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성령이 너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등록날짜 [ 2020-05-30 10:37:23 ]

요한복음 16장 7~15절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인간은 분별력이 없기에 성령이

분별력을 주시고, 

지혜가 없기에 성령이 지혜를 주시고, 

지식이 없기에 성령이 지식을 주시고,

믿음이 없기에 성령이 믿음을 주셔야

합니다. 


성령강림절 최상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려 주님을 최상으로 기쁘시게 해야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전혀 몰랐던 제자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와 삼년 반을 동고동락하면서 예수가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는 온갖 이적을 행하시는 현장에 늘 함께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자들이 예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마가복음 10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말합니다.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막10:37). 그들의 말은 ‘우리 이스라엘 백성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 시킬 메시아로 오셨으니, 로마라는 강대국을 전복시키고 이스라엘 국가를 회복해 당신이 왕이 되실 때 우리를 높은 자리에 앉게 해 주시기 원합니다’라는 뜻입니다. 그 말을 듣고 다른 제자들이 분히 여기었다고 하니, 제자들은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가르치시니까 제자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16:21~22)라고 말합니다. 예수가 죽지 않으면 우리 죄를 누가 해결하며, 예수가 삼일 만에 부활하지 않으면 우리를 죄짓게 하는 사망의 세력을 누가 멸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가 진실을 말해도 제자들이 못 알아들으니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이 세상에 함께 계실 때 아무리 자신을 설명해도 모릅니다. 제자들의 고정관념 속에는 예수가 ‘이스라엘의 국권을 회복시켜 시오니즘의 큰 영광을 만드실 분’이라고 박혀 있어 그 외에 다른 지식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너희는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나의 본질을 모르나, 내가 보혜사를 보내면 그가 너희에게 나를 증거하여 그때 나를 알게 될 것이다”라는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이 예수를 안다면 제자들처럼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예수의 상(像)을 그리겠지만, 성령이라는 보혜사가 와서 예수를 증거할 때, 각자의 지식은 몰수당하고 드디어 예수를 바로 알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지식으로 알 수 있는 분이 아니요, 인간의 이론으로 말할 수 있는 분도 아닙니다. 인간이 종교심을 가지고 믿을 수 있는 분도 아닙니다. 반드시 예수를 사실 그대로 가장 잘 알고 계신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예수를 증거해야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16~17절에 “그가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14:6)라고 했기에 진리가 진리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또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15:26)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우리가 예수 옆에서 같이 먹고 따라다니며 생활했는데, 우리만큼 예수를 잘 아는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생각했겠지만, 주님이 볼 때는 제자들은 예수를 모르고 있기에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 예수를 증거한다고 성경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는 “너희는 내가 말해도 듣지 않았지만, 성령이 나를 말하게 될 때는 듣게 될 것이기에 성령의 소리를 들어라”라는 뜻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 알 수도 믿을 수도 없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2:11)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정을 기록한, 하나님 자신을 드러낸 것이 성경입니다. 또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사정을 드러내고 그 문제를 해결한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기록하신 성령으로만 알게 돼 있고, 예수는 진리의 성령으로만 알게 돼 있으니 성령이 아니고는 절대로 예수를 알 수도, 믿을 수도 없습니다. 각자 나름대로 믿음을 가질 수 있겠으나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예수께서 요구하시고, 성령이 요구하시는 믿음은 가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말씀 들은 대로 예수를 안다면 신앙생활을 지금보다 훨씬 차원 높은 영적 수준에서 하면서 육신을 신앙생활에 전부 쏟아붓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듣기는 들었지만 성령으로가 아니라 이성(理性)으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제자들의 설교를 듣고도 제자들을 핍박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찌할꼬?” 하며 회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듣는 자는 회개하나, 이성으로 듣는 자는 거부하고 반박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하고 항구적인 섭리와 경륜 속에 있는 논리가 70~80년 사는 인간의 현실적 논리와는 전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우리에게 은사를 부어 주실 때 지혜의 은사, 지식의 은사, 성령으로 아는 만큼 따르는 믿음의 은사, 믿음 있는 만큼 예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 재현하는 능력의 은사, 하나님 말씀과 잘못된 것을 구별하는 분별의 은사가 따릅니다. 우리 인간은 분별력이 없기에 성령이 분별력을 주시고, 지혜가 없기에 성령이 지혜를 주시고, 인간은 지식이 없기에 성령이 지식을 주시고, 인간은 믿음이 없기에 성령이 믿음을 주셔야 합니다. 그러니 각자가 다 ‘예수는 이런 분이야’라고 잘못 믿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의 변호자, 예수의 가장 진실하고 확실한 증거자는 성령이시니 예수는 성령으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사모하는 목적은 예수를 아는 만큼 경험하고 가지기 위해서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고 성령이 임하신 예수

그렇다면 성령은 예수를 어떻게 알고 계실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마1:18). 요셉에게도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마1:20)고 말합니다. 세상에서는 어떻게 처녀가 아기를 낳을 수 있느냐고 의심하지만, 성령 받은 사람은 성령이 알게 하실 때 동정녀 마리아의 예수 잉태를 믿게 됩니다. 성령의 변호가 없다면, 예수가 성령으로 동정녀에게 잉태된 것을 누가 알겠습니까. 아담 이후에 모든 사람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였던 다윗까지도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미 죄 아래서 죽은 영혼이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만이 죄악 중에 수태되지 않고 성령으로 수태됐으니 수태하게 하신 성령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또 예수는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십니다(마4:1). 예수가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가졌는데, 어떻게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그 무서운 뙤약볕이 작열하는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셨을까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할 힘은 성령이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하셨기에 모든 시험도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3장에 예수가 침례를 받을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셨습니다(마3:16). 성령은 죄인에게는 역사하지 않기에,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는 의로우시니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또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마3:17)라고 합니다. 침례 요한은 예수를 보고 “온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라고 외칩니다. 선지자는 ‘온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양’,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하는 내 아들’, 성령은 ‘비둘기처럼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실 구세주’라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죄인처럼 죽을 분이신데, 그분은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성령이 증거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16:13).


여러분이 성령으로 거듭나는 순간, 성령의 사람이 되고 성령께 이끌립니다. 우리는 죄 아래서 태어나 죄 아래서 죽을 수밖에 없었으나, 예수가 피 흘려 죽으시고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 충만하게 하셔서 성령이 인도하시니,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자는 예수님과 같은 공생애를 살게 됩니다. 성령 받으면 누구에게나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데, 똑같이 예수를 증거하고 변호하는 일입니다.


제자 베드로와 요한이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이후,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갈 때 성전 미문(美門)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만났습니다. 그 앉은뱅이를 바라보면서 베드로와 요한이 “나를 보라 내가 네게 줄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할 때, 벌떡 일어나서 걸었습니다(행3:1~10). 베드로와 요한 안에 계신 성령이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서 걸으라고 말할 때 앉은뱅이가 일어나서 뛰고 걷게 된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반드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예수의 일을 하기에 성령께 이끌려야 합니다.


제가 집회를 인도할 때도 성령께서 감동하셔서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여 기도하면 불치병이 고침받고, 귀신이 떠나가는 역사가 수없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귀신을 쫓고, 병 고치고, 이적을 나타내는 일은 성령으로 예수가 하신 일을 그대로 재현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받지 못하면 무지하고 무능한 인간의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으니, 성령께 이끌리지 못한다면 어찌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에게 계속 기도하라는 이유는 반드시 기도해서 회개해야 성령이 충만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 듣고 기도해야만 성령 충만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못하면 기독교인으로서 예수의 일을 하는 데 상당한 지장이 있습니다.


예수의 형제들도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해 병 고치고 귀신 쫓으면서 자꾸 유대 교회에 반박하는 말씀을 하고 다니니 예수를 잡으러 옵니다. 예수와 같이 살았던 예수의 형제들도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한 후에야 예수를 알게 됐습니다. 우리도 예수를 이론, 지식이 아닌 성령이 가르치시고 깨닫게 함으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는 성령으로 제자들을 명하시고, 가르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 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행1:1~8). 성령이 아니고는 그의 가르침을 어떻게 알며, 그의 명령하는 바를 어떻게 들으며,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를 성령 당사자가 아니고는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성령이 임하여야 성경도 읽고 싶고, 믿어지고, 성경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성경 공부를 많이 했다고 성경대로 살지 않습니다. 성경은 학문적인 공부가 아니라 경험으로 아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도하라는 말대로 기도하니 응답이 오고,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으라고 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니 귀신이 떠나가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 받은 자 속에 나타나는 증거입니다.


성령이 충만해서 이적과 권능을 행하신 예수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권능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모두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일하신 적이 없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


예수가 아버지께로 가야만 성령이 와서 우리에게 주님이 하신 일을 하게 하고,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에도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성령으로 전한 복음을 들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예수 생애의 모든 일이 멈춘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가 예수님의 일을 하겠고 더 큰 일을 하겠다고 말씀하신 그분의 일을 성령으로 하지 않는다면 우리 시대에서 주님의 일은 끝나고 말 것입니다. 교회는 계속 성령이 충만하게 해서 예수의 역사를 이루어 내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예수가 하신 일을 우리를 통해 하기 원하시는데,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으니 얼마나 주님의 일을 방해하고 있습니까.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성령의 역사를 육신으로 말미암아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을 내 안에 가둬 놓고 성령이 내 안에서 자기 마음대로 일하시도록 나를 드린 사실이 없을 때, 하나님 앞에 가서 어떤 심판을 받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성령은 예수의 구원 사역을 다 이루시고 승천하신 다음에 내 안에 와 계시니 예수의 생애를 제일 잘 알고 예수가 하신 일을 내게서 할 수 있는 분이니, 우리가 성령을 얼마나 잘 모시고 순종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10:38).


예수는 성령으로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고, 전도해서 영혼 살리는 일을 하셨으니, 마귀에게 눌린 자를 다 해방시켰다는 말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마귀에게 눌리고 불행한 일이 항상 찾아올 때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겠습니까.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예수 복음증거도 없습니다. 제자들도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한 다음에야 비로소 예수가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것이 인류의 죄를 대신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전도하지 않았다면, 성령의 역사가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알아야 전할 수 있는데, 성령의 역사가 없는 사람은 예수에 대해 말할 만한 화제(話題)도, 사건도 없으니 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

예수는 성령으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마12:28)이라고 했습니다. 예수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 최후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를 바로 알고 믿을 때 귀신이 떠나가고 질병이 치료받고 이적이 나타나는데 우리는 왜 성령받았다면서 그런 사역을 하지 못합니까. 보혜사 성령은 예수를 변호하고 증거하러 오셨고, 예수 일을 우리도 하고 그보다 더 큰 일을 하게 하러 오셨습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얼마나 제한받고 무시당하고 소외당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땅에서 공생애 3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일을 하셨지만 교회를 세우지 않으셨고, 성령이 임한 다음에 성령께서 초대교회를 세웠습니다. 교회가 한 일도 예수께서 하신 일을 성령으로 재현한 것이었습니다. 성령으로 예수 이름을 사용해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니 사람들이 믿는 것입니다.


시종일관 성령이 진행하신 예수의 생애

예수는 성령으로 죽으시고 성령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히9:14). 피 쏟게 하신 것이 성령이시니, 십자가에서 피 흘린 사건은 성령이 가장 잘 아십니다. 예수도 성령으로 그 피를 하나님께 드리고, 성령으로 죽으셨습니다. 예수의 생애는 시종일관 성령이 진행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애도 성령으로 거듭난 다음에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까요? 우리도 성령으로 이끌려야 하고 주님과 같은 생애를 가져야 합니다. 성령으로 능력 행하고, 마귀에 눌린 자를 고치고, 성령으로 가르치고, 마지막에는 그것 때문에 핍박자에게 죽임을 당할 일이 있으면 성령으로 순교해 내 목숨을 주께 드려야 합니다.


예수가 성령으로 피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말씀은 죄 없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죄가 없으니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롬8:11)라고 했듯, 성령은 다시 그를 부활하게 했습니다. 예수가 죽으심으로 내 죄가 없어지고, 부활하심으로 내가 예수와 함께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예수를 아는 자만이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있습니다(고전12:3). 누가 일러 줘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예수를 알고 경험하고 나의 주라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결국 성령이 예수를 변호하는 목적은 우리 주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성령강림절은 모든 절기 중 최상의 절기로 지켜야

우리가 성령강림절을 모든 절기 중 최상의 절기로 지키는 이유는 성령이 아니면 성탄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예수께서 피 흘려 죽으신 것도 성령이 성경에 기록하지 않았으면 알 수 없고, 전해 주는 자가 없으면 들을 수도 없습니다. 오늘도 성령에 이끌려서 말씀을 듣고, 지금도 담임목사는 성령께서 감동하시는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모든 일에 시종일관 성령이 역사하시니, 어떻게 성령께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성령이 오셨기에 예수를 알고 믿고 회개하고 구원받았으니, 이제 성령을 잘 모시고 예수를 나타내고 전해야 합니다. 최상의 감사를 표현해 예수 소식을 전해 주신 성령께 영광을 돌리고 예배드려 주님을 최상으로 기쁘시게 하는 성령강림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7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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