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하나님은 성막을 조각목으로 지으셨다

등록날짜 [ 2010-12-01 10:31:31 ]

볼품없는 나무를 금으로 씌워 거룩하게 만듦
다듬어서 쓰고자 하시는 하나님 마음 알아야


모세는 성막을 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막 짓는 데에 필요한 재료를 하나님 앞에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져오라고 한 성막 재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및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드는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출35:5~9).

출애굽기 38장 24~31절을 근거로 성막을 짓는 데에 사용한 금속을 살펴보면, 금 29달란트 730세겔, 은 100달란트 1775세겔 그리고 놋 70달란트 2400세겔입니다. 현대 무게 단위로 환산하면 금 약 1.5톤, 은 약 5톤, 놋 3.5톤 정도니 가히 엄청난 보물로 성막을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금과 은과 놋을 제외한 다른 성막 재료들은 그다지 귀한 재료가 아니라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 귀해 보이지 않는 성막 재료 하나하나 속에서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은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막 재료 중 먼저 조각목에 대해 살펴봅시다.

볼품없는 나무, 조각목
조각목은 아카시아과에 속한 싯딤나무로서 시나이 반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조각목은 가시가 많고 볼품이 없어 별로 쓸모가 없습니다. 다윗 궁전을 지을 때 쓴 백향목에 비하면 조각목은 참으로 하찮은 건축 재료입니다(대상17:1).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성막 목재 부분을 모두 조각목을 사용하라고 하셨고, 특히 성전을 떠받치는 기둥을 조각목으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조각목은 볼품이 없어서 반드시 그 위에 금을 씌워야 했습니다.

이처럼 성막을 아름답고 멋진 나무로 짓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큰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교회에도 조각목 같이 별 볼품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큰일을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받아 쓰임받는 우리는 하나같이 조각목에 불과한 자이기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7~29).
이제 조각목의 특성을 살펴보며 우리는 어떤 모습인지를 발견해 봅시다.

서로 찔러대는 근성
조각목은 사막에서 자라기 때문에 결이 심하게 꼬여서 모질어진 악마디가 많습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모나고 거친 성품을 말합니다. 그리고 조각목은 가시가 많아 바람이 불 때마다 가지끼리 부딪히면서 서로 찔러댑니다. 그러니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이처럼 조각목은 모나고 찔러대는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고 거듭난 자라 할지라도 이 근성이 여전히 남아 있어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까지 말이나 행동으로 얼마나 모나게 찔러대며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지 모릅니다. 남만 찌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찔러서 상처투성이를 만들 때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 과연 제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습니까?”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 답이 바로 이 조각목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필이면 왜 이런 부적합한 나무를 성막 재료로 쓰라고 하셨을까요? 볼품없는 조각목이지만 다듬어서 귀히 쓰시려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조각목처럼 남을 계속 헐뜯고 시비하며 찔러대는 근성이 있는 우리를 하나님이 부르시고 교회 일꾼으로 쓰고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악마디와 가시가 많은 조각목이 성전 기둥으로 쓰임받는 것을 보면서, ‘저 모습이 내 모습입니다’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십니다.

예수님은 수없이 찔리고 맞으셨지만 남을 찌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아버지, 저들이 몰라서 그렇사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서 조각목처럼 모나고 찔러대는 근성이 나타날 때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최후 순간까지도 인간을 사랑하신 주님의 성품이 내게서 재현하도록 주위 모든 이를 사랑으로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19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