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10-10 21:20:28 ]
육신이 있을 때만 ‘영원한 기업’ 얻을 기회
결국 영혼의 때 위한 믿음의 수고만이 남아
베드로는 자신의 몸을 ‘장막’이라고 표현하면서 이 장막집이 무너지면 나는 또다시 너희와 함께할 수 없나니 장막집이 있는 동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른다고 권면했습니다(벧후 1:13~14). 육신이라는 장막집은 어느 땐가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70년을 살게 하시면 70년을 살 것이요, 오늘 밤 부르시면 당장에라도 장막집을 버려두고 갈 것입니다. 내게 아무런 권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굉장한 권리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교만인지 모릅니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인간의 육신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고 하나님께로 온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이처럼 인간은 영적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최종적으로 거할 곳은 육신이라는 장막집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입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고후 5:1)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장막집에 있는 때를 하늘의 영원한 집을 짓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은 우리 손으로 건설한 것, 즉 재물이나 명예와 같이 이 땅의 물질문명과 함께 사라질 제한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 집은 믿음으로 짓는 집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다녀온 사람의 간증 내용 중에 하늘나라에서 천사들이 성도의 충성에 따라 집을 짓는데 어떤 천사들은 전부 앉아서 놀기만 하고 있어서 왜 노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집을 지을 재료를 올려줘야 짓는데 재료를 안 올려 주기 때문이라고 하더랍니다. 이 땅에서 행하는 주를 위한 수고가 하늘나라의 신령한 집을 만드는 재료라는 것입니다. 또 고린도전서 3장 10~15절을 보면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짓는데 마지막 때에 불살라 버림으로 그 지은 것을 평가할 텐데 거기서 남는 것만이 상이 있고 불타는 것은 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다 사라지나 영혼의 때를 위한 믿음의 수고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공력(功力)으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거하시는 신령한 전
이 땅에서 하늘나라의 영원한 집을 짓는 일은 우선 내가 성령이 거하는 거룩한 장막, 즉 성령의 전(殿)이 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고 했습니다.
성령은 예수로 거듭난 자에게 주인으로 오시는 분입니다. 더럽고 부정한 모든 죄를 예수의 피로 깨끗하게 하시고 나를 쓰시기 위해 오시는 분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면 그때부터 나는 그저 성령께서 가라면 가고 오라면 와야 합니다. 그분이 내 안에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열심히 해야 합니다. 나의 지식도 나의 똑똑도 나의 자아도 싹 비워 드려야 합니다. 그분 마음대로 쓰시도록 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임한 하늘나라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한편으로 하늘나라가 내 안에 임하는 것입니다(마12:28). 하늘나라가 임했기에 이제는 비록 몸은 이 땅에 있지만 천국 시민으로서 그 나라의 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세상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좇습니다.
성막을 지을 때 “내가 보이는 식양대로 장막의 그 기구와 모든 것을 지을지니라”(출25:9)고 하셨으니 성령을 모신 신령한 전인 우리도 역시 더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대로 지어져야 합니다. 바리새인처럼 겉은 거룩한 것처럼 보여도 그 속은 썩은 것, 죽은 것만 가득한 회칠한 무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내 안에 이루어진 하늘나라가 다른 것들에 의해 침공당하지 않도록 잘 보존하여야 합니다. 성령만이 나의 고집, 나의 지식, 나의 아집, 건방진 나의 교만을 다 꺾어버리시고 나를 다스리는 왕이 되게 해야 합니다. 끝없이 나를 간섭하시고 내 안에서 그 법으로 나를 다스리게 함으로써 나를 통해 이 땅에 하늘나라를 계속 펼쳐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이렇게 땅에 있는 동안 성령의 전으로서 쓰임받은 자만이 육신의 장막이 사라지는 그날 영광스럽게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1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