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자격에 대해<29>] 체험 해 본 사람만이 체험을 줄 수 있다

등록날짜 [ 2011-08-16 13:19:46 ]

예수 닮는 거룩한 삶은 이론이 아니라 경험에서
교회는 말씀의 체험을 주고받는 현장이 되어야

어떤 여자 고등학생이 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과거에 자신이 죄와 자살의 영에 묶여 살았다는 내용입니다. 초등학생 때 여러 차례 성폭행을 당했는데도 그것이 성폭행인 줄도 몰랐고, 자라면서 그것이 죄인 것을 깨닫고 양심상 견딜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부모에게도 말을 못 한 채 고민하다가 죽어버리려고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했는데, 부모는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유도 모른 채 속만 태웠답니다. 그런데 흰돌산수양관 성회에 와서 회개하고 양심의 자유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안 죽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회개했으니, 이제는 비전과 꿈에 도전합니다” 하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그가 회개하여 예수 십자가의 공로로 자유하게 되었다는 확실한 체험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체험 때문에 죄를 회개하고, 체험 때문에 죄를 이기고, 체험 때문에 불의를 이기고, 체험 때문에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제가 청년회장 때의 일입니다. 담임목사님이 어느 날 저를 청년회장으로 임명하셨는데, 당시 교인이 300명쯤이고 청년회원은 겨우 14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14명을 데리고 그날 저녁부터 청년회 부흥회를 했습니다. 그들이 은혜를 받았다 싶을 때 임원단을 조직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주부터 전도를 시켰습니다. 그날 처음 전도 받아 교회에 온 사람에게 저녁을 사주고, 밤 집회에 같이 참석했습니다. 강사는 언제나 청년회장인 저였습니다. 처음 교회에 온 사람이 말씀을 듣고 합심해서 기도하다가, 성령 체험하고 방언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체험하면 그도 다음 주에 전도하러 갑니다. 자신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체험만 하면 기도든, 전도든, 무엇이든 주를 위해 할 수 있습니다.

체험하지 않은 몇 십 년 신앙생활보다, 체험 한 번이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성장은 체험에서 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나자 청년회원이 25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들 모두 체험자였습니다.
 

<사진설명> 예수를 만난 체험은 나이와는 상관이 없다. 얼마나 믿고 신뢰하느냐에 달렸다. 사진은 초등부 천로역정 중 한 장면.

그때는 주일 저녁예배가 끝나면, 바로 은사 집회를 했습니다. 청년회장인 제가 은사 집회 설교를 했습니다. 저는 목사가 되고 나서 설교한 것이 아니라, 주일학교 교사, 주일학교 부장, 중고등부 교사 시절부터 항상 설교했습니다. 제게 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전 교인 대표 기도를 했습니다. 체험이 없다면, 그 어린아이에게 대표기도를 시키셨겠습니까? 그때 저는 목사님 설교에 은혜 받은 말씀들을 총동원해서 20분 동안이나 기도를 했습니다. 얼마나 아멘 소리가 크게 나왔는지 모릅니다. 체험에서 나온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체험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저는 중.고등부 시절에 구역장을 맡았습니다. 구역식구가 63명이었습니다. 금요일이면 구역예배 드릴 집에 초저녁부터 멍석을 깔아놓고 모깃불도 피워놓고 구역식구들을 데리러 다닙니다.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63명이 다 와야 구역예배를 드립니다. 아무리 밤이 늦어도 구역식구가 다 모여야 예배를 드리니 그것을 알고는 아예 구역예배 빠질 생각을 못 합니다. 아무리 어린 구역장이라도 체험이 있기에 꼼짝 못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진 체험을 말하니까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기도하고, 체험을 말하니까 전도합니다. 그래서 체험을 말하는 자가 구역장이 되고, 남.여전도회장이 되고, 교회 어느 부서에 가든지 지도자로 사용됩니다. 체험이 없는 자는 충성할 자원도, 전할 말도 없습니다.

어릴 때 우리 마을에는 서울에 갔다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서울 이야기를 들으려고 저녁마다 사람들이 모입니다. 어제 들은 이야기인데, 오늘 다시 들어도 재밌습니다. 서울에 안 갔다 온 사람은 체험이 없으니까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설교를 잘하는 사람도 말씀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교사 직분을 잘 감당하는 사람도 말씀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체험한 사람만이 체험을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체험은 진실합니다. 체험만이 체험을 줄 수 있습니다.

한번은 동네 아저씨들이 남대문 문턱이 대추나무냐, 소나무냐를 놓고 싸웠습니다. 그때, 남대문에 갔다 온 사람이 남대문에는 문턱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남대문에 안 가본 사람들이 “에이, 문턱이 없는 대문이 어디 있어? 문턱이 있지” 하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아무리 떼쓰고 큰소리쳐도 체험이 없는 사람의 말은 빈말이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교사들도 학생들에게 눈에 보여주듯, 손에 잡아주듯 예수, 천국, 영생 등 하나님 말씀을 체험으로 주어야 합니다.

세 살 먹은 아기에게 사탕 사 먹으라고 백만 원짜리 수표를 준다고 그것을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수표를 사용해 본 체험이 있는 자만이 그것으로 필요한 것을 사서 자기도 쓰고 남에게도 주듯이, 성경에 기록한 하나님 말씀도 체험해 본 사람만이 현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체험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교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학교 공과공부는 하나님 말씀의 체험을 주고받는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체험을 줄 수 있는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5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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