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영적 생활1·46] 예수의 피로 얻은 구원의 가치

등록날짜 [ 2019-06-03 13:21:53 ]

후퇴하지 말아야 하는 신앙생활
과거 신앙생활을 돌아보면 ‘그때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며 아쉬울 때가 참 많습니다.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는 조금이라도 잘못한 신앙생활을 스스로 아쉬워하고 못 견뎌 하는 것입니다.


과거를 돌아보고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만이 앞으로 같은 일을 당할 때, 과거보다 훨씬 더 잘해 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지난날에 잘못한 것을 알지 못하고, 아쉬움도 전혀 없다면 그 사람은 더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저도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마음속으로 ‘아이쿠! 잘못했구나!’라는 마음이 절실하게 깨달아지면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아, 뭐 그런 것도 잘못이었어?’ 이런 정도로 가볍게 깨달으면 또다시 그 잘못을 저지르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의 마지노선이 어디인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내 영의 소원을 위해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다가도 어느 순간 육신의 요구를 좇아 신앙이 침체될 때가 많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그 자리에서 박차고 올라갈 능력이 없기 때문에 점점 더 가라앉습니다. 결국 영적생활이 다시 올라오기 어려운 마지막 선상까지 가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마지막까지 내려가면 ‘어차피 다 그렇게 사는 거지’ 하며 포기해 버립니다. 이런 상태는 신앙의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정신 차려서 성령으로 충만한 신앙생활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말아야 합니다. 한번 내려오기 시작하면 올라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기도하는 것은 더 낮은 신앙생활의 상태로 내려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영적 상태가 하강하는 것을 느낄 때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서 다시 올라갈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는 그만큼 내 영적생활에 생명을 주는 최고의 원천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 앞에 책망받을 일을 많이 하고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면 굉장히 후회할 것입니다. 그때는 후회해도, 아파해도, 괴로워해도 소용없습니다. 마지막 인생이 끝나고 영적 세계에 돌입했을 때 나의 모습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언젠가 반드시 내가 주님 앞에 서야 한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하루하루 영적으로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그 날에 행복한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죄를 분별하고 막아 주는 여과 장치
교회 건축 공사가 한창일 때 공사장을 한 바퀴 쭉 돌아보다가 현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바닥이 시멘트 같은 것으로 질퍽질퍽합니다. 제가 신은 구두에 그것이 묻어 나중에 닦으려고 했더니 잘 안 닦여 한참 애를 먹었습니다. 만약에 신발에 묻는 것이 안 닦아지는 줄 알았으면 구두를 신고 들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모르면 돌이킬 수 없는 난감한 일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을 죄, 멸망할 죄를 아들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용서받고 신앙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이겨 주님 앞에 어엿이 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죄는 여과 없이 나를 계속 침공해 들어옵니다. 무언가 죄지을 기미가 느껴지면 ‘내가 저것을 받아들일 것이냐, 안 받아들일 것이냐’ 고민하며 신중히 판단해서 마음속에서부터 죄를 걸러 내야 합니다. 만약에 이 죄가 여과 없이 생각으로 들어오면 내 안에서 병이 되거나 저주가 되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죄가 침투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 주는 여과 장치가 있어야 하고, 죄를 감지할 수 있는 감지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장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지금 지은 그 죄가 우리 속에 들어와서 무슨 일을 하는가를 짐작조차 못합니다. 알게 모르게 온갖 못된 죄를 다 지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는 것입니다.


죄는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죄를 해결할 길은 예수의 피밖에 없습니다.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흘린 예수의 피는 수돗물을 틀면 나오듯 쉽게 흘린 피가 아닙니다.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내리듯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고의적으로 육신을 입고 와서 십자가라는 죄의 형틀을 지고 우리를 위해 잔인하게 죽어 주시고 흘리신 보배로운 피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죄는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잔인한 죽음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크고 무서운 것입니다.


죗값을 치르기 위해 엄청난 대가가 지불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피의 공로가 없다면 우리는 그 죗값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 피의 공로 때문에 거룩해지고, 죄에서 벗어나고, 저주에서 벗어나고, 지옥의 신세를 면했기에 오늘 당장 죽어도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의 피로 얻은 신령한 구원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구원을 소중하게 여기고 지킬 줄도 알아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62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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