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8-09-27 13:38:29 ]
문제가 있을 땐 뜨겁게 기도하지만
해결되면 열정 가라앉는 경우 많아
신앙에 무사안일과 나태하게 만드는
계략 속지 말고 항상 긴장감 가져야
신앙생활 하기 피곤하고 싫증 난다면
덫과 그물에 걸려 있다는 사실 알아야
무사안일의 약점
교회 가지 말라고 남편이 핍박을 하고 때리기까지 하면서 신앙생활을 반대하지만, 아내는 눈이 시퍼렇게 멍이 든 채로라도 교회에 옵니다. 교회에 와서 “주여!” 하고 절박하고 간절하게 울며 기도합니다. ‘내가 여기서 지면 큰일 난다. 나와 내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며 어떻든 교회에서 밤낮으로 기도합니다. 그렇게 기어이 이겨서 핍박하던 남편까지 교회에 오게 되면 “할렐루야!” 하고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신앙생활의 열정이 푹 가라앉습니다. 승리의 성취감이 더 깊은 패배로 무너지고 맙니다. 자발적인 사모함과 영적인 사모함이 모두 무너집니다. 그때부터 교회에 와도 예배 시간에 그냥 졸기만 합니다. 점점 무사안일과 싫증에 사로잡혀서 예배에 빠지는 것도 큰 문제로 여기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어떻게 그렇게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나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신앙의 경력만 남을 뿐입니다.
밖에서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것이 없어지니까 자기 속에서 악한 것이 역사한 것입니다. 우리는 밖에서 오는 싸움에서 이길 여유도 있어야 하고, 안에서 오는 자기와의 싸움에서도 이길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마귀역사는 그 사람을 넘어뜨리려고 핍박으로 시작하여 그것이 실패하면 바로 안도감을 이용하여 무사안일의 태세로 몰고 가서 나태해지게 합니다. 그렇게 붙들리면 이기기가 훨씬 더 힘듭니다. 마귀역사는 밖에서 오는 큰 싸움에서 이긴 자라 할지라도 평안할 때에 자기 안에서 나오는 무사안일과 싫증으로 스스로를 몰락시켜서 그 사람을 점점 믿음에서 떨어지게 만듭니다.
사람은 항상 어느 정도 긴장감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 전쟁에서도 이 긴장감을 놓치면 적에게 당하고 맙니다. 마귀역사가 눈에 보이게 극에 달할 때는 신앙생활의 긴장감도 비례하여 넘칩니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되었다 싶으면 그때부터는 안도감이 생기고 긴장을 늦추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장해제를 당하는 것입니다.
나태하고 게으른 신앙생활의 타성을 팍 깨뜨려 버리고 거기서 나와 새 생명으로 약동해야 합니다. 어떻든 나태하게 만들고, 신앙생활의 경계심을 무너지게 만드는 마귀의 정체를 발견해야 합니다. 나를 죽이려고 하는 자에게 나를 죽이라고 순순히 내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싸움은 피하든지 싸우든지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피곤과 싫증의 약점
권투 경기를 할 때 보십시오. 상대 선수를 많이 때린 사람은 때렸다는 것 때문에 에너지가 많이 소모됩니다. 주먹으로 한 번 내두를 때 그냥 뻗는 것이 아닙니다. 온몸의 힘을 주먹 끝에 모아서 때리는 것이기 때문에 한 번 뻗을 때마다 굉장한 힘이 들어갑니다.
그러니 때리는 사람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맞는 사람보다 때리는 사람이 훨씬 에너지 소모가 큽니다. 맞는 사람은 한번 맞으면 그 충격으로 휘청거리며 나가떨어지지만 때리는 사람도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펄펄 기운이 넘치지 않습니까? 이것은 힘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상대를 이겼다는 승리감 때문에 더 힘이 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에 지면 피곤하고, 이기면 피곤하지 않습니다. 내가 피곤하고 싫증 날 때, ‘아하, 내가 피곤한 것을 보니 내가 신앙생활에 지금 지고 있구나! 내가 지금 싫증 나는 것을 보니 내가 지금 신앙생활에 지고 있구나!’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며 큰일로 여기고 빨리 이겨야 합니다.
교회에서 처음 직분 맡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잘해 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출발합니다. 그런데 직분을 맡아서 진행하다가 조금 속상한 일이 생기고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그만큼 좌절이 오게 됩니다. 그때부터 ‘아, 참 못하겠다. 어차피 직분을 맡았으니까 그냥 올해만 하고 내년부터 하지 말아야지’라고 마음먹습니다. 그 직분을 아주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렇게 한 해가 그냥 지나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좌절과 싫증에서 나를 일으켜 세울 영적인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 하기가 피곤하고 싫증이 난다면 그 사람은 벌써 어떤 덫에 걸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피곤이라는 덫에 잡혀 있고, 싫증이라는 그물에 이미 걸려 있습니다. 과다한 육체노동 때문에 피곤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피곤한 사람에게 만약 신앙생활이 아닌 다른 일을 하라고 하면 피곤을 모릅니다. 그 사람에게 신앙생활은 매사가 힘들지만, 육신의 쾌락을 좇는 일에는 언제 피곤했냐는 듯이 의욕이 넘칩니다. 우리는 세상 쾌락을 좇는 일에는 피곤할지라도 영적인 것만은 의욕이 넘쳐야 하는데 오히려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영적으로 피곤한 이유는 한마디로 싸움에서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기 싫은데 직분에 얽매여서 기관장이기 때문에, 구역장이기 때문에, 지역장이기 때문에, 찬양대원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끌려가서 해야 된다면 이보다 더 힘든 일은 없습니다. 당신은 어느 덫에 얽매이고 붙들렸습니까? 얼른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덫을 발견하고 이겨야 신앙생활이 피곤치 않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그것을 자연스러운 상황으로 여기며, ‘오래 했기 때문에 싫증 날 때도 되었지’ 하며 자기 자신을 변명하고 위로합니다.
어떠한 이유로든 주를 향한 열심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성령이 충만하여 하고 싶은 마음이 불타서 하는 주의 일은 아무리 해도 피곤치 않고 싫증 나지 않습니다.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고, 하면 할수록 신이 나고, 하면 할수록 힘이 불끈불끈 솟습니다. 절대 피곤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피곤과 싫증을 이겨 가장 소중한 신앙생활에 성공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9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