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기도생활(86)] 응답을 이루는 믿음의 행동

등록날짜 [ 2022-12-21 14:10:10 ]

믿음으로 기도를 올려 드렸다면

응답이 이루어지도록 노력도 해야

가만히 기도만 하고 있다고 해서

저절로 응답 오는 것 아님 알아야



어떤 사람은 새벽기도를 마치고 가면서 “새벽마다 기도하지만 될지 모르겠어. 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마는 거지”라고 말합니다. 도대체 왜 새벽마다 기도합니까.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이 응답하실 텐데, 왜 기도해 놓고 새벽마다 심은 기도를 입으로 뽑아 버립니까. 응답을 기다리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미련한 사람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농부는 하찮은 씨를 땅에 심어 놓고도 가을에 꼭 열매 맺을 줄로 믿습니다. 씨를 심는 것보다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까지 죽이면서 약속을 이행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얼마나 더 분명하게 이루어질 것인지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기도한 것을 포기하고 의심하여 응답이라는 축복의 열매를 뽑아 버려서는 안 됩니다. 믿음으로 기도한 것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2).


믿음의 행위로 정복하자

하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죽이시겠다는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는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기도는 절대 부도나지 않습니다. 십 년 후에라도 응답은 반드시 옵니다.


그러나 기도만 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그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농부가 씨를 심은 후에 물을 주고 김도 매듯 응답도 가꾸어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 아버지가 예수 믿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만 하고 아버지가 육신의 때를 마치기까지 한 번도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버지에게 예수 믿으라고 한 번도 당부하지 않고 저절로 예수 믿기를 기다린다면 참으로 미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도했다면 내가 응답을 가꾸어 나가고 정복해 나가야 합니다.


쌀가마니를 앞에 두고 “쌀아, 밥 될 줄로 믿는다. 쌀아, 되지도 않고 질지도 않게 적당히 밥이 되어라!” 하고 아무리 외쳐도 밥이 되지 않습니다. 쌀을 씻어서 밥통에 넣고 밥을 해야 합니다.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약2:17). 우리 기독교는 행동하는 믿음, 움직이는 믿음입니다.


이 세상이 말세가 될수록 더욱 정신 차려 기도하면서 그 응답을 믿음의 행위로 실현해 나가야 합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라고 하신 말씀은 단순히 믿는 자들을 보겠느냐는 말씀이 아닙니다. 과연 자기 안에 기도 응답을 향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치고 애쓰는 자가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저 감나무 아래 입 벌리고 누워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수1:6)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기도 응답으로 정복하기 위하여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을 돌고, 아이성을 쳐부수고, 가나안 원주민들을 몰아내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이루었습니다. 응답은 바로 믿음의 행위로 정복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 있다고 해서 응답이 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나사로의 무덤에 가서 항상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하신 다음에 나사로를 불러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응답하신다고 확실히 믿으셨기에 나사로를 산 자처럼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셨다는 믿음이 왔다면 응답을 손에 쥐고 소유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77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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