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2-10 09:08:24 ]
어릴 적부터 신실한 믿음의 습관 키워주고
나쁜 습관 하루빨리 고치는 과감성 갖춰야
우리가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현재 내가 사는 모습을 전지하신 하나님이 평가하실 때 만약 잘못됐다고 하신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신앙생활이 잘못된 줄도 모르고, 죽는 그 순간까지 잘못된 그 모습 그대로 산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우리가 예수를 안다는 영광은 참으로 엄청난 것입니다. 그것은 인생의 최고의 사건입니다.
누구의 특성을 나타낼 것인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내가 어떤 인격으로 형성되어 지금에 이르렀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대부분 자기가 태어난 가정의 특성, 주위 환경의 특성, 지역의 특성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 특성을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충청도 사람은 충청도의 특성이 있고, 경상도 사람은 경상도의 특성이 있고, 전라도 사람은 전라도의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각 지방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모일 경우 다 지방색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가진 특성을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부모 밑에서 신앙생활 했느냐 하는 것은 평생의 신앙생활에 영향을 미칩니다.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을 쫓아낸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아들이 교회에서 재정을 맡고 목사님을 힘들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자기가 잘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 하나님의 영향 안에서 그분의 주관을 받아야 합니다. 기관이든 구역이든 교구든 성가대든 우리를 주관하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자의 주관을 받는다면 그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음의 습관을
강단에서 아무리 은혜로운 설교를 해도 입을 꼭 다물고 절대로 ‘아멘’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환경 속의 교회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그것이 습관화된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그런 습관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얼른 바꿔야 하는데 자기가 가진 습관과 특성을 바꾸려 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차지하는 만큼 언제든지 나를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3년 동안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며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자 제자들은 다시 자신들이 살았던 바다로 돌아갔습니다. 과거에 그들이 해왔던 습관대로 말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습관, 믿음의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그대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기 방식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도무지 자기의 생각을 고치려 들지 않습니다. 아무리 버티고 있어야 자신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는 것들인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어떤 환경에서 누구의 영향을 받으며 영적으로 어떤 믿음의 특성을 가졌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과 상관없는 전통이나 습관이라면 버려야 합니다. 내 방식이라는 전통과 특성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완전히 무너져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깨달았다면 ‘그런 것도 있네’가 아니라 자신을 확실하게 바꿔야 합니다.
나쁜 습관은 과감히 버려야
제가 어렸을 때 다녔던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 성령이 충만한 교회, 사랑과 은사가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기도해서 고쳐주고, 귀신들린 자가 있으면 기도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모이기를 힘쓰며 모든 예배를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다른 교회도 다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군대에서 교회에 간다고 그렇게 매로 두들겨 맞으면서도 교회에 갔다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려서부터 배운 습관과 특성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신앙생활에 있어서 믿음이 가장 중요하지만 어려서부터 자라난 신앙생활의 습관과 특성이 그만큼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교회만 열심히 다니면 그것이 믿음인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습관인지 아니면 진짜 믿음인지를 빨리 판단해야 합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막16:17)
당신에게 믿음이 있다면 주님이 인정하는 표적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진짜 믿음이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그저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는 사실에 안주하며 자신의 믿음 없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표적을 나타내는 신앙생활’은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본인 스스로는 답답한 줄 모르지만 실상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참으로 속 터지게 답답한 노릇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영혼이 강력하게 갈망하는 요청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내 신앙생활의 습관과 특성을 바로 잡을 기회가 있을 때 바로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요구와 다른 것이 있다면 아무리 오랜 세월 그렇게 했다할지라도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죽기 직전까지 했어도 마지막 순간에는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죽기 직전 그 순간만큼이라도 새로워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17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