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2-02-28 13:02:06 ]
구원의 주께 영광 돌리기 위해
나의 복된 영혼의 때를 위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합시다
나의 몸을 산 제사로 드려서
주님께 진실하게 예배합시다
내 삶이 예배가 되게 합시다
로마서 12장 1~2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자신의 형상의 모양을 따라 인간도 지으셨으니 인간은 하나님의 인격으로 나타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육신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여 축복으로 주신 천지 만물로 살아가고,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으로 영원히 살아가는 절대적인 생명의 법을 주신 것입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4:3~4).
그러므로 인류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영육이 생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인격과 같은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으니 곧 지성과 감성과 의지로 살아가도록 지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음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지성적 기능입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는 지성이 작용하는 순간부터 은혜 베푸신 하나님을 향한 감성의 기능으로 감사와 찬양과 예배를 통하여 은혜 베푸신 하나님께 충성도, 섬김도, 공경과 경외함도 표출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감성으로 나타난 행동은 바로 감성과 함께 나타나는 의지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인격적인 감사 표현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생활은 은혜 베푸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거룩한 행동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은혜 베푸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1:18~23).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이것은 전인격적인 타락이요, 곧 죽음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6~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7~19).
인간은 마귀의 궤계에 의해 배은망덕하며 영원히 죽을죄를 범하고 참혹한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피치 못할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십자가로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피 흘려 죽게 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원히 살게 하려 하심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우리가 지금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배은망덕하여 죄 아래서 참혹한 지옥 형벌을 받을 자신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았다고 하는 확실하고도 분명한 신앙고백의 증거인 것입니다. 누군가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예배가 예배 되지 못하여 불충하다면 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사실이 거의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 예배하는 것은 인격적으로 너무도 확실한 감사의 표현이요, 인격적으로 너무도 당연한 행위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저주의 나무 십자가에 못 박아 자신의 생명의 피를 쏟아 하나님 아버지께 속죄의 제물로 드림으로 나를 죄와 사망과 지옥의 처절한 형벌에서 구원하여 주셨다고 하는 최고의 거룩한 고백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자라면 당연히 자기 자신을 예배의 제물 되게 하여 감사로 드림이 마땅한 것입니다(롬12:1~2).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4:23~24).
이와 같이 마땅한 예배를 마땅하게 실천하지 않는 외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는 그저 종교적인 행위일 뿐입니다.
삶 전체가 예배 되게 하라는 주님 요구
구약시대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생명으로 속죄의 은혜를 받은 사실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창조자 하나님의 부르심에 절대 순종하였습니다. 또한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던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번제로 드려서 절대 순종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곧 번제의 제사를 자신의 독자 이삭의 목숨을 초월할 만큼 크게 여겼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창22:2~4).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는 속죄의 제물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정하시고 독생자의 절규를 외면하면서까지 실천하셨으니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곧 예배가 독생자를 초월할 만큼 얼마나 큰 것인가 생각해 보십시오.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마26:42).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히9:11~1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나를 구원하신 예배의 요구는 구원의 주님께 기도와 말씀의 순종과 충성과 전도와 순교의 제물로 자신의 몸을 다 드려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사도들이 그랬고 초대 교회가 구원의 주님 앞에 모든 제물도 목숨도 예배의 제물로 아낌없이 다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진정한 예배의 요구는 구원받은 자들의 삶 전체가 예배가 되게 하라는 요구입니다(롬12:1).
구원의 주님께 드리는 제사와 예배는 독자보다 크고 경이롭고 보배로운 것이며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애착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초월하여 구원의 주님께만 자신을 바쳐 드리는 삶이 곧 예배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자라면 자신의 생애에서 구원의 주님께 드려지는 예배보다 큰 것은 천지간에 하나도 없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예수가족이여, 당신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로 확실하게 구원받은 자입니까?
구원받은 자로서 주님이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셔서 나를 구원하셨듯이 나도 나의 모든 것인 목숨을 다 주께 드려 구원의 주님을 기쁘시게 예배하고 있습니까?
구약시대에는 비록 짐승의 피로 제사할지라도 제사의 실패자는 제사장이라도 현장에서 죽음을 면치 못했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예배하는 자가 자신의 평생에 예배를 실패한다면 그는 결단코 절망적인 최후를 맞이할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합시다. 나의 몸을 산 제사로 드려 예배합시다. 내 평생의 삶이 예배가 되게 합시다.
나의 영혼의 때를 위하여, 오직 구원의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말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73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