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8-12-27 02:25:25 ]
영적 침체인지 스스로 묻고 진단하라
사람들은 영적인 침체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자신이 신앙생활 잘해야 하고 하나님 나라에 가서 영광스러운 영혼의 때를 맞이해야 한다는 지식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목표를 이루어 낼 만큼 행동하며 신앙생활 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특별한 이유도 없고 그냥 살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신앙생활을 다시 한번 정리해 봐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며 영적인 침체에 빠지는 것은 우리 인생에 매우 중대한 사건입니다. 영적 침체는 감정적인 희로애락으로 느껴지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 말씀에 강력하게 붙들리지 못해서 세상과 육신의 소욕과 환경을 이겨 낼 충분한 능력이 없는 것이 영적 침체입니다.
영적 침체 속에 좌절되면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처럼 말씀의 씨가 사라져 갑니다(마 13:22). 마태복음 25장에 신랑을 기다리던 열 처녀가 졸며 잠든 이유는 신랑에 대한 사모함 이 떨어진 만큼 침체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나의 영적인 침체를 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영적생활을 얼마나 걱정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영적생활 때문에 스스로 고민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 뜻대로 살고 싶은데 왜 하나님 밖으로 비켜 나가려 하는가? 나는 주님이 원하시는 분량대로 영적으로 깊이깊이 들어가고 싶은데 육신의 소욕은 왜 자꾸 나를 방해하는가?’ 하며 이것을 뜨겁게 고민하며 통곡해 보았습니까?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고 자신을 진단해 보십시오.
‘너는 어쩌자고 신앙생활을 이 정도밖에 못 하느냐?’
‘너는 어쩌자고 기도생활을 하지 않느냐?’
‘너는 어쩌자고 이렇게 세상에 붙들려 얽매여 있느냐?’
‘너는 무엇에 붙들려 있기에 신앙생활에 전력을 다하지 못하느냐?’
‘너는 도대체 어떤 존재냐?’
‘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냐?’
‘너는 네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이냐?’
자기의 영적인 일에 이 정도도 관심이 없다면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이 무엇인지 분별이 안 되는 사람입니다. 매사에 나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서 “너는 지금 뭐 하고 있니? 교회에서는 저녁마다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회가 열리는데 너는 지금 뭐 하고 있니?”라고 자신을 질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망하도록 자신을 내버려 두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영적 침체를 절대 용납하지 마라
부부가 서로 싸우다가도 남편이 스스로에게 ‘너 지금 뭐 하고 있냐?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심같이 하라고 했는데 너는 지금 아내와 싸우고 있니?’라고 물어야 합니다(엡5:25). 아내도 ‘너는 지금 뭐 하고 있냐? 범사에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이 하라고 했는데 남편에게 뭐 하는 짓이냐?’ 하며 스스로를 야단쳐야 합니다(엡5:24). 이렇게 나 자신을 나무랄 수 있는 또 하나의 내가 항상 있어야 합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삶은 어차피 그 영혼이 버려진 삶입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이 삶 속에서 하나님과 관계가 막혀 잘못되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잘못에 대한 대가를 지금 당장 묻지 않으십니다. 계속 참으십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죄를 깨닫고도 회개치 않고 무관심하게 내던지고 잊어버린다면 큰일입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그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그 단계까지 오면 어디서 잘못했는지, 어디서 막혔는지 모르고, 어디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어서 그런 결과가 왔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시작부터 그런 저주의 매듭을 만들지 말고, 그 매듭을 빨리 풀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돌아보며 ‘내가 예전에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때 목사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마다 “아멘” 했는데 왜 이제는 그렇지 않나? 왜 그런 사모함이 없나? 큰일 났구나!’ 하는 각성을 하고 자기가 영적으로 큰 손해를 입고 있다는 것을 알고 뛰쳐나와야 합니다.
‘내가 주일마다 교회는 오는데, 그전 같지 않고 세상 사람 다 되었구나. 밖에서 살아 보니까 성질나면 화내고, 하고 싶은 말은 다 해 버리고, 죄지을 짓 다 하고 있구나! 내가 교회 와서 뭐 하나? 그런데 나는 이런 나를 놓고 가슴 치며 회개하지도 않으니 지금 상당히 심각한 마비 상태에 있구나!’ 하고 나 자신이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다는 자기 진단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래 교회 다닌 사람은 예배를 빠진다는 것이 스스로 용납이 안 됩니다. 마귀는 그런 사람이 교회에 열심히 빠지지 않고 다니게 놔둡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속은 자기가 마음대로 쓰려고 합니다. 겉은 교회에 가 있어도 그 사람의 마음은 마귀가 쓰겠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교회에 와서도 “내가 오래 다녔는데 왜 대접을 안 해 주고, 나를 몰라 주냐? 우리 교회는 오래 다닌 내가 제일 잘 안다” 하면서 자기를 드러내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것은 참으로 가당치 않고 주제넘은 짓일 뿐입니다.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이제 육신의 소욕대로 하는 것으로 전락해 가고 있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듯이 비참할 만큼 타락했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가 될수록 깨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마24:42). 그런데 신기한 것은 오래 믿은 사람들일수록 기도를 안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적생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모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항상 신앙생활의 절정에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차츰차츰 내리막길로 몰아넣습니다. 우리는 내 신앙생활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영적 침체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자신이 영적으로 침체되는 것을 용납하고 방관하는 버릇을 절대 용납하지 마십시오. 현재 신앙생활이 항상 절정에 있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60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