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3-02 11:52:59 ]
변덕으로 스스로 복 걷어차는 자 되지 말고
주님께 끝없이 쓰임받는 일꾼으로 성장해야
우리는 말씀으로 사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의 어머니는 모든 농사지은 것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수박이든, 참외든, 땅콩이든, 시금치든 무엇이든지 간에 제일 먼저 자란 첫 열매는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지금도 저는 그 습관이 몸에 배어서 흰돌산수양관에서 배추를 키우거나 무를 키우거나 무엇을 키우든지 간에 먼저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합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하나님께 드릴 예물은 언제나 새 돈으로 준비해서 성경에 꽂아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주일이면 자녀를 전부 불러 놓고 나누어주시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니 절대로 구겨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새 돈만 보면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천둥 번개가 치고 별의 별 일이 다 생겨도 예배 시간에 빠지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 제주도 등 어느 곳에서 자랐든지 그 지역의 모든 환경의 습관이 내 몸에서 떠나지 않듯, 하나님의 말씀이 믿음의 습관이 되어 내 몸에 배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관당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기업이 되기에 처음부터 이러한 습관을 잘 가져야 합니다.
노아의 방주에는 방주를 움직일 키가 없었습니다. 망망한 대해에 키가 없으니 얼마나 막막하겠습니까? 그러나 방주는 하나님이 직접 운전하셨기에 가장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삶의 방주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핸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평생에 노아의 방주처럼 내가 나를 움직이지 않기를 원합니다. 내 육신의 생각과 지식과 체면과 자아가 나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나를 운전해야 합니다. 이는 곧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습관이 신앙생활의 전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뜻대로 사는 축복된 사람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 중에 아마도 제일 믿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일 것입니다. 어느 날, 시험에 든 성도에게 심방을 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고 다음에 또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그를 심방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박대를 받으면서도 시험에 든 그에게 왜 매달리는 것일까요? 무엇이 아쉬워서 그렇습니까? 시험에 들어 예수를 떠나면 지옥에 가니까, 예수를 몰라 예수를 믿지 않고 죽으면 지옥에 가니까 하나님은 그토록 아쉬워하며 매달리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목사의 설교를 통해 내가 잘 되기를 애타게 바라고 계십니다. 멸망하지 말라고, 저주받지 말라고, 영생하라고, 축복을 받으라고, 오직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아쉬워하며 매달리시는 것입니다. 아쉬운 우리가 매달려야 하는데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토록 아쉬우신지 참 눈물이 날 정도입니다. 오늘날 초등부나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부모가 “공부 좀 열심히 해라”라고 말하면 “그놈의 공부, 공부 지겨워서 못 살겠네”라고 말합니다. 자식이 끝없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심정을 모르고 제 갈 길로 가는 자녀의 모습이 꼭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 닮은 인격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으니 결코 그 본질을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닮기를 원하면서 왜 악한 영들을 닮아 그토록 하나님과 멀어집니까? 바울은 말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7:24) 이 말은 자신이 하나님을 떠난 죄악의 인간으로 부패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결코 부패한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날마다 소생되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부패한 것에서 썩은 냄새가 나듯이, 부패한 인간에게서는 원망이나 불평이나 짜증 같은 썩은 냄새가 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생활의 습관이나 전통이나 특성을 바로 가져야 합니다.
더 충성하지 못하고 더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한 아쉬움으로 꽉 차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목사와의 관계가 항상 열려 있으며, 교회에 대해서도 오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쓰고 싶으셔도 부패해서 변덕을 부린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스스로 걷어차 버리는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는 믿는 자를 통해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며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시나 우리 스스로가 부패해 버린다면 결국 쓰임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갈 만한 특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가치 있는 사람으로
우리의 삶을 뒤돌아 봅시다. 주님이 나를 믿고 맡겨주신 영혼들을 주님이 믿으실 만큼 잘 관리했는지 말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그것은 바로 나에게 생산 능력이 없고 그들을 이끌어갈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혼의 때를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과 동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특성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면 하나님 앞에 우리가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오늘까지 산 날이 전혀 가치가 없었을지라도 내일이 존재하고 있다면 내일은 분명히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귀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모든 재미를 다 주면서 예수 밖에 나온 것을 기쁨이요, 다행으로 여기게끔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인정하시고 그에게서 손을 떼시는 순간, 악한 마귀역사는 그를 세상으로 끌고 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시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업이요, 재산이며 최고의 축복입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얼마나 기대하고 계시는지를 우리가 안다면 주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18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