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1-08-17 10:54:29 ]
마태복음 3장 1~12절
그 때에 침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니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침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나는 죽어도 좋으니 너만은 살라
예수의 “회개하라”하신 목소리는
죄를 내놓고 살라는 사랑의 당부
한 번 회개했다면 죄짓던 과거로
돌아가지 말고 끝까지 죄 이겨야
하나님은 생명이십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하나님 자신이 의로우시고 선하시고 거룩하시기에 영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본질이신 의로우심과 선하심과 거룩하심에 도전하거나 초월하려는 것은 죄로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질과 달리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하신 실과를 먹었음으로 정녕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창2:16~19).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6~19).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 어떠한 생각이나 행위는 죄악이요, 곧 죽음인 것입니다. 이처럼 죄악의 대가는 하나님을 떠나 육으로는 환난과 저주요, 영적으로는 사망과 영원한 지옥의 고통으로 나타납니다.
환난은, 하나님의 관심 안에 있는 자들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돌아오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탕자는 아버지를 떠나서 행복할 줄 알았지만 아버지를 떠나 비참한 처지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를 떠난 것이 자신에게 저주요 환난임을 깨닫고 아버지께 돌아옵니다(눅15:11~32). 우리가 수많은 환난과 고통을 겪을 때도 하나님 말씀을 떠난 죄를 깨닫고 철저히 회개해 돌아오면 하나님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망과 지옥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반역한 자들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재앙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처럼 지옥에 간 후에는 아무리 몸부림치고 간구해도 소용없습니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과 나를 영원히 가로막는 재앙 중의 재앙인 것입니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눅16:23~26).
하나님께 돌아올 축복의 기회, 회개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든 자신의 육신이 살고 있는 짧은 시간이 하나님을 떠나 죄 아래서 살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바다의 고기 배 속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육체가 고기 배 속에서 소화되어 사라지기 직전에 하나님께 불순종한 범죄를 부르짖어 회개했습니다. 살고 싶어서 회개한 것입니다(욘2:1~10). 하나님께서 요나의 부르짖어 회개함을 들으신 후 요나는 다시 살게 되었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니느웨를 회개시켜 살려 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만이 자신이 죄와 사망에서 살고 싶은, 포기할 수 없는 절대적 의지의 실천인 것입니다.
본문에는 침례 요한의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었으니 곧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습니다.
“그 때에 침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마3:1~3).
그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사람들이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침례를 받으며 죄악의 저주에서 살기 위한 절실함을 침례라고 하는 회개로 나타냈습니다.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니”(마3:5~6).
그러나 그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침례 베푸는 현장에 오는 것을 보고 침례 요한은 그들에게 외쳤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나오라!”
애절하게 회개를 요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택하신 선민이며 율법을 착실하게 지켰으니 회개할 죄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침례 요한은 그들의 생각을 알고 “하나님께서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말하며 회개하지 않는 그들을 무섭게 책망했습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침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3:7~9).
이처럼 회개치 못하는 인간은 살려 주려고 애타하시며 회개를 외치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얼마나 불행한 사람입니까.
침례 요한은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고 강력하게 회개를 촉구했던 것입니다(마3:10). 그리고 자신은 회개케 하는 침례를 물로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실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마3:11).
또 침례 요한은 “내가 소개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소개하며 예수는 인류의 구원과 심판의 주인이시라고 가르쳤습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3:12).
회개해 영육 간에 참 자유 얻길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의의 기준은 하나님의 의로우시고 선하시고 거룩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말씀대로 살고 있는지 자신을 살피고 있습니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같이 ‘내가 예수 믿은 지가 언제인데 구원이 있으면 내가 받지 않겠느냐?’라고 임의로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지키지 못하며 사는 죄는 왜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죄로부터 오는 저주와 사망과 지옥의 형벌을 해결하여 영생과 천국을 허락하시려 공생애 첫 음성에도 회개하는 자에게 천국을 주겠다고 애절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마4:17).
그러므로 회개하라 하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하시려는 것이요, 우리 자신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는 것은 죄악에서 벗어나 저 천국에서 영원히 살려고 하는 본능적인 생존 의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육체가 끝나기 전에 급하게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우리에게 닥쳐온 환난과 재앙을 당장에 진압하는 유일한 비결은 하나님 앞에 요나와 같이 자신의 죄악을 솔직하게 내어놓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천지가 힘을 합해도 할 수 없는 죄로부터 오는 환난과 저주와 사망과 지옥의 사건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공로 앞에서 당장에 소멸시키는 최고의 권세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회개하는 자들을 위해 피 흘려 죽으셨고 그 피의 속죄는 회개하는 자들의 영원한 생명이 되셨으니 죄악된 세상으로부터 저 천국 하나님의 나라에 능히 들어가 영원히 살 수 있는 유일무이하고 아주 좁은 생명의 길입니다. 회개하라 하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선언이요, 회개하는 자에게는 새 생명의 선포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수 가족이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죄를 회개합시다. 죄 때문에 오는 환난과 질병과 수많은 고통을 회개로 지금 당장에 진압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저주의 나무에서 흘리신 속죄의 피가 영원한 내 생명이 되게 합시다. 예수의 피는 회개하는 자의 몫입니다. 회개하여 영육 간에 자유합시다(마4:17). 그리고 영원히 고통 없는 천국을 소유합시다. 할렐루야!
위 글은 교회신문 <71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