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기도생활(1)] 분명한 기도 과녁을 향하여

등록날짜 [ 2021-04-13 06:04:58 ]

기도는 우리를 도와 주시려는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의 명령
우리 문제를 듣고 해결해 주실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피조물인 인간은 스스로 살아갈 힘이 없으므로 자기의 불가능을 해결하기 위해 자기를 도울 신을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불상 앞에 절하며 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냉수를 떠 놓고 빌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장승 앞에 떡을 놓고 빌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원해도 듣지 않는 신에게 기도한다면 그 기도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설령 신이 있어 듣는다 할지라도 그 기도에 응답할 능력이 없다면 그것도 다 헛수고입니다.


절에 찾아가 불상 앞에서 열심히 두 손을 비벼 가며 기도하는 사람이나 장승 앞에 떡을 놓고 비는 사람들은, 그것들이 만약 도울 힘이 있다면 자기의 불가능을 해결해 달라고 막연하게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상은 오히려 인간이 먼지를 닦아 주고 관리해 주어야 하는 물건입니다. 장승도 역시 인간이 관리해 주어야 하는 대상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절간을 찾고, 장승을 찾고, 서낭당을 찾고, 둥구나무를 찾고 무언가를 향해 계속 복을 달라고 빕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도
이토록 인간이 무엇인가 찾아 헤매는 것은 본능 속에서 자기를 지은 창조주를 찾기 때문입니다. 그를 통해 자신의 불가능을 해결받고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에 응답할 힘이 없는 신에게 아무리 기도해 봤자 그것은 헛된 일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시고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허락된 축복입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분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 이름을 주면서 그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요14:14). 그 이름으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응답할 힘이 없는 장승 앞에 떡을 놓고 비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이 없는 부처상 앞에서 절하며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낭당에서 복을 달라고 애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만물을 주시고 하나뿐인 아들을 주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고 또 천국까지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둥구나무 말고, 장승 말고, 서낭당 말고, 우리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도우시려는 하나님 사랑
인격 없는 장승이나 부처상 앞에 복 달라고 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입니까?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우리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또 아들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인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자기 몸에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죽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신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고 말입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심정과 그 아들 예수의 심정을 아는 사람은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기도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도우시려는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의 명령에 보답하기 위하여, 또 나의 불가능을 하나님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께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11:6).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69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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