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11-02 08:23:24 ]
성막은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법막’이라 불려
영원한 성령을 모신 ‘성소’로서의 삶 살아야
성막을 가리키는 넷째 이름은 ‘법막(法幕)’입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율법을 기록한 법궤(法櫃)가 있는 장소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법궤가 옛날에는 성막 안에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했습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후3:3).
6.25 사변 때 외삼촌이 전사했다는 통지가 왔습니다. 외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통곡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죽은 것이 아니라 포로가 됐다느니, 눈 속에 고립되었다느니 하는 소식만 계속 들려왔습니다. 자식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지 못하니 부모로서 얼마나 애가 탔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외삼촌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이 어르신들이 글을 읽을 줄을 몰라 겨우 글 아는 사람을 데려와 편지를 읽어보니 아들이 살아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 절 한 절 읽어 내려갈 때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살아 있다고 하니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분들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편지를 거의 쓰지 않지만 편지 속에는 이렇게 구구절절하고 절박한 소식들이 들어 있기에 당시만 해도 편지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복음의 소식을 보관한 ‘법막’
이처럼 성경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으므로,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예수의 소식을 들을 수 있어야 하며, 반갑게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즉, 복음의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누구든지 만나는 사람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는 편지 내용을 읽어줘야 합니다. 편지에 적힌 내용을 읽어주었을 때 그것을 자신의 편지로 받는 사람은 구원받을 것이요, 남의 편지로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편지는 늘 공개되어야 합니다. 돌비에 새기지 않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도록 심비(心碑)에 새겨야 합니다. 마치 법궤를 보관하는 ‘법막’처럼 언제나 하나님 말씀을 내 속에 주님의 편지로 잘 기록하고 그 말씀이 상처 나지 않도록 지키고 있다가 필요할 때마다 내놓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구별한 ‘성소’
마지막으로, 성막을 부를 때 ‘성소(聖所)’라고도 불렀습니다. 이 성소라는 말은 거룩한 장소, 즉 구별하였다는 말입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지어라”(출25:8)고 하였으니 성막은 곧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장소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거룩한 분이시기에 하나님의 백성을 만나기 위해서는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장소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령을 받은 자들에게도 해당합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7:38~39).
예수가 영광 받기 전에는 성령이 아무에게도 임한 사실이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고 인간의 죄를 파괴하고 악한 마귀를 멸하시고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께 영광을 받기 전까지 성령은 누구에게도 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심으로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악한 원수 마귀를 파괴함으로 우리가 죄 사함 받아 거룩해졌을 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성령이 임하시는 성소로 만드시고, 내 안에 계시면서 다스리시고 인도하십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막의 여러 명칭에 대해 요약하자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막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집인 ‘장막’으로 지어져야 하고, 또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회막’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이 말씀을 증거하는 ‘증거막’이 되어야 하고, 내 심령에 하나님의 법과 법궤가 있어서 언제나 나를 볼 때 누구든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법막’으로서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영원히 성령이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구별된 ‘성소’가 되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1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