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1-07-19 19:31:16 ]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들에게
영혼 사랑할 마음 공급하셔
인류가 멸망하지 않길 바라는
애타는 주님 심정 응답받아야
전도도 능력 있게 할 수 있어
영혼 사랑의 절정, 기도
기도 속에는 영혼 사랑이 넘쳐 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주님 심정을 깨닫고 그 주님 심정으로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영혼 사랑의 절정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부모와 형제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이웃의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기도만이 영혼을 향한 사랑을 폭파시키는 도화선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형식이 아니라 영혼을 사랑하고 그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차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목사가 만약 기도할 힘을 잃고 성도 영혼을 책임질 수 없다면 과감하게 목사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만큼 목사는 영혼을 사랑하고 살리기 위해, 하나님의 유익을 위해 목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목회뿐 아니라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맡든지 그 목적은 영혼 구원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어떤 사업도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목적이어야 합니다. 성도가 신앙생활이나 직분을 감당하는 일에 나태한 것은 영혼 사랑하는 열정이 식고 자신과 이웃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자신과 이웃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목사는 가슴이 찢어집니다. 하물며 십자가에서 살 찢고 피 흘려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주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기도를 쉴 수 없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삼상12:23).
기도해야 전도도 능력 있게
또 자기 영혼과 이웃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자는 전도하는 일에도 쉬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땅끝까지 복음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길 바라시는 주님 심정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장을 보면 예수는 산에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모든 사람이 주님을 찾나이다”라고 말하자 예수는 다른 마을로 전도하러 가자고 하셨습니다(막1:38). 예수께서 전도하기 위해 기도하셨음을 말해 주는 부분입니다.
주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고 했고 그 뒤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3)고 했습니다. 예수가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을 전도하기 위해 기도하셨다는 말입니다.
전도하는 일에 성공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구령의 열정이 충만하여 주님 심정이 느껴질 때까지 기도하고 나가야 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인간의 생각과 지식으로 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전하여 듣는 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전도하러 나갈 때 기도는 다른 어떤 계획보다 최우선 되어야 합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막1:35~38).
예수께서도 먼저 기도하고 전도하러 가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기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따라다니다가 예수께서 앉은뱅이를 일으키거나 소경을 보게 하는 등의 이적을 보이시면 “우리 선생님이 하셨다” 하며 마치 자기가 이적을 나타낸 것처럼 좋아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처럼 영혼을 살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성령 받기 전 제자들과 같이 구경꾼이 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너무도 자명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70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