으로 믿음을 확증하며 사십시오.
언젠가 믿음의 기력이 떨어지면 그 때는 바로 믿음에서 퇴보되고 믿음에서 떠난다는 것을 명심하고, 천국 갈 때까지 믿음의 기력이 넘쳐나야 합니다. 믿음의 힘, 곧 영력으로 모든 것을 이기고 하늘나라까지 가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6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