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8-06-05 22:42:11 ]
영적생활은 마귀와의 싸움
‘적’을 과소평가한다면
싸워 보지도 못하고 질 수밖에
성경은 아담 때부터 시종일관
‘마귀’역사 언급하고 있는 만큼
‘적’의 정체를 제대로 알아야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어
모르는 만큼 진다
마태복음 25장에 달란트 비유가 나오는데,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주인에게 한 달란트를 가져옵니다. 자기는 분명히 옳고 확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인 앞에 와서 너무도 당당하게 말합니다.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이 준 한 달란트를 가져왔습니다. 내가 잘 감춰 두었다가 절대 손실시키지 않고 가져왔습니다. 당신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에서 모으시는 능력 있는 분이기 때문에 나 같은 것이 장사쯤 해서 남긴다는 것이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이 말을 바꿔 말하면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자들은 주인의 능력과 주인의 힘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모르고 그들이 노력해서 벌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는 주인의 능력을 인정했기에 그대로 두었다는 말입니다. 상당히 주인의 능력을 인정하고 건설적인 생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게을러서 장사하지 않고 이윤을 남기지 못한 것을 타당하게 보이도록 교묘하게 가장한 논리요 변명에 불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은 단호하게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불법자인 줄 알았더냐. 당장에 바깥 어두운 곳에 내쫓아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게 하라”라며 강력하게 책망합니다(마25:26~30).
결국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슬피 울며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몰라서 그랬다고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모르는 만큼 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말은 “알아야 이긴다”는 말이기도 합니다(롬10:17).
우리가 싸울 대상
마귀란 놈은 보통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흉측한 뿔이 달려 있고, 어두운 골목을 가만히 지키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그런 녀석이 아닙니다. 광명의 천사같이(고후11:14), 양의 가죽을 쓴 이리같이(마7:15) 우리 생각에 접근하고 환경에 접근해서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놈입니다. 또 세상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생각을 가로막아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놓는 교활하고 악한 자입니다. 성경을 보면 마귀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신앙생활 하지 못하도록 앞길을 가로막습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배반하게 하고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이 마귀의 목적입니다. 마귀와 대치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기독교인들이 긴장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너희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엡6:10)라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가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지려면 우선 적을 알아야 합니다. 나 혼자 아무리 강해도 적을 모르면 소용없습니다. 강건해진다는 것은 마귀가 어떻게 역사하는지, 어떻게 나의 믿음을 타락시키는지, 어떻게 내 신앙생활을 방해하는지, 어떻게 영적생활을 못하게 가로막는지 아주 철저하게 알고 이긴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마귀역사 자체를 취급하지 않으려는 것도 마귀역사에 놀아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은 에덴동산 때부터 강력하게 마귀역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인간을 죽인 자가 바로 마귀입니다. 끝까지 인간을 죄짓게 해서 망하게 할 작자도 마귀입니다.
성경이 이처럼 강력하게 마귀를 가르치고 있는데도 믿는 사람들조차 마귀역사를 과소평가하려고 합니다. 마귀가 눈에 보이지 않아서인지 마귀역사를 대적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집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혈과 육의 싸움을 이겨야 그다음 공중의 정사와 권세를 잡은 마귀와의 싸움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혈과 육의 문제를 가지고 아직까지 싸울 정도라면 그다음 싸움이 있다는 것은 아예 모르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과의 싸움도 못 이기니 어떻게 다음 싸움을 하겠습니까? 마귀의 싸움은 “너, 싸우자” 이렇게 멱살 잡고 힘으로 싸움을 걸어오지 않습니다. 생각 속에서 옳은 것처럼 여기도록 만들어 스스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망하게 만듭니다.
영적생활에서 적은 무조건 우리를 죽이려고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무조건 영적생활을 못하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놓으려 합니다. 마귀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망했듯이 우리도 그와 같이 망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한시라도 경계를 늦출 수 없습니다. 주님은 깨어 근신하라고 하셨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마귀는 이 세상 안에 있는 모든 환경과 우리 육신의 소욕, 정욕까지 총동원해서 우리를 영원히 멸망할 자로 만들기 위해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또 택한 자라도 미혹할 수만 있으면 미혹하려고 찾고 있습니다. 마귀역사는 지구 안에 있는 모든 환경을 총동원하고 우리 육신의 소욕까지 미혹하고 유혹해 가면서 우리를 죄의 인간, 저주의 인간으로 변질시켜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인간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일에는 마귀가 훨씬 더 지혜 있고 능력 있고 권세 있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우리를 장악하고 지배하려고 하는데 우리는 너무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미워할 것 다 미워하고, 성질부릴 것 다 부리고, 욕할 것 다 하고, 싸울 것 다 싸우고, 할 말 다 하면서 교회만 형식적으로 다니고 있다면 너무 비참하지 않습니까?
영적 전투에서 승리라는 말은 자기를 보호하는 일에 성공했다는 말입니다. 그저 운동 경기처럼 져도 그만 이겨도 그만이 아닙니다. 지면 반드시 영적인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대가는 우리가 감당할 만큼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 흘리기까지 철저하게 싸우되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7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