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5-03 13:13:40 ]
잘잘못의 ‘대가’ 분명히 가르치고 실천하면
자녀도 그 훈계 교훈 삼아 바르게 성장할 것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아버지께서는 어머니를 예수 믿는 것 때문에 34년간을 핍박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께서 아버지께 반말을 사용하시거나 함부로 대하시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혹독하게 핍박해도 아버지께 존칭을 사용하고 항상 깍듯하게 예를 다하셨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존중이 대단하셨습니다. 그러니 자식들도 어머니처럼 아버지를 존중하게 됩니다.
가정에는 이런 절대 윤리가 필요합니다. 부부간에 해서는 안 될 언어가 있고, 해서는 안 될 행동이 있습니다. 자식과 부모 사이에도 넘어서는 안 될 윤리가 있고, 넘어서는 안 될 도덕이 있습니다. 그런 절대적인 가정의 법을 만들어놓고, 자식이 넘어오면 가차없이 훈계해야 하고, 부모는 자식 앞에 그 선을 넘어가는 모습을 절대로 보여주어서는 안 됩니다.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자식이 부모의 통제를 벗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서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1~4)고 말씀하신 것은, 절대 윤리의 선을 넘어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식사 때가 되어도 아버지께서 외출하셨으면 돌아오실 때까지 절대로 밥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장의 존엄성에 대한 교육이었던 것입니다. 이만큼 철저하게 가정 윤리를 가정에서 가르쳐야 합니다. 또 평소에 가장은 항상 퇴근하면 정확하게 집으로 들어가고, 늦게 들어갈 때는 언제쯤 들어갈 것이라는 시간을 알려주고, 그 이유를 분명히 말해줘야 합니다. 그것은 곧 아내와 자녀를 존중하는 것으로, 자녀도 부모를 존경하게 되고 가정의 울타리를 견고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가장인 남편이 그렇게 하지 못할지라도 아내는 자녀에게 “아버지가 너희를 먹이고 입혀 키우시려고 이렇게 늦게까지 고생하시니 항상 고마운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가르쳐, 아내로서 남편을 보필하고 가정에서 가장의 권위를 세워주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자녀를 강인한 사람으로 키우라
공부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등을 하기 위해서입니까?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입니까? 그런 목적만으로 공부한다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는 갈지라도,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이 되어서 제 잘난 맛에 살고, 하늘을 찌를 만큼 교만해져서 가족은 쳐다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자녀를 이렇게 키워서야 되겠습니까?
자녀에게 고통과 어려움이 있을 때 그 고통과 어려움을 너무 쉽게 해결해주지 마십시오. 어려움을 스스로 딛고 일어서는 경험을 할 때 그들이 독립하게 되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또한 자녀에게 근로정신을 길러줘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자녀가 돈이 필요할 때 부모에게 일거리를 달라고 합니다. 그에 상응하는 노동력을 제공해야 그가 원하는 만큼의 돈을 탈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노력하지 않고는 수입이 없다는 것을 가정에서부터 가르칩니다. 공부해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일해야 수입이 있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무엇이든지 부모가 조달해줘서 노력하지 않고도 되는 것처럼 가르치는 가정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식이 조금만 어려운 일을 당해도 부모가 안절부절못합니다. 그들이 성장하면서 조금만 힘든 일이 있어도 쉽게 포기하고, 수고하지 않고 얻기 위해 사기꾼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만큼의 수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육의 탈선입니다. 자녀가 달라는 대로 부모가 주었으니 노력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녀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베풀며 과잉보호하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부모의 노동과 수고를 말해야 합니다. 자녀를 위해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서 애쓰고 수고하며, 그렇게 고생하여 번 돈으로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옷 사 입히고 먹여서 키운다는 사실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들이 거저 크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희생을 통해 성장하고 있음을 어려서부터 알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려서부터 효심이 생기고 부모에게 감사할 줄 아는, 인격적으로 바른 아이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잘못의 대가를 분명히 물어라
자식에게는 인정의 사랑에 무너지지 말고 절대 공의의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잘못은 대가를 확실하게 치르도록 하고, 잘못을 다스린 다음에 뜨거운 사랑을 베풀어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실 때 인간의 잘못을 철저히 다스리시고, 아들을 보내서 대신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내셨듯이, 잘못은 반드시 대가를 물어 고쳐주어야 하고, 그 후 뜨겁게 위로와 용기를 주면서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가정이나 학교나 교회에서 똑같이 잘못의 대가를 묻는다면 그는 그 잘못을 다시는 저지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엄하게 처벌하면 혹시나 자식이 탈선하지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탈선하지 않습니다. 잠언에도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잠23:13~14)고 했습니다. 잘못을 다스릴 때 부모나 교사가 미움과 기분과 감정으로 다스린다면 그가 탈선할 수도 있겠지만, 잘 성장하기를 바라며 뜨거운 사랑으로 다스린다면 절대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고 그 훈계를 교훈 삼아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끝>
* 출처 윤석전 목사의 저서 『예수 안에 행복한 가정』에서 발췌
위 글은 교회신문 <19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