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1-06-09 16:33:10 ]
신앙인으로서 갖는 자부심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의 발로에서 시작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대통령과 거래한다고 해도 자부심이 대단한데, 창조주 하나님과 거래한다고 할 때 그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위대한 자부심의 발로입니다.
그런데 이런 위대한 기도를 사용하지 못하고 주님을 실망시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 가셨다가 실망하고 돌아오신 것처럼(마21:19~22),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오셨다가 실망하신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신앙인으로서 자부심을 갖지 못한 자요, 인생에서 아무런 영적인 유익을 남기지 못한 자입니다.
주님이 열매를 원하셨지만 열매를 내지 못해서 주님을 실망시킨 나무는 결국 뿌리부터 가지까지 다 말라 죽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혹시 우리도 열매 없는 나무처럼 영적인 유익을 남기지 못해서 무가치한 인생은 아닌지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장이라도 내 목숨을 거둬 가실 수 있습니다. 이런 분 앞에 우리 목숨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 말은 하나님 앞에 내가 어떤 위치인지 파악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위치를 깨닫지 못해서 기도하지 않고 육신의 생각대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어느 순간 기한 전에 떨어진 열매, 곧 ‘타크시(taqsh)’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정신 바짝 차려서 늘 깨어서 기도하며 신령한 열매를 가지고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농부이신 하나님 앞에 어떤 열매를 들고 있습니까. 농부가 탐스러운 열매를 보고 기뻐하듯이,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도 탐스러운 열매가 있기를 기다리십니다. 기도만이 신앙생활의 열매를 맺게 하는 뿌리요, 기초요, 시작입니다. 생명을 택한 자는 생명의 진액을 공급하시는 예수 앞에 기도하여 끝까지 열매를 맺습니다.
주님 사랑하는 길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아들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아낌없이 인류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이 주시는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주시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설교 말씀을 들었다고, 성경 말씀을 읽어서 지식적으로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읽어서 은혜받은 것을 기도를 통해 내 것으로 소유해야 주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감히 창조주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를 통해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구원받은 인간이 기도라는 통로를 통해 그분을 사랑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할 자격이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졌느냐를 생각할 때 감사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교회에 나오지 않고 또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만나고 싶듯이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교회에 나오고 싶고, 항상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기도는 주님께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영적 교제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기도합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일에 기쁨이 없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고 운행하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응답하신다’고 할 때 얼마나 기도하는 일에 긍지가 넘치며 하나님과 사이에 있어서 충만한 기쁨을 맛볼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 크신 하나님과 대화한다는 긍지와 믿음과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주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시니
기도함으로 신령한 자부심 넘쳐
하나님과 대화한다는 긍지 갖고
주님 사랑하는 맘으로 기도해야
위 글은 교회신문 <70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