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2-01-18 10:42:18 ]
매를 맞아 죽을지라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도록 기도했더니
복무 기간 모진 핍박과 매질
당하면서도 꿋꿋이 신앙 지켜
모진 고통을 견디고 주님 앞에
비겁해지지 않는 것 기도의 힘
제가 배치받은 병참 부대에서는 신자 집합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예배드리러 다녀와야 했으니….
주일 아침에 주번 사관에게 교회 다녀오겠다고 말하니 “이 새끼야, 지금 창고에 작업복이 열 량 들어오고 기름이 열다섯 량 들어왔어”라며 안 된다고 했습니다. 기차의 화물차 한 칸이 한 량인데, 그 방대한 물량이 주일마다 들어왔습니다. 그것을 전부 실어 날라야 한다면서 교회에 못 가게 했지만,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배드리러 인근 교회에 다녀왔고, 다녀온 후엔 상상 못 할 모진 매를 맞았습니다.
그 부대가 생긴 이래에 교회에 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주일에 교회에 갔다 오면 어김없이 곡괭이 자루로 맞았습니다. 얼마나 맞았는지 ‘퍽’ 소리만 나면 “윤석전이 또 매 맞는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매를 맞고 견딘 제가 신기할 정도입니다. 이것이 모두 군대에 가기 전에 한 기도의 응답인 줄 믿습니다.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한 동기가 “너 맞는 것 보면 억울해서 못 견디겠어. 차라리 탈영하고 안 보는 게 낫지”라고 말했습니다. 동기애라는 것은 매를 맞아도 같이 맞고 싶고, 죽어도 같이 죽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 중에 동기가 총에 맞아 쓰러지면 그를 향해 달려가다가 같이 총에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동기애는 대단합니다.
동기애를 가진 한 친구가 탈영한다고 할 정도로 동기들 전부가 내가 매를 맞는 것 때문에 근심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구타했다가는 구타한 사람이 영창에 가겠지만 당시에는 상관의 말 한마디에 즉시 복종해야 했습니다.
한번은 병장 둘이 내무반 한복판에 저를 엎어 놓고 곡괭이 자루로 두들겨 팼는데 한 사람이 다섯 대를 때리고, 다른 사람이 아홉 대를 때려도 까딱하지 않자 때리기를 포기하고 그냥 가 버렸습니다. 또 다른 사람을 데리고 와서 아홉 대를 때렸는데 끄떡도 안 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참을성이 많은 편이어서 속으로는 아파 죽을 지경이었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습니다. 아무리 때려도 끄덕하지 않으니 오히려 때리던 사람이 질려 버렸습니다. 사람을 아무리 때려도 아픈 내색을 하지 않으면 때리는 사람이 질리는 법입니다.
오히려 겁에 질린 그들은 곡괭이 자루를 놓고 뒤로 슬슬 물러서기 시작했습니다. 모진 매에도 요동하지 않던 것이 무서웠던 모양입니다. 그때는 운동도 열심히 할 때여서 몸무게가 70kg 이상인 데다 가슴도 딱 벌어져 작은 덩치가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그 이후로 제대할 때까지 한 번도 저를 때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두들겨 맞은 날이면 온몸이 아프고 뼈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이 오는데도 다른 사람 대신 밤새도록 보초를 섰습니다.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 흐느끼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떤 고통과 아픔도 이길 힘을 주시옵소서. 또 부대에 예수 믿는 지휘관을 보내 주시옵소서!”
제가 무슨 힘으로 그 모진 매와 고통을 견딜 수 있었겠습니까? 바로 기도의 위대한 힘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유지하는 최고의 비결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에 실패하는 순간,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는 가장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는 이렇게 주님 앞에 비겁해지고 맙니다.
우리가 은혜받을 때는 “내가 죽을 때까지 주를 위해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 방언을 말하던 날에는 “내 인생을 다해 주께 충성하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주일예배도 나오지 않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기도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73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