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8-12-06 19:24:31 ]
흰돌산수양관 겨울·여름 성회 때
‘다른 사람은 전부 다 은혜받는데
나는 성회에 안 가고 뭘 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안 든다면 심각한 문제
‘어려우니 십일조 이달만 하지 말자’
항상 다음에 하겠다고 뒤로 미루는
육신의 소욕에 점령당하지 말아야
성령의 가치 있는 것을 택하라
마귀역사는 가치 없는 일을 가치 있는 일로 생각하게 하고, 가져도 무익한 것을 대단하다고 여기게 만듭니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마귀가 예수를 시험하며 말합니다.
“예수야, 네가 40일 동안 주리지 않았느냐? 얼마나 배가 고프냐? 이 돌들을 명해서 떡이 되게 해라. 네가 그 떡을 먹는 걸 수많은 사람이 보면 ‘이야, 돌을 명하니 떡이 되네.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구나!’라고 하지 않겠느냐? 네 배고픔도 해결되니 일거양득이 아니겠느냐?”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살아야 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떡의 가치보다 하나님 말씀이 더 크다.”
예수께서는 40일 굶주린 육체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영적인 것이 더 다급하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만큼 영적생활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다급함을 느껴야 합니다. 이것을 경험하고 느껴야 영적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안 느껴지면 영적생활을 못 합니다.
수원흰돌산수양관에서 겨울과 여름 두 차례에 거쳐 성회를 진행할 때 보면, 다른 사람들은 전부 다 성회에 참가해서 은혜받는데, 두 다리 쭉 뻗고 집에서 쉬면서도 성회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루라도 시간을 빼서 참가할 수 있으면서도 참가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은혜받는데 나는 뭘 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없습니다. 이처럼 내 영혼에 대해 아무런 감각이 없다면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나의 못된 행동, 불의한 행동을 이겨야 하는데, 나 자신을 이기기가 제일 힘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치의 차이를 알면 분명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내 육신의 생각과 육신의 소욕이 가치가 있느냐, 성령의 역사가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을 분명히 안다면 누구든지 육신의 소욕을 포기하고 성령의 역사를 가지기를 원할 것입니다. 육신의 소욕과 육신의 생각으로 나 자신을 망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가치 기준을 분명히 해서 성령으로 살려고 몸부림치며, 성령으로 승리하고 성령으로 성공해야 합니다.
항상 주님의 일을 일선에 두라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귀한 일, 그리고 영원히 실패하지 않는 일, 아무리 투자하고 또 투자해도 투자가치가 30배, 60배, 100배로 남는 일은 예수 믿는 일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절대적으로 잘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신앙생활의 구체적인 목적을 내 삶에 어떻게 관철시키는가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소욕은 어떻게든 신앙생활 하는 일에 반대합니다. 십일조에 대해 육신의 소욕이 어떻게 점령해 들어오는지 봅시다.
‘아, 십일조 이번 달만 하지 말자. 이달은 어려우니까 다음 달에 한 번에 하지 뭐.’
다음 달에 십일조를 한다는 타당한 논리가 있기 때문에 양심에 하나도 걸리지 않습니다. 다음 달에 한다는데 왜 양심에 걸리겠습니까? 다음 달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두 달 것을 한꺼번에 내려니 더 힘듭니다.
‘아이고, 이거 몇 달 있다가 형편 좋아지면 한꺼번에 내 버리자.’
한 번에 내자고 하니 무엇 때문에 양심에 걸리겠습니까? 십일조를 안 내는 것이 아니라 어느 때인가는 낼 거라고 생각하니까 양심에 안 걸립니다. 자기가 낼 것이라는 마음을 갖기 때문에 양심에 떳떳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 달 십일조를 못 내게 방해한 자가 다음 달도 못 내게 합니다. 그다음 달도 십일조를 못 내도록 경제적 조건이 차츰 만들어집니다. 결국은 나중에 한 번에 내겠다고 한 것을 모조리 떼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마귀가 그렇게 경제적 조건을 만들어 놓으니, 결국 십일조를 못 내고 맙니다. 십일조 못 내도록 마귀역사가 경제적 조건을 막아 놓기 때문에 경제적 손해도 엄청납니다.
우리는 항상 다음에 하겠다고 하면서 뒤로 미루는 육신의 생각에 점령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육신의 소욕입니다. 우리는 아예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 뜻에서 벗어날 가망성이 큰 위험한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항상 신앙생활을 가장 우선해야 합니다. 직장생활 하는 것도, 옷을 입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가정을 꾸민 것도,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된 것도, 자녀를 키우는 것도 다 영적생활의 승리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벌써 내 개인의 일은 이선으로 물러납니다. 주님의 일이 일선입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못하면 주님 일은 이선, 삼선으로 물러나고 내 일을 우선합니다. 성령이 충만하다는 말은 성령의 권위를 절대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이 성령이 충만하니까 목숨도 이선, 삼선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복음 전도가 일선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정생활도 다 때려치우고 신앙생활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생활을 수고하며 땀 흘리며 하되, 그 수고를 하는 모든 목적이 주님 일을 일선에 두려는 데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항상 신앙생활을 제일선상에서 끄집어내어 뒤로 몰아넣습니다. 마귀역사는 언제나 “신앙생활은 저 뒤에 놔라. 네 육이 사는 것이 먼저다”라면서 항상 순서를 바꿔 놓습니다. 신앙생활이 제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보면 벌써 육의 생활이 훨씬 앞에 가 있습니다. 그러면 삶의 우선순위에서 저 뒤에 가 있던 신앙생활을 다시 앞에 갖다 놓습니다. 조금 지나 보면 또 신앙생활은 뒤에 가 있습니다. 이것을 한두 번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두움과 마귀역사에 점령당하지 말고, 이용하는 세상과 환경에 점령당하지 말고, 신앙생활·영적생활에 승리자가 되어 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60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