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아라

등록날짜 [ 2020-05-23 10:23:41 ]

로마서 8장 12~17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기도하고 응답이 없다고 감히 하나님을

원망할 정도로 겁이 없는 행동을 하는

까닭은 다 은혜의 빚이 무엇인지

몰라서입니다. 


‘주여, 내 기도의 잘못을 찾게 하시고

용서하소서’라고 해야 옳지, 어떻게

미쁘시고 의로우시고 거룩하시고 절대

약속하신 것을 실천하는 하나님 앞에 왜

기도 응답의 약속을 안 지키느냐고

원망합니까. 


성령의 인격으로 신앙생활 잘하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지거나 잡을 수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4:24)고 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존재를 절대적으로 인정하고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반드시 받으신다는 확신을 갖고 예배 드리라는 뜻입니다.


성령은 받은 자 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성령의 인격으로 사는 사람만이 자신에게 역사하신 성령을 경험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저마다 성령의 경험이 다르지만 실상은 그리스도를 아는 데 이르는,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받는 동일한 역사입니다. 성령의 은사와 성품은 곧 성령 하나님의 인격이시니, 거룩하고 신령한 인격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격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성령과 같은 인격적인 은사와 성품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인격적인 성령의 역사가 하나님 앞에 신앙생활과 믿음으로 나타나지 않는 까닭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자기를 인정하는 만큼 그 사람과 함께 일하기를 바라십니다. 성령은 당신을 성령의 일꾼으로 만들어서 성령의 일을 하는 자로 쓰려고 하십니다. 예수님도 우리가 성령과 함께 성령의 인격으로 살기를 간절히 바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12:31~32).


우리가 이 정도로 성령을 잘 모시고, 성령의 인격으로 신앙생활을 잘하라고 일러 주신 것입니다. 이는 성령을 거역해서 망하지 말라고 하시기 전에,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살아서 성령으로 큰 일꾼 되고 성령으로 인도받아서 육신의 생각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생각으로 살다가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고 하나님 나라에 가서 영원히 행복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과 육신의 요구를 버려라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8:12~13).


만약 여러분에게 성령의 인격과 성품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당신은 반드시 육신의 생각과 육신의 요구대로 살 것입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으니 성령을 보내신 목적은 몸의 행실을 제거해버리고, 성령으로 하나님의 행실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은혜에 빚진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아담 때부터 내려온 원죄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자범죄로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기에 죽어서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어 죗값을 갚아 주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해방시켜 영생과 천국을 부여하셨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은혜에 빚진 자라면 하나님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몸의 행실은 은혜의 빚진 것을 모르고, 갚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은혜 베푸신 이에게 어떻게 예배하고 찬양하고 충성하고 순종하며 그분을 경외할 것이냐’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사업 잘되게 해 주세요. 자식 잘되게 해 주세요. 건강 주세요”라며 더 달라고만 합니다. 은혜를 아무리 베풀어도 빚으로 생각하지 않고 더 주지 않는다고 생떼를 쓰는 사람이 과연 성령의 사람일까요. 그렇게 하는 것은 육신의 욕심 때문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8:44).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하셨으니 제일 먼저 제 영혼을 죽이는 욕심은 살인자라는 말입니다.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요8:44)라고 했듯, 진리가 없는 육신은 날마다 거짓된 것을 좇아갑니다. 돈, 명예, 권세, 지식이 있어야 산다지만 다 거짓된 것에 속는 것입니다. 육신은 이렇게 속아서 자기 영혼을 비참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8:13) 하는 것입니다. 내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는 성령님이 계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려고 성령을 보냈는데 말로는 인정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몸의 행실로 살기를 바라고 열망하지 않습니까.


은혜를 빚으로 알고 감사·겸손으로 살아라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어떤 종이 일만 달란트 빚을 졌습니다. 그의 몸과 처자식과 모든 소유를 다 판대도, 대대로 노예생활을 한대도 도저히 갚을 수 없겠기에 주인이 불쌍히 여겨 그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이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았다고 기뻐하며 가다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자 그에게 빚을 갚으라며 소란을 피우다 옥에 가둡니다. ‘내 주인이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해 주었으니 내 평생 무엇으로 갚아도 그 큰 은혜의 빚을 갚을 길이 없습니다’라고 자랑하고, ‘내가 얼마나 큰 빚에서 탕감받았는데, 백 데나리온 정도야 나도 없는 것으로 하겠다’라고 하는 것이 은혜받은 자의 마땅한 태도가 아닙니까. 그러나 육신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면 반드시 죽어 지옥에 가서 견딜 수 없는 영원한 고통을 당해야 하는데, 이 고통을 해결해 주시려고 예수가 죽어 주시고 지옥의 빚이 해결되고, 이 사실을 성령이 증거해서 믿고 죄 사함받았습니다. 주님이 지옥의 빚을 해결해 주신 크신 은혜 앞에 무엇을 용서할 수 없겠습니까. 아무리 내게 잘못했어도 ‘까짓것 없는 것으로 하자’라고 못하는 것은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조금만 기분 나쁘면 ‘저 사람 보기 싫어서 교회 못 나오겠어’라고 합니다. 지옥이라는 빚을, 공짜가 아니라 하나님 아들의 목숨을 지불하고 해결해 주신 크나큰 은혜 앞에 무엇을 용서할 수 없겠습니까. 구원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빚을 진 자가 은혜의 빚을 배도하고 육신의 정욕으로 무시해 버릴 때, 그 은혜받은 것은 빚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감사도 없고 기쁨도 없습니다. 큰 은혜의 빚을 지고 있으면서, 말로는 은혜받았다 하면서도 은혜받은 자다운 행위와 언어와 중심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누가 당신이 은혜받은 자라고 인정해 주겠습니까. 은혜를 빚으로 알고 빚진 자가 빚 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겸손하게 살지 못한다면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라

시각장애인이 아무리 눈을 뜨고 보려 해도 보지 못하는 것은, 보이는 사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눈이 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눈을 떠서 보는 사람에게는 모든 세계가 존재합니다. 말로는 하나님 은혜의 빚이 무엇인지 아는데, 행동에 은혜받은 자다운 태도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영적으로 보는 감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청각장애인이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해도 인간이 사는 세계에는 수많은 소리가 존재합니다. 영적세계도 자기 자신은 본 것 같고 들은 것 같지만 실상이 분명하지 못하니까 항상 육신에 치우쳐서 육신의 요구대로 삽니다. 말로 부정하지 않아도 당신에게 하나님을 향한 빚진 자의 태도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은혜를 받지 못했든지, 부정했든지 둘 중에 하나라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 곧 성령의 소리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성령의 소리가 분명히 있는데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소리는 예수 피의 공로로 구원받은 거룩한 영적 사람들에게 들려옵니다. 성령의 소리를 듣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 따라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은 육신의 요구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영혼이 죽음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 곧 성령의 소리를 듣고 자기 영혼이 성령의 소리를 따라 저 천국으로 인도받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지 마라

천지만물은 다 하나님 말씀으로 지음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자기 존재를 말씀이라는 인격으로 드러내셨고, 인간이 살아가는 법의 질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법을 지켰습니까?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은 하나님과 충돌, 도전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꼭 그렇게만 살아야 합니까” 하며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이 바로 건방진 육신의 생각입니다. 육신의 생각대로 사는 사람은 현실 속에 사는 잠시 동안의 것을 움켜쥐려고 합니다. 영의 생각대로 사는 사람들은 육신의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큰 은혜를 어떻게 갚으며 살 것인지를 생각하며 삽니다. 항상 빚진 자처럼 은혜 베푸신 이에게 겸손할 때 하나님은 그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망각한 신앙생활이 무슨 신앙생활입니까. 기도하고 왜 응답이 없느냐고 원망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내가 응답받을 만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했던가, 정욕을 가지고 구한 것은 받을 줄로 생각지도 말라고 했는데 정욕으로 구했던가, 중언부언했던가, 하나님을 겨냥하지 않고 듣지 않는 신에게 말하듯 혼자 허공에 소리쳤던가, 도대체 내가 어떤 기도를 했기에 응답받지 못했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시고 약속대로 아들까지 보내 주셔서 죽인다더니 죽여서 나를 구원하신 분이 응답하지 않으실 리 없습니다. 기도를 잘못했으면 내가 잘못했지,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잘못이 아닙니다. ‘주여, 내 기도의 잘못을 찾게 하시고 용서하소서’라고 해야 옳지, 어떻게 미쁘시고 의로우시고 거룩하시고 절대 약속하신 것을 실천하는 하나님 앞에 왜 기도 응답의 약속을 안 지키느냐고 원망합니까. 기도하고 응답이 없다고 감히 하나님을 원망할 정도로 겁이 없는 행동을 하는 까닭은 다 은혜의 빚이 무엇인지 몰라서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비록 피조물인 우리와 한 약속이었지만 그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성령께서도 예수님이 약속하신 그대로 오셨고, 성경의 모든 말씀은 약속에 의해 움직여 가고 역사합니다. 약속도 안 한 우리에게도 성령에 의해서 섭리는 이루어져 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성령님과 함께 어떤 약속의 성취를 이루며 살고 있습니까.


성령의 인도받아 주를 위해 마음껏 살라

성령의 역사는 “너는 빚진 자야. 네 평생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를 떠나서는 안 돼”라고 가르쳐 주고 감동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신령한 은혜 안에 우리를 붙들어 맵니다. 그런데 육신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 성령의 역사로 산다면 어마어마한 이적을 경험하고 살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육신이 왕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롬6:12).


육신이 왕이 되니 사람들은 다 죽을까 봐 돈 벌고, 죽을까 봐 밥 먹고, 살려고 몸부림을 치지만 결국 죽습니다. 이것이 철없는 육신의 생각입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 불만불평 없이, 피곤싫증도 없이 성령의 인도받아 참기쁨으로 충성하고 순종하는 이유는 성령이 내 인격을 장악하고 나를 이끌어 가는 주인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殿)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전 삼고 내 안에 오셨으면 내 맘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령이 내 안에서 주인으로서 자기가 필요한 대로 나를 고쳐 쓰시고 필요한 대로 사용하십니다.


만약 성령이 역사하지 않고 오지 않았다면 복음도 듣지 못했고 육신의 소욕과 요구로 하나님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께 도전하는 자로 반드시 지옥에 갈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신 것은 예수가 피 흘려서 내 죄를 해결했다는 증거요,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이 무너졌다는 증거입니다.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소식을 듣고 믿고 구원받았으니 이 큰 구원이라는, 은혜의 빚을 무엇으로 갚아야 하겠습니까. 그때부터 성령의 인도받아 충성하고 전도하고 주를 위해 마음껏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말씀도, 예수 십자가 피의 공로도, 구하라 주시마 하는 기도도, 성령이 내게 오셔서 그 은혜를 깨닫고 알게 하시는 모든 것을 전혀 모릅니다.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피로 값 주고 사서 성령께서 자기 전 삼고 내 안에 오셔서 나를 쓰고 싶은 대로 쓰시는데 내게 무슨 권한이 있겠습니까. 성령은 내 삶의 주인이요, 지식이요, 믿음이요, 육신을 이기는 힘이요, 육신의 소욕을 죽이는 능력입니다. ‘성령이여 내 안에 오셔서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육신의 생각과 소욕과 정욕을 죽이시고 성령의 소욕과 성령의 생각과 성령의 열매와 성령의 인격만 나타나셔서 나를 통해 주님만 드러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당신에게 그런 역할을 안 하신다면 내가 성령을 모셨다 할지라도 성령을 무시하고 훼방하고 거역하는 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당신에게 감동 감화할 때 거역한다면 그분은 거역을 당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이 마지막 날 심판하실 때, “제 안에서 그런 생각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성령의 생각인 줄 몰랐습니다”라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당신 안에 있는 성령의 인격을 무시하고 살았는지, 그리고 그에 따르는 심판이 반드시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신의 요구 벗어나 성령의 동역자 되라

성령으로 인도받은 자는 하나님 자녀의 영, 곧 양자(養子)의 영으로 인도받고 예수의 피로 죄 사함받아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직접 복음으로, 진리로, 예수의 피로, 성령으로 증거하십니다(롬8:16).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성령으로 직접 인도받는 거룩한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성령이 그 사람의 전권을 운영하는 주인이시니, 거듭나게 하신 아버지의 양육을 받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후사(後嗣)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 기업의 후사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사역은 하나님 아버지의 기업이니, 예수는 아버지의 기업을 이루신 인류 구속 사역의 상속자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한 하나님의 후사이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기업을 이루기 위해 영광도,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역을 위해 자기 목숨을 사용해 죽도록 충성합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 후사의 모든 사역은 성령을 받은 자만이 성령의 인도받아 성령으로하여 그 또한 인류 구속 사역의 주역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반드시 죽을 육신의 요구에서 벗어나 성령으로, 성령의 요구대로, 내 영혼의 요구대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으로 동역자가 됩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영광을 소유합시다. 

위 글은 교회신문 <67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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