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

등록날짜 [ 2020-04-11 10:49:50 ]

누가복음 12장 13~21절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사랑하는 성도여, 고난주일을 맞이하여

나의 죽어야 할 죄를 빼앗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쏟아 내 죗값으로

지옥에서 당할 고통을 대신 담당하신

어린양을 보십시오.


최상의 감사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최상의 신앙생활로 나를 위해

죽어 주신 주님 앞에 고백하는

영적생활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공생애 시작하며 처음하신 말씀 ‘회개하라’

하나님은 죄로 멸망할 인간을 사랑하겠다는 뜻을 태초부터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을 흙으로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창2:7). 그리고 아담에게 모든 만물을 주시며 정복하고 다스리고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죽는다’라는 말은 흙덩어리인 육체가 죽는다는 말이 아니라 아담이라는 생령(生靈), 영혼이 죽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뱀을 이용해서 하와를 미혹해 선악과를 먹게 하고, 아담에게도 줘서 먹게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죄에서 오는 고통에 시달리다가, 목숨이 끝나는 순간 견딜 수 없는 지옥에서 세세토록 고통을 당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죗값으로 오는 인간의 영육 간 고통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마지막 선지자 침례 요한이 ‘온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며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처음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입니다. 온 세상 인류는 다 아담의 후손으로 죄 아래 있었습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첫 사람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원죄(原罪)를 범하여 영원히 사망하게 되자, 아담에게서 나온 모든 인간도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 죄로 영원히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옵니다. 예수가 비둘기처럼 하나님께 제물이 돼 우리 죄를 속할 구세주임을 보여 줍니다. 또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마3:17)라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누가 어린양처럼, 비둘기처럼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어서 우리 죄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하실 수 있습니다. 침례 요한이 이종사촌인 예수를 보고 성령에 감동돼 자신의 입에서 ‘온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외치면서도 자기 자신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예수는 이렇게 선지자 침례 요한에 의해 요단강에서 침례받으면서 유대인에게 알려지고 성령으로 공생애를 시작합니다.


영육 간의 고통을 해결하려 어린양 되신 예수

이 세상은 창조자 하나님 앞에 무시로 불순종과 대적과 교만의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세월 속에서 한 줌 흙으로 사라지는 순간, 그 죗값으로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당할 보잘것없는 존재인 인간이 감히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이 있으면 나와 보라며 온갖 경거망동을 일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태양 에너지와 공기와 물을 비롯해 모든 만물로 살고 있으면서도 하나님 은혜를 전혀 모릅니다. 어두움의 주관자인 마귀는 모르게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고, 모르게 죄짓게 하고 그것이 옳은 일인 줄 알게 합니다. 죄가 올무가 되어서 목숨 끝나는 순간 죗값으로 영원히 괴로움을 당하는 지옥에 던져진다면 이보다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세월이 가면 갈수록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과 우상숭배와 음란과 온갖 죄악 때문에 심판과 저주와 지옥은 비대해져 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세상에서 죄로 영육이 멸망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보내면서 “이 말씀을 읽어 봐. 천지만물은 모두 하나님이 지었어. 너도 하나님이 만들었고, 지금 하나님의 것으로 살고 있어. 세상에서도 나라마다 법이 있듯 하나님도 인간을 다스리는 법을 주셨는데 이 법이 하나님 말씀이야. 이 법대로 못 살면 죽어. 최초의 인간 아담이 하나님의 법을 불순종했기에 죽었으니 제발 그러지 말라”고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설득하는데, 인간은 알려고도, 믿으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사랑을 갖고 설득하시는데 인간은 왜 그렇게 몰인정하게 무시합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을 무시하면서도 그런 사실조차 모르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간들에게 어떻게든 죄인임을 깨닫게 해서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입니다. 이분은 어린양과 같이 우리의 죄를 위해 죽어서 우리의 죗값을 갚으시고 영육의 질고와 고통을 현재부터 영원까지 종결하려고 오셨습니다.


나의 모든 죄 짊어지고 대신 죽으신 예수

예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창조자십니다. 인간에게 존귀와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세세무궁토록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인간의 질고와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어린양 같이 죽으러 오셨을까요?


죗값은 사망, 곧 인간의 죗값으로 당할 지옥 형벌은 영원히 참혹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인간의 죄를 자신의 죽음으로 해결하기 위해 어린양같이 육신을 입고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러 오신 것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하면 성막에서 제사를 지냅니다. 제사 지낼 사람은 흠 없는 양을 가지고 성막 문 앞으로 가서 제사장 앞에서 제물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자신의 죄를 전가(轉嫁)하며 안수합니다.


자신을 그 제물처럼 죽을 자로 인정하고 죄를 고백하며 ‘나는 죄로 마땅히 저주받고 죽어야 하지만, 이 양에 내 죄를 모두 전가하오니 내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는 마음으로 안수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 제물이 하나님께 열납되어 죄를 속함받았습니다.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찌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레 1:4)


안수 후, 이스라엘 백성은 희생 제물을 자기 손으로 직접 잡아야 합니다(레 1:11~12). 제사를 드리는 자가 직접 희생 제물의 목을 칼로 찔러 피를 그릇에 받고, 껍질을 벗기고 내장을 긁어내고 각을 떠야 했습니다. 그럴 때 심정이 어땠을까요? ‘내가 이렇게 칼에 찔려야 하고, 피를 쏟아야 하고, 뼈가 잔인하게 부서지고, 온몸이 조각조각 찢어져야 하는데 나를 대신해 이렇게 양이 죽습니다’ 하면서 양이 죽는 아픔을 똑같이 느끼며 제단 앞에서 회개하지 않았겠습니까?


예수는 ‘어린양’같은 분입니다.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죽을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의 죄를 낱낱이 자백해야 합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음을 인정하고 죄를 내놓는 순간 나는 죄에서 해방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 성도 하나가 빚을 져서 그 빚에 쪼들려 밤낮 괴롭고, 빚쟁이에게 전화가 올 때마다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을 당한다고 합시다. 그때 제가 그 빚쟁이를 찾아가, 돈을 다 갚고 그 증거로 영수증을 받아 성도에게 주는 순간, 성도는 빚쟁이에게서 벗어납니다. 그렇게 성도는 자유를 얻었으니, 다시 빚쟁이가 돈을 달라고 못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으신 분명한 증거가 2000년 전, 예루살렘에서 골고다를 오르면서 죽으신 십자가 피 공로의 현장입니다. 저는 골로다 언덕에 여러 번 가 보았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신 길이 내 죄 짊어지고 가신 길이다’ 하고 생각할 때 통곡이 터져 나왔는데, 아무도 제재하지 못할 정도로 한참을 울고 말았습니다. 내가 죽어야 하는데, 주님이 내 죽음을 가져다가 대신 죽으셨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로는 주님을 위해 죽을 수 있다고 하지만, 실상 주를 위해 무슨 일을 했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은혜만 받으려고 했지, 은혜받은 자가 은혜 베푼 자에게 해야 하는 감사 표현은 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기적인 신앙생활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은 단지 종교생활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감당할 수 없는, 한량 없는, 잊을 수 없는 은혜

내 영혼은 그 죗값으로 죽어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 고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가 육신을 입고 어린양같이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러 오셨습니다. 예수는 죽으실 죄가 전혀 없으신 하나님이신데 온 세상 인류의 죄 짐을 대신 짊어지고 골고다로 가셨습니다. 골고다 언덕은 쓰레기 같은 죄인 중의 죄수들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서 영문(營門) 밖에 내던지는, 아주 천박하고 더럽고 추한 장소입니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골고다에 오르신 주님이 수치와 아픔과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피를 쏟아 내는 참혹한 현장, 곧 처절한 죽음의 현장입니다. 이처럼 예수는 공개재판을 통해서 처형하는 십자가에 죄인으로 처형당했으나 삼 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죗값은 사망인데 삼 일 만에 부활했으니 죄가 없다는 증거입니다. 천지에 죄 없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누구의 죄 때문에 죽었습니까. 인류의 죄 때문에 죽었으니 그가 죽으시는 순간 내 죄는 없어졌고, 그가 부활하시는 순간은 내 죄가 해결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죄인 된 나와 여러분, 우리 인간이 당할 고난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담당하시고 죽으신 목적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세상은 육신이 편하려고, 행복하려고, 평안하려고, 돈 벌어 쌓아 놓고 호강해 보려고, 명예를 얻어 영웅이 되려고, 다 누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온 인류가 열망하는 이것들을 원치 않고 자기 자신을 찔리고 상하고 징계받고 채찍에 맞고 피 흘려 죽어 저주의 나무에서 찢어져 죽으면서까지 우리 지옥의 고통을 해결해 나를 살리고 영생과 천국을 주셨던가요. 감당할 수 없는 은혜, 한량없는 은혜, 잊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십자가는 나를 사랑하신 증거요, 표현이요, 실천

어떤 사람은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아침 한 끼 금식하기로 했어”라고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아침 한 끼 굶는 정도로 표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가 전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죽을죄가 있다고 할 때 얼마나 명예가 훼손됩니까. 죗값으로 죽어야 한다고 할 때 얼마나 그 영혼은 저주를 받고,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그 당시 십자가를 지고 죽은 사람의 가족은 온갖 천대와 무시를 당하기에 살 수 없어서 그 지역을 떠나야 할 정도로 저주받은 것이 십자가형입니다. 왜 주님은 그런 십자가형을 선택했을까요? 주님이 십자가를 지지 않으시면 내가 죗값을 가지고 지옥에 가서 세세토록 불꽃 가운데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은 인간이 좋다는 것은 다 버리시고 천박하게 여기며 내던지는 것들만 수용하면서 피 흘려 죽기까지 인류 구원을 위해서 자기 몸을 십자가에 찢으면서 사랑을 실천하였던가요. 그곳에서 나와 여러분, 인류는 저주와 죄와 죽음과 지옥의 절박한 고통의 상황에서 해방과 자유와 영생과 천국을 유업으로 받았으니 그저 감사합니다. 내 평생 찬양과 영광을 돌리고 아니 내 목숨 다 드려도 갚을 길 없는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 중에 은혜를 입은 우리가 은혜의 주님을 어떻게 대합니까? 예수 십자가 피의 공로로 죄 사함받아 지옥 갈 신세를 면한 것도 감사한데,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서 눈물도 없고 아픔도 없고 고통도 없고 사망도 없고 천년이 하루같이 지나가는 그 영광스러운 나라에서 영원히 산다고 하니, 이 은혜를 입고 은혜 베푸신 주님 앞에 여러분은 뭘 드리고 뭘 표현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고난이 힘이 없어 결박당한 고난입니까? 나와 여러분들은 어쩔 수 없이 힘이 없으니까 잡아다 가두면 갇히고, 때리면 맞고, 죽이면 죽임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창조자요, 말씀 한마디면 그대로 되는 분인데 왜 참으셨을까요? 자신이 맞아야만, 찔려야만, 상해야만, 저주받아야만, 죽어야만 내 영혼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나를 사랑하신 증거요, 표현이요, 실천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은혜 앞에 너무 초라하게 밤낮 달라고만 하고 이것저것 왜 안 주냐고 불평한다면 당신은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라 종교인에 불과합니다.


골고다의 핏소리는 인류를 사랑하신 주님의 절규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찔려서 내 허물을 해결해 주시고, 상해서 내 죄악을 무효로 해 주시고, 징계를 받아 내 징계를 평화로 바꿔 주시고, 저주의 나무에 달려서 저주받음으로 내 저주를 없애 주시고, 채찍에 맞음으로 내 질병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우리 인류는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와 해방이 선포되었으며, 주가 나 위해 받으신 고난과 피 쏟아 죽으심이 나의 영육의 고난과 죽음과 지옥의 고통을 대신했음을 믿는 그 믿음으로 평안과 기쁨과 영원한 천국을 내 영혼의 때에 소유하게 됐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하신 은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증거하시고 성령도 증거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15:26).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했던 사도와 제자들도 자기 목숨을 다 내어놓고 이를 증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고난과 골고다의 핏소리를 말입니다. 주님 고난의 핏소리가 지금도 내 귀에 들려오는 것만 같지 않습니까. 골고다에서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 하시며 쏟으신 그 핏소리는 인류를 사랑하신 주님 사랑의 절규요, 사랑의 오열이요, 인류 구원을 위해 내뿜는 끝없는 함성이었습니다. 이 지구상에 인간이 존재하는 한 이 사실을 몰라서 믿지 못하고 지옥 가는 영혼을 살려 내려고 교회를 세우고 목사를 세우고 전도자를 세워서 인류 구원을 위한 함성을 내지르는 것입니다. 재림의 그 날까지, 나를 통해서 주님의 목소리가 많은 사람에게 들려지게 하되, 예수 십자가의 피의 사건을 말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 앞에 살아야 할 삶의 태도요, 예수 몰라 지옥 가는 영혼들에게 전해 줘야 할 목소리입니다.


성령은 지금도 목사를 통해서 우리 성도들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영혼이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고(롬8:1~2),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고 다 구원받으라고 말입니다(요6:38~40).


최상의 감사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사랑하는 성도여, 고난주일을 맞이하여 나의 죽어야 할 죄를 빼앗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쏟아 내 죗값으로 지옥에서 당할 고통을 대신 담당하신 어린양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누구 때문에 저렇게 피 흘리고 죽으셨는가, 그 십자가에 못 박혀 신음하시고 고통당하시면서 피 쏟아 죽으시는 그 예수를 바라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또다시 한 주간 살면서 하나님 말씀을 범하고 죄를 짓는다면 주님의 고난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죄 아래서 지옥 갈까 봐가 아니라, 주님 마음이 불편하면 안 되기에 죄짓지 않는 철든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마음이 가장 불편한 것은 내가 죄 아래서 지옥 가는 것입니다. 지옥의 고통을 생각해 보십시오. 불과 타는 유황불 못에서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당하는 저주와 절망의 지옥에서 여러분을 살려 내려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고의적으로 오셔서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이 은혜를 입었다면 다시는 죄를 짓지 말고, 다시는 원망하지 말고, 다시는 불순종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은혜 감사하며 피 흘려 죽으셔서 나를 구원하신 주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고, 기쁘게 해 드리고, 행복하게 해 드려야 합니다. 최상의 감사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최상의 신앙생활로 나를 위해 죽어 주신 주님 앞에 고백하는 영적생활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7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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