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2-10-05 10:40:36 ]
자신이 가진 불가능한 문제를
하나님께 해결받으려 한다면
부르짖어 기도할 수밖에 없어
하나님께 도움받아야 한다는
내 영육 간 처지를 바로 알아
생명 바치는 기도 올려 드리길
진실을 마주하면 가슴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진실은 우리 심령 속에서 눈물을 이끌어 내기도 하고, 속으로만 울던 것을 부르짖어 기도하게도 합니다. 진실은 가슴속에 숨어 있던 것을 밖으로 표출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성회에 가서 온 힘을 다해 설교를 마친 후 통성기도를 시키면, 가슴이 터지도록 장시간 말했건만 마치 설교 한 편을 그저 감상한 것처럼 무덤덤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모릅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도 통성기도 시간에 졸고 있는 사람을 보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픕니다. 어찌 그리도 애타게 전하는 자의 심정을 모르는 것일까요?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실 때 다른 제자들은 산 아래 머물게 하시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제자 세 명만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들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해서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고, 예수의 생애를 나타내며, 성경을 기록할 증인으로 사용하려고 데려가신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그들은 예수의 증인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께 도움이 되어서 데리고 간 것이 아니라 예수의 증인으로 쓰시기 위해 데리고 가셨던 것입니다(눅24:48).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데려갔던 제자 셋을 한적한 곳에 있게 하시고 혼자 기도하셨는데도 기도하신 내용을 제자들이 성경에 기록했다는 점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돌 던질 만큼 떨어진 거리에서 기도하셨습니다(눅22:41). 그런데 얼마나 진실하게 부르짖어 기도하셨으면 기도하는 소리가 제자들에게까지 들렸겠습니까.
예수께서는 “아버지여 이 쓴잔이 나에게서 넘어갈 수만 있으면 넘어가게 하소서”라고 비지땀을 흘리며 애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얼마나 애끓는 기도를 하셨기에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되기까지 기도하신 것일까요? 이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을 향해 자기 진실을 숨기지 않고 생명이 다하도록, 창자가 끊어지도록 진실하고 간절하게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이 일을 그 즉시 기록했다고 하면 문제가 다르지만, 성경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주후 43년 이후부터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예수께서 하신 기도가 제자들의 마음속에 얼마나 생생히 새겨져 있었는지는 그들이 기록한 성경을 보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다한 애절하고 간절한 기도가 먼 거리도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겟세마네 동산에 울려 퍼졌던 것입니다.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도 그렇게 열정을 다하여 기도하셨는데, 하물며 죄 많은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얼마나 더 진실하게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얼마나 진실하고 간절해야 하는지, 얼마나 확실하게 생명을 바치는 기도를 해야 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이 다급한 사정에 놓였을 때 잠잠히 있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막10:47)라고 외친 소경 바디매오처럼 간절하고 다급하게 부르짖어 우리의 사정을 아뢰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에게 “기도를 왜 그렇게 수다스럽고 요란하게 합니까? 하나님이 죽었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은 기도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죽어서 그렇게 부르짖어 간절히 기도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이 주무셔서 깨우느라고, 어디 멀리 가셔서 부르느라고 그렇게 기도했습니까?
진실이 북받치고, 자신이 가진 이 문제를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께서도 그렇게 절실하게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위기를 해결하고자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일에 생명을 바치는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76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